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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고인 뜻 기려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 열어야



 

한국 현대사에 우뚝 솟은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이 85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생전에도 고인(故人)을 바라보는 눈은 하나가 아니었지만 서거 이후 온 나라가 고인을 추모하고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정파를 초월해 소통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신속히 국장(國葬)을 결정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화와 민족화해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기리며 애도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평생의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고인의 운명 직전 화해의 뜻을 밝혔다. 1980년 내란죄로 사형시키려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문병을 와서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에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편안했다”는 농담 아닌 진담을 하고 갔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물결은 세계적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 조야의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고인을 추모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고든 브라운 총리, 고인과 오랜 친구였던 폰 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을 포함한 유럽 각국 정상들과 지도자들,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도 심심한 조의를 표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지도자들, 일본 조야의 정치인들도 한결같이 고인의 공적에 경의를 표하며 애도했다. 해외의 모든 주요 언론들이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은 것 같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 상황에서 북한 당국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고위급 조문단을 보내왔다. 반세기가 넘은 분단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모의 물결은 우리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일이다.
 

세계의 감동을 불러오는 것은 고인의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 20년에 가까운 옥고, 가택연금, 추방의 가시밭길에서도 인동초처럼 강인하게 버티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점, 집요한 열정으로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이 되어 권위주의 체제를 일신하고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국가를 만든 점, 이런 업적은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제사회에서 고인은 흔히 남아공의 만델라와 함께 비(非)서구권의 가장 위대한 민주화 지도자로 꼽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실로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남아공에서는 백인 주류세력이 흑백분리 정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옹립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민주화는 훨씬 험난하고 가파른 과정이었다. 분단 상황과 냉전체제의 역경을 딛고 고도 산업화에 따른 방대한 기득권층의 불안감을 달래며 고인이 평화적 정권교체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공로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가 경탄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온몸을 바쳤고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독일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이 그러했듯이 고인의 대북 화해 노선, 이른바 ‘햇볕정책’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크게 고양하고 국제정치와 평화사상에서 세계의 각광을 받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독일과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됐다. 6·25전쟁이 북측의 도발로 일어났기에 대북화해 정책을 펴는 것은 독일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고인은 1960년대 말부터 민족화해와 소통의 길을 공개적으로 주창했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이 때문에 아직도 고인을 보는 까다로운 눈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잠시 긴 호흡으로 미래를 본다면 민족화해와 통일은 필연이며 시간의 문제다. 그때가 되면 한반도를 통해 유라시아 문명으로 가자고 호소한 고인의 꿈은 새롭게 각광받을 것이며, 고인은 민족의 스승이자 세계적 안목을 가진 동아시아 지도자로 추앙받을 것이다.
 

세계가 경탄한 고인의 또 다른 업적은 외환위기를 미래의 성장산업, 즉 지식정보산업으로 극복하려 했고 엄청난 결실을 이룩했다는 점이다. 고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축배의 잔을 들 여유도 없이 침몰할지도 모를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서 위기관리 업무에 몰입했다. 각종 구조개혁을 선두에서 지휘했으며 이에 국민은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고인의 최대 경제 업적은 정보기술(IT)혁명을 신속하게 체계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산업화에서는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일류가 되자’는 국민적 각성과 자원 동원이 이뤄졌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지식정보사회로 변했다. 짧은 시간 동안의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끈 몇 분의 추앙받는 지도자가 있으나 세계의 눈으로 볼 때 김 전 대통령을 능가할 사람은 아직 없다. 단연 독보적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고인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일관된 철학과 윤리가 있었다. 구약성서의 인과응보보다 절대적 용서와 화해, 사랑을 강조한 신약의 정신을 실천한 신앙인(가톨릭·본명 토마스 모어)으로서 고인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던 가해자들을 조건 없이 용서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은 김 전 대통령이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이를 완성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고인의 유업을 계승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고인은 지역갈등에 따른 동서분열, 빈부격차에 따른 계층대립, 남북 간의 이념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고인의 뜻을 이어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정치권을 포함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이 시대의 핵심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한상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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