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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한 아이오와호의 운명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웠던 미국 전함(戰艦) USS ‘아이오와(Iowa)’호(號)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이오와호는 이미 퇴역한 상태로 미 해군이 운용 중인 군사항에 정박 중이다. 미 해군이 데드라인(최종 시한)으로 정한 오는 11월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 아이오와호의 인도(引渡)를 위해 나서 미국 언론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중국계 미국인 여성 메릴린 웡(53) 씨가 약 60년 전 한국전쟁에 참전, 빛나는 전과를 올린 미국의 역사적인 전함 아이오와호의 인수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미국 지역신문 타임스헤럴드와 세크라멘토비 등은 지난 5일 비영리단체 ‘역사적 전함기념관 준비위원회’(www.battleshipiowa.org) 위원장인 웡 씨가 이 단체를 중심으로 아이오와호 인수위원회를 구성한 뒤 전함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이 아닌 한국전에 개입한 중국의 미국 이민 세대가 한국전참전 전함을 인도 받아 기념관으로 꾸미려는 노력은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진다. 아이오와호는 1943년 1억2천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건조됐으며, 전장 2백70미터, 무게 4만8천 톤, 14층 빌딩 높이의 전함으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등에도 직접 참전해 실전에서 강력한 위력을 과시했지만 1990년 퇴역한 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북쪽 베니시아 인근 수위선 만 예비선대(Suisun Bay Reserve Fleet)에서 다른 퇴역 전함들과 함께 정박해 있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 해군은 통상 기념사업을 원하는 단체 등에 퇴역한 전함을 인도하는 게 관례다. 교육용이나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려는 민간인과 자치 단체에 기꺼이 양도한다. 하지만 아이오와호는 최근 어려워진 미국 경제상황으로 이를 인수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본 웡 위원장이 50명의 민간인들을 규합, 아이오와호를 인도 받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그는 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무보수로 이 위원회를 운영해 왔다. 그야말로 순수한 취지에서 전함을 활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웡 씨는 “민간단체가 전함을 인도 받아 역사관으로 꾸민 사례가 40건이나 된다”며 “해군으로부터 전함을 양도 받으려면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재원 확보를 명시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기업 등을 상대로 투자 유치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아이오와호는 2차 대전과 한국전 등에 참전해 중요 임무를 수행한 만큼 자라나는 세대에게 살아 있는 역사 교재가 될 것”이라며 “건조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져 수학·물리·화학·기술분야에서도 다양한 교육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연방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 의원을 비롯해 미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연방법상 전함의 박물관 개조 등에 정부가 지원을 하지 못하게 돼 있어 민간 차원의 유치작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이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측면 지원을 한다면 재정확보에도 유리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아이오와호를 양도 받아 박물관 등으로 개조하는 데 최대 2천만 달러(2백24억원 상당)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위원회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최종 인도 시기에 맞춰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오와호가 한국전에 참여했던 만큼 한국의 투자 참여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관심을 요청하고 이미 이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전함기념관 준비위원회는 아이오와호의 양도승인이 나면 전함을 내파 밸리 인근으로 옮길 계획이다. 2차 대전 당시 전함을 건조했던 조선소 소재지 매어(Mare)섬 부근 발레오시로 옮겨 박물관과 호텔, 기업전시관, 각종 오락 및 관광시설 등으로 개조해 관광객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한국관, 한국기업 전시관 등을 만들 생각도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만큼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위원회는 특히, 한국 동포들이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샌프란시스코와 내파 밸리 인근에 정박한다면 매년 수많은 미국인 외 한국 등 외국인 방문객들에 찾아와 상당한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소한 연간 50만 명 이상이 찾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아이오와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1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과의 회담을 위해 이란 수도 테헤란으로 갈 때 이용했으며, 2차 대전 종전 때는 도쿄 만에서 일본의 항복을 지켜보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1951년 8월 25일 원산항 인근에서 북한군 보급선을 공격하는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한국전 이후에는 1988년 페르시아 만에서 유조선의 출입을 호위했으며, 1989년에는 훈련 중 발생한 폭탄사고로 수병 47명이 선상에서 숨지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아이오와호는 이래저래 지난 60여 년 동안 숱한 해전 참여 등 냉전시대의 다양한 역사적인 현장에서 파란만장한 경험을 한 전함이어서 퇴역 후에도 일반인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민간단체가 한국의 지원을 받아 전함을 인도 받는다면 다시 한번 세계언론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그 운명의 날은 10개월 후에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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