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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나는 사기꾼이 아니라 야성적 충동을 지닌 사업가다.”
사기,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한 기업인이 지난해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해 화제가 됐다.
그보다 1년 정도 전에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야성적 충동’을 거론했다. 이 총재는 강연에서 “기업들이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하면서 투자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는 ‘야성적 충동’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야성적 충동’은 animal spirits를 우리말로 옮긴 표현이다. 경제학자 존 M. 케인즈가 1936년에 낸 ‘고용·이자·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이하 일반이론)’에서 강조하면서부터 경제적인 맥락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
Animal spirits는 제인 오스틴의 1813년 작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도 나온다. 다섯 자매 중 막내 리디아를 묘사하는 대목이다. 잠깐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리디아는 통통하고 발육이 좋은 열다섯 살의 아가씨였다. 혈색이 좋고 쾌활한 얼굴이었다. 리디아를 귀여워한 어머니는 이른 나이에 그녀를 사교계에 선보였다.
이 다음에 ‘그녀는 animal spirits가 넘쳤고,’(She had high animal spirits,)라는 문장이 나온다. ‘오만과 편견’이 ‘일반이론’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쓰였으므로 animal spirits는 케인즈가 만든 조어가 될 수 없다. 실제로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이 어구를 강조하지 않아, animal spirits는 다른 본문과 똑같은 글씨체로 적혀 있다. 영영사전을 보면 animal spirits를 healthy, lively vigor로 설명해 놓았다. 웬만한 영한사전들도 이를 표제어로 넣어 ‘혈기, 발랄한 생기, 활기’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과거 국내 경제학자들이 이미 있던 자연스런 어구를 어색하게 번역했고, 그 탓에 국내에서만 animal spirits가 야성적으로 통하게 된 게 아닐까. 이 글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멈추고, 정답은 전문가에게 남겨 두고자 한다. 일단 이 글에서는 animal spirits를 야성적 충동 대신 ‘활기’라고 쓰기로 한다.
번영은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좌우
케인즈는 활기라는 어구를 4편 투자유인 중 12장인 ‘장기 전망의 상태’에서 썼다. 케인즈의 주장은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이자율이나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수익이 아니라 기업가의 낙관주의와 활기라고 지적했다. 케인즈의 주장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투자의 불안정성은 투기 외에도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 즉 우리가 취하는 적극적인 행동의 많은 부분은 수치적인 예상보다는 충동적인 낙관주의에 의존한다. 그 행동이 도덕적이든 쾌락주의적이든 경제적이든 말이다. 행동의 최종적인 결과는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드러난다. 따라서 무언가 적극적인 행위를 하기로 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아마 활기, 즉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에 나서려는 충동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결정은 수량적인 편익들을 각각의 확률과 곱한 수치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업이 사업계획서에 밝힌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런 체하기 때문일 뿐이다. 남양회사(18세기 초 영국에서 투기의 대상이 된 무역회사. 증시 거품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향후 들어올 수익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활기가 떨어지고 충동적인 낙관주의가 주춤거리게 되면,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이익 기대보다 더 합리적이 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로지 수치적인 예상에만 의존하게 되고, 기업은 쇠퇴하고 망하게 된다.
투자의 불안정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얼까. 수요를 구성하는 요소인 소비와 정부지출, 순수출, 투자 가운데 투자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 혹은 감소할 수 있고, 이 때문에 경기가 확장되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은 총재가 경기를 끌어올리는 걸 도와달라고 기업가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케인즈의 말을 더 들어보자.
불경기와 불황은 투자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심해진다. 또 경제적인 번영은 정치사회적인 분위기가 평균적인 사업가에게 우호적인지 아닌지에 크게 좌우된다. 노동당 정부나 뉴딜정책에 대한 공포가 기업 활동을 저하시킨다면 이는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도, 정치적인 음모의 산물도 아니다. 이는 미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충동적인 낙관주의를 흐트러뜨린 결과다. 투자 규모를 예상할 때 우리는 따라서 기업인의 신경과 히스테리, 심지어는 음식을 소화하는 상태나 날씨에 따른 반응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과장이 섞여 있겠다. 설마 투자부진이 기업인의 소화불량 때문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인즈의 글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정부가 기업인과 뜻을 모으기보다는 엉뚱한 일에 힘을 낭비하면서 무의미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다. 그 누구보다 기업인의 마음을 잘 아는 대통령이니만큼, 기업인들이 활개를 활짝 펴도록 국정을 운영하리라고 본다.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일까. 원유와 원자재, 곡물 등 가격이 급등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기업들은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얼마 전 지식경제부가 업종별 매출액 상위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은 지난해보다 19.9% 많은 62조5000억원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6년과 2007년 조사 때의 증가율인 10.9%와 0.7%보다 큰 폭 높아진 수준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한국을 기업가 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 기업가 정신, 혹은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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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