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 한순간에 스러져간 그날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북한의 위협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지난 3월 22일 대구시 달서구 달서대로에 위치한 계명문화대학 부사관과에서 ‘천안함 영웅 안재근 수병 초청특강’을 들은 학생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생존장병인 안재근(24) 예비역병장을 초청한 이날 특강은 그날의 사건을 대중 앞에서 증언한 첫번째 공개강연이기도 했다.
지난 2월 10일 만기 전역해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안재근씨는 이번 학기에 대구 계명대 화학 시스템공학과 3학년으로 복학했다.
천안함 피격을 계기로 개인주의에 매몰된 듯했던 20대가 ‘Patriotism(애국심)’과 ‘Power n Peace(평화)’, ‘Pragmatism(실용)’에 눈뜬 젊은 보수층 ‘P세대’로 변신하고 있는 최근 흐름 때문일까.
특강이 부사관과 자체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강연장 안은 1백명이 넘는 부사관과 학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드문드문 다른 과학생들도 눈에 띌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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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과 같은 대학생 신분이면서 강사로 나선 안씨는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공식발표가 있었고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유언비어가 돌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거나 함께 근무했던 장병들을 떠올릴 때면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강연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히거나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1년 전 3월 26일 밤, 저는 함수 40밀리미터 함포 밑 격실에서 당직근무 중이었습니다. 밤 9시22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몇 초 만에 함 앞 부분이 확 들려버렸습니다. 발전기가 파손되면서 정전이 돼 함 내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장비와 구조물에 맞고 깔린 장병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지요. 그때 소형 손전등이 손에 잡혔습니다. 등화관제가 잘돼 밤이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함 안에서 쓰려고 휴가 때 구입한 것이었죠.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손전 등을 켜보니 대부분 피를 흘려 온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쟁이구나’ 싶었지요.”
그날의 참혹하고 위급한 순간을 전하는 안씨의 증언에 강연장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장병들을 구조하고 함수(뱃머리) 쪽으로 나온 후 해양경찰청의 고속단정에 옮겨 탈 때까지의 악전고투를 설명할 때는 청중의 얼굴에 숙연함마저 감돌았다.
“고속단정을 타고 천안함을 떠나면서 그제야 함 전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함 뒷부분이 없어졌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지요.
1~2분 만에 천안함은 침몰했습니다. 손 쓸 방법이 없었죠. 군 생활 내내 함께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에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그 후로 기억하는 것조차 괴로운 시신수습과 장례절차가 이어졌다. 전사자 유가족들의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 웃고 얘기하던 전우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잃은 충격은 모든 생존 장병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고 그는 털어놨다.
“전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지금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지요. 거식증으로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빠진 장병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잖게 저를 괴롭히는 것은 근거없는 유언비어와 따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안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좌초설, 내부폭발설 등 인터넷이나 일부 단체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비록 수병 신분이었지만 2년여간 함정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살려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건이 일어났던 곳은 천안함이 늘 출동하던 해역이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해역에서 좌초했다는 설도 말이 안되지만 내부폭발이 있었다는 얘기는 정말 황당합니다. 제가 병기병이라 잘 알지요. 탄약도 그대로 있었고, 유류탱크가 터졌지만 화재가 없었습니다. 진짜 내부폭발이 있었다면 기름에 불이 옮아붙지 않을 리 없지요. 하지만 화상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잖습니까.”
천안함 피격사건의 실상을 경험자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그는 대학생 청중에게 우리의 안보현실을 상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거나 잊으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휴전상태입니다. 언제 전쟁이 나더라도 이상한 상황이 아닌거죠. 제가 복무했던 기간에만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 등 세 차례나 북한의 도발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의 위협은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의 특강은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백령도 남서쪽 바다에 조국의 영해를 지키다 산화한 46명의 천안함 용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이날 특강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부사관과 학생은 아니지만 강연 소식을 듣고 강연장을 찾았다는 경찰행정학과 2학년 이동수(22)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읽으며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안 병장의 증언을 들으니 많은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부사관과 2학년 박정욱(21)씨도 “손전등 하나로 많은 장병을 구조한 얘기를 들으니 천안함의 진실이 보다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며 “안병장도 천안함 피격사건의 또 다른 영웅”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호응 속에 2시간 가까운 강연을 소화한 안씨는 생존장병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는 말을 남긴 후 강연장을 떠났다.
“어떤 분들은 경계근무에 실패한 패잔병들이 무슨 말이 많냐고 하시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제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산화한 분들을 영웅으로 기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때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생존장병들에게도 제도적·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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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