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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지난 8월30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바로 옆에 자리한 공군 훈련비행단. 활주로를 질주하던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양산 1호기가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순간 장성섭 상무, 고대우 팀장 등 1,30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의 입에서는 10여 년에 걸친 대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는 환호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기 생산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일명 ‘골든 이글(Golden Eagle)’로 불리는 T-50. 이는 KAI가 한국 공군의 고등훈련기와 경공격용 제트기 양산을 위해 개발한 초음속비행기.개발 초기에는 ‘KTX(Korean Trainer Experi-mental)-2’로 불리기도 했으나 1999년 공군 창립 50주년을 기려 T-50으로 공식 명명됐다. T-50 개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89년, 공군이 새 고등훈련기 도입을 검토하면서부터다. 한번 도입하면 30년 이상 사용하는 고등훈련기를 이왕이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제기됐다. 공군도 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990년 고등훈련기 20대를 영국의 BAE사로부터 도입하면서 고등기술기 제작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 공군은 1993년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KF-16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고등훈련기 제작 기술 전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1992년 국방과학연구소 기술진에 의해 탐색·개발이 시작된 T-50 프로젝트가 KAI으로 넘어온 것은 1997년 10월, 본격적인 ‘체계 개발’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T-50 개발을 주도하던 전영훈 박사가 “개발자와 생산자가 같아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며 T-50 개발을 국방과학연구소가 아닌 삼성항공(KAI 전신)이 맡아야 한다고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KAI로 넘어온 T-50 프로젝트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한 직후 외환위기가 터졌던 것이다. “체계 개발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환율이 달러당 900원이었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2,000원으로 뛰니 엄청나게 부풀어오른 비용 때문에 6개월 동안은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죠.” 고대우 개발본부 선행연구팀장은 “그럼에도 계획보다 설계도면 작성 과정을 8개월이나 빨리 끝냈으며, 시제기 첫 공개 행사도 3개월 앞당겼다”며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밤낮은 물론 휴일과 명절까지 반납한 KAI 연구원들이 피와 땀을 쏟은 결과다. T-50 개발 과정에서 연구원 2명이 과로로 순직한 사건이 그들의 이런 노력을 증명한다. KAI가 세계 항공기 개발사에 유례 없이 일정을 앞당겨 T-50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는 실제 제작 전에 실물 모형을 만드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KAI는 그 과정을 컴퓨터시뮬레이션(CATIA)으로 대체했다. 과거 미국 보잉사에서 일부 과정을 CATIA로 대체한 경우는 있지만 전 과정을 CATIA로 제작한 것은 KAI가 세계 처음이다. [B]록히드사가 인정한 KAI 기술력[/B] “핵심 기술 지원을 위해 파견된 록히드사 측에서는 우리가 세운 개발 일정을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했죠. 일정을 늘리거나 인원을 늘리라고 했어요. 하지만 공군 측에서 일정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비용 문제를 들어 인원을 늘리는 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고 팀장은 그 때문에 “실물모형 제작을 CATIA로 대체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따르기는 했지만 대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AI가 개발 일정을 맞추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던 록히드 측은 그 뒤로 다시는 KAI 측 판단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후 록히드는 미국 차세대 주력 전투기 JSF 개발 과정에 T-50 개발에 참가한 엔지니어를 발탁하기도 했다. KAI의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KAI는 또 개발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설계자와 검토자는 물론 설계도면의 진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PDM을 개발했다. 계획보다 공정이 늦어질 경우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그치다 보니 연구원 중 일부는 아예 침낭을 싸들고 와 연구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강행군 끝에 KAI는 스스로 세웠던 개발 일정을 더 단축해 2001년 9월 시제기를 완성했다. T-50은 이후 1년간의 지상 테스트를 거쳐 2002년 8월20일 마침내 성공적으로 초도비행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KAI 관계자들과 달리 공군은 초도비행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T-50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날 초도비행 행사는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날 이후 T-50이 날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공군에서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뒤 T-50은 공군이 요구한 1,100여 회 시험비행을 완수하고, 마침내 2005년 8월30일 1호기 출고를 시작으로 양산에 들어간 것이다. T-50이 양산을 시작했다는 것은 기술력과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뜻이다. 고 팀장은 “T-50 개발은 우리나라도 이제 초음속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T-50은 비록 고등훈련기로 제작됐지만 경공격기(A-50)로 개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KAI는 T-50 시제기 4대 중 두 대를 A-50으로 만들었다. A-50은 T-50에 공대지 미사일, 레이저 유도 폭탄 등 경공격 무기를 장착한 전투기다. A-50은 KF-16에 버금가는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 전자장비를 추가로 장착할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KAI는 A-50을 향후 F-16에 맞먹는 전투기(F-50)로 개량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고 팀장은 “T-5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금이 바로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T-50 후속 프로젝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A-50을 개량해 F-50을 제작한다는 것은 연구원들의 바람일 뿐 아직 공군 측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는 T-50개발비용의 50%에 해당하는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팀장은 “결정이 늦어질 경우 10여 년차 연구원들이 그대로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T-50은 다음달부터 공군에 인도되며, 2007년부터 공군 고등훈련 비행에 투입될 예정이다. KAI는 우리 공군이 필요로 하는 만큼 T-50 생산을 계속할 예정이다. 나아가 현존하는 고등훈련기로는 가장 뛰어난 성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향후 30년간 전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의 25%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KAI의 목표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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