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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용의 협공 공룡 미국을 삼킬까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남미에서 생겨나 한국의 1980년대를 풍미한 종속이론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종속이론에 경도된 학자들은 한국을 포함해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된 주변부의 저개발국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개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주변부가 부를 창출하더라도 중심부가 교역을 통해 그 부의 큰 몫을 챙겨가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종속이론을 보란 듯이 깨고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후 종속이론은 서서히 소멸됐다.

종속이론은 틀렸다. 제국주의적인 수탈과 착취가 이뤄지지 않는 한, 돈은 부유한 국가에서 덜 부유한 국가로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잘살고자 하는 의욕과 사업을 조직할 역량이 있다면,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와 교역을 늘려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원리에 따라 우리나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꼭 체결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이의 벽을 트면 누가 이익입니까?”라고 반문한다.

두 나라 사이 부의 격차가 클수록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를 상대로 돈을 벌기 쉬워진다. 비유하면 두 수조의 수위 차가 클 때엔 파이프를 하나만 연결해도 ‘윗물’이 아래로 빠르게 내려온다. 부의 격차는 임금 수준의 격차로 직결되고, 임금이 낮을수록 예컨대 부자 나라 시장을 뚫을 저가 상품을 여러 가지 만들어 많이 팔 수 있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수십년 동안 매우 낮은 곳에 머문 나라였다. 이는 중국과 인도가 교역 상대국을 급속도로 따라잡으며 세계경제의 거인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배경이다.

부자 나라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부자 나라보다 값싼 인력을 투입해 제품을 제조하고 저가에 수출하면 된다. 다음으로 부자 나라에서 품삯이 후한 일감을 따오는 길이 있다. 중국은 첫째 경로에, 인도는 둘째 경로에 상대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상대적인 강점’이라고 쓴 건, 두 나라가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경로를 다 취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사회주의 정권 몰락 등을 계기로 세계경제에 새로 편입된 어떤 나라도 중국과 인도처럼 큰 파도를 몰고 오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세계경제라는 메커니즘의 톱니바퀴 중 하나로 자리잡은 뒤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반면 이들 거대한 두 나라는 세계경제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특히 다른 많은 나라의 일자리와 시장을 잠식하면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나라의 급부상으로 가장 큰 위협에 놓인 나라가 미국이다. 중국 제조업의 공세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미국은 그 타격을 받는 여러 나라 가운데 하나다. 반면 영어를 기반으로 한 인도의 지식서비스 산업은 주로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다른 여러 선진국과 달리 중국과 인도의 협공을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런 나라로 미국 외에 영국이 있지만, 영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잠시 영어를 기반으로 한 인도의 지식서비스 산업이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는 속도와 양상을 살펴보자. 인도에는 영국보다 두 배인 1억명의 영어사용자를 바탕으로 그동안 100만이 넘는 화이트칼라 서비스산업 일자리를 미국과 영국에서 끌어왔다. 경영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앞으로 30년 동안 매년 30만개씩 모두 900만개의 미국 일자리가 해외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서 해외란 물론 주로 인도를 가리킨다.

미국의 주요 기업이 인도에 떼어주는 일자리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까지 인도로 넘어가는 중이다. 미국 기업은 이전에는 프로그래밍, 콜센터, 회계 자료 작성 같은 단순 업무를 주로 인도에 넘겼다. 이제는 금융회사의 기업분석 보고서도 맡기고 있다. 인도에 초벌 보고서를 맡긴 뒤 이를 받아 한 번 더 점검하고 가공해 직접 활용하거나 외부에 제공하는 식이다.




미국의 새 일자리 창출 ‘낙관과 비관 사이’
이런 상황인데도 미국에서 두 나라의 성장을 경고하고 기술혁신 등을 통해 두 나라를 따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게다. 미국의 과학기술자와 저널리스트들이 경적을 울린 것은 2005년 무렵부터였다. 미국 학술원은 2005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2004년 물리학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이 76년에 비해 45%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 나온 책 <이노베이션 갭 좁히기(Closing the Innovation Gap)>는 실리콘 밸리조차 미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혁신을 북돋우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경계하라며 비교하는 대상이 중국과 인도다. 지난 2006년 미국에서 나와 지난 여름 국내에 번역된 책은 아예 두 나라만 집중 탐구했다. 제목도 <코끼리와 용(The Elephant and the Dragon)>이다. 번역본 제목은 ‘마오를 이긴 중국 간디를 넘은 인도’. 이 책의 저자는 중국과 인도를 4개 장(章)씩 번갈아가면서 속속들이 들여다본 뒤 마지막 9번째 장에서 두 나라의 부상에 대응해 미국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했다.

저자는 “장기적인 전략에 따른 기초 연구를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유망한 분야의 기술을 개척해 나감으로써 중국과 인도가 가져가지 못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 두 나라가 미국에서 ‘오래된 일자리’를 빼앗아가더라도 타격을 덜 받는다고 설명한다.

색다를 게 없는 평이한 해법이다. 저자가 만난 한 사업가도 “미국인들은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며 “(방법은 다 나와 있고) 실행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답을 아는데 실행이 잘되지 않는 게 아니라, 실행은 하지만 미국이 두 나라보다 속도에서 밀리는 탓에 문제인 건 아닐까.

미국 경제가 코끼리와 용에게 밀려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걸을지, 아니면 각고의 노력으로 수렁에서 탈출할지는 미국의 경제주체에게 달려 있다. <코끼리와 용>의 저자는 “미국인은 유연하고 창의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품을 지녔으며 세상에서 가장 낙관적인 사람들”이라고 칭찬한다. 이어 “미국인은 뒤처졌을 때 오히려 최고 기량을 발휘한다”고 미국의 앞날을 낙관한다.

코끼리와 용의 도전과 이에 대한 미국의 응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우리는 이들 거인의 싸움에 어떻게 실리를 취할까. 흥미로운 구경거리고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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