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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양유현(18) 군은 도통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입시 전형 때문이다. 양군은 2008년 입시전형이 발표되던 2004년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당시 특목고와 일반고를 두고 고민하다 2008학년도 입시는 내신 위주로 하겠다는 대학과 교육부의 약속을 믿고 일반고 진학을 결정했었다. 양군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중 많은 수가 같은 이유로 특목고 대신 일반고를 선택했다.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높인다고 해서 특목고를 다니다 일반고로 옮긴 친구도 있어요.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이제 와서 번복하다니 배신감까지 듭니다. 3년 간 그 약속을 믿고 노력했던 학생들은 누가 보상해주죠?”


#2.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이선영(45) 씨는 요즘 마음이 바쁘다. 아들이 다닐 학원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목고를 가려면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아서다. 몇 년 전부터 앞으로 대학이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해서 마음을 못 정했지만 요즘 대학을 보니 결국 수능 위주라는 판단이다. “내신 비중이 약속대로 지켜졌다면 굳이 특목고를 갈 필요 없죠. 사실 특목고 준비가 쉬운 일인가요? 돈 많이 들죠, 아이도 고생이죠. 하지만 국립대인 서울대조차 특목고 우대 정책을 펴는데 우리 아들처럼 가능성이 있다면 안 시킬 수가 없어요.”



올해 대학입시는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생부 반영비율을 높였다. 그런데 2008학년 대학입시가 몇 개월 남지 않은 지금 서울대가 내신 1· 2등급을 모두 만점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일부 사립대학은 1~4등급을 동점처리 하는 등 내신 무력화를 시도했다.

학생부 위주 전형 방법은 이미 2004년에 확정 발표됐다. 그 당시 고교, 대학, 학부모협의체를 구성해 서로의 합일점을 찾아 내놓은 것이 현재 2008년 입시제도다. 대학들의 자율 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2006년 5월 2008학년도 입시에서 대입 학생부 비율을 50% 이상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주요 사립대학들은 지난해 9월 학생부 반영비율을 40~50%로 높이겠다는 발표를 했다. 교육부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부 평가를 절대 평가에서 상대 평가로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학총장과의 토론회에서 “2008년 대학입시는 2004년에 정부와 학교 학부모 등 당사자 간에 합의했던 것이고, 일종의 국민적 합의로 수용됐던 것”이라며 현재 대학의 모습은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집단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대학이 주장하는 자율 역시 “국가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대학의 자율도 규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창의성 교육이라든지 민주주의 교육이라든지 이런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은 자율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또 대학이 현재의 입장을 강행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고히 했다.


내신반영비율 강화는 교육부·대학·학부모 간 합의된 약속
대학과의 갈등이 커짐에 따라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되자 교육부는 지난 6월 25일 ‘학교생활기록부 성적 반영방법’ 논란과 관련한 기본입장과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학생부 중심인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기본 방향을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수험생들이 바뀐 입시제도에 적응할 여유를 갖도록 2008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을 오는 8월 20일까지 발표할 것을 주문했다. 또 대입제도의 취지와 부합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연계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내년도 입시 전형을 올 11월까지 제출하도록 해 학생부 위주의 체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같은 교육부의 발표에 각 대학은 강하게 반발했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아예 교육부가 뽑아라’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다. 서울대는 교육부의 방침과 상관없이 올해는 일단 예정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배포다.

여기에 희생되는 것은 교육부와 대학이 합의한 약속을 믿었던 수험생들이다. 김수현(숭실고 3) 군은 “당장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게 나을지, 이제부터라도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좋을지 정말 모르겠다”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학생은 “결국 수능, 논술, 내신을 다 잘해야 하므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수험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선 고등학교에서도 불만이 크다. 중동고등학교 유원교 교감은 “올 봄만 해도 서울지역 교장단 회의에서 교육부 방침이 확고하다고 했는데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럽다”며 “학부모까지 합의한 사항에 대해 대학이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교육연대 김정명신 운영위원장은 “대학 입시가 교육 양극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2005년부터 나온 정책이 제대로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도록 앞장서야 하는 서울대가 취할 행동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서울대의 행태는 ‘우수 학생’ 선발을 넘어서 우수 학생의 ‘배경’까지 욕심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특목고나 비평준화고교 등은 사교육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수학생이라는 미명 하에 부모의 경제적 배경까지 넘본다는 의미다. 

서울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지방 국립대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남대의 한 관계자는 “국립대는 사적인 이익보다 공교육 활성화라는 교육부의 방침에 맞춰가야 한다”며 “서울대도 분명 국립대인데 저렇게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교조는 “대학들도 변별력 운운하며 더 이상 학생과 학부모들을 우롱하지 않기 바란다. 일부 교과에 한정된 기계적인 문제풀이 연습, 학원에서 세계 명작 다이제스트 달달 외운 논술, 혹은 단 하루에 끝나는 수능시험 등과 3년간 학업 성취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의 결과가 총 망라된 학교생활기록부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 변별력을 가지겠는가?”라는 성명서를 내고 대학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바람직한 대입제도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 생활기록부다. 대학들이 4년 전 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상계동에 사는 주부 홍은주(35) 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려면 남편이 버는 것만으로는 힘들다.

“특목고에 가기 위해서는 선행학습이 필수예요. 힘들지만 아이가 원하는데 부모로서 이 정도는 해야죠. 특목고만 가면 애 팔자가 달라질 텐데 돈 없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려면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초등학교는 옛말이고 이젠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시켜야 특목고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특목고 진학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교육을 조장하고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특목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목고 입시 전문사이트인 스터디매니아의 임미자 교육사업부장은 “특목고 때문에 선행·심화 학습이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목고 입학시험을 교과서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고 내신 비율도 줄어들기 때문에 사교육은 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은 고등학교에서 키워놓은 우수학생을 서로 뽑겠다며 이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2008년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 대학들이 수능 위주로 선발하겠다는 것은 특목고 학생을 많이 뽑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서울대조차 특기전형자의 비율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며 특목고 학생들이 입학할 기회를 활짝 열어놓았다.

특목고란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줄임말이다. 특목고인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는 이름 그대로 외국어와 과학에 소질 있는 학생을 선발해 해당 분야를 집중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취지는 사라지고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했다. 각 대학들도 우수학생이라는 미명하에 60만 명에 가까운 일반학생보다 3만 명도 안 되는 특목고 학생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특목고에 가는 목적은 대학 입시가 아니라 특정 분야 개발이기 때문에 내신의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내신이 불리하다고 그 대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특기자 전형이나 정시 모집 등 특목고 학생에게 유리한 전형방법이 있음에도 더 내놓으라는 욕심이다.

내신 강화가 발표된 2005년에 특목고 입학 경쟁률은 2004학년도 6.06대 1에 비해 뚝 떨어진 4.6대 1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학과 특목고로 인해 경쟁률은 금세 되살아났다. 대학은 특목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입시설명회 때마다 “수능 비중 절대 안 줄인다. 내신 신경 쓰지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수능을 준비하라”고 외쳤다. 2004년에 대학도 참여해 이루어졌던 2008학년 입시제도를 애초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외고나 과고의 본질을 살리기 위해 입학생을 뽑을 때 교과서 내에서 문제를 출제하고 수업의 내용도 본래의 목적을 살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6월 26일 교육부가 발표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위해 소외계층을 배려한 기회균등할당 전형이 현재 3.9%에서 2009년 11%로 확대된다. ‘기회균등할당제’는 경제적 격차가 교육격차로 굳어져 계층이동의 기회가 줄어드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다. 기회균등할당제가 도덕적 가치를 뛰어넘어 국가경쟁력의 핵심 전략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학 후에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에게는 전액장학금을, 차상위계층 이상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등록금 면제와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우선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은 냉랭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는 미국 대학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 5월 2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 졸업생 안토니 애브라함 잭에 대한 사연이 뉴욕타임스에 다뤄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저소득층 출신인 잭 씨는 애머스트대학으로부터 학비 일체와 함께 주당 7시간씩 시간당 8달러를 지급하는 근로장학금을 받았다. 잭 씨에 대한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선발 때부터 가족 총수입, 학부모 학력, 직업 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감안해 문턱을 낮췄고, 입학한 뒤에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수학·과학 과외비용까지 지원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애머스트대학 이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버지니아대, 윌리엄스대, 노스캐롤라이나대 등 유수의 대학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학 입학 문을 낮추고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일찌감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 AA)를 도입하며 보수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버클리 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가난한 가정이나 소수인종 출신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SAT 성적이 중간이거나 낮더라도 자신이 다닌 학교에서는 아주 높은 점수”라며 “버클리 대학이 원하는 학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고를 이룬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애머스트대학의 안토니 막스 총장도 “우리 대학은 여러 부류의 유능한 인재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성적보다는 다양성과 가능성이 대학 전체의 교육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미국의 대학들은 사회경제적, 인종적으로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을 뽑는 것이 대학경쟁력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대학입시가 중고등학교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육성과가 다른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상황에서도 미국의 대학들은 스스로 자율적인 입시방식을 통해 소수자와 약자를 우대하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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