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매일 아침 톰슨가젤은 깨어난다. 톰슨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안다. 사자는 가장 느린 톰슨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냐 톰슨가젤이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해가 뜨면 당신은 뛰어야 한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든 비유다. 이처럼 경제 환경이 아프리카 평원과 같은 자연과 다르지 않다는 관점을 우리는 자주 접한다. 이때의 자연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우선 경제는 생태계의 먹이사슬과는 정반대의 유인에 의해 작동한다. 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은 대부분 아랫 단계 생물을 죽이면서 이어진다. 먹이사슬 아랫 단계 생물은 윗 단계 생물이 자신을 잡지 못하도록, 자신의 유전자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진화한다. 경제는 제조업의 경우 원자재 생산업체-부품 생산업체-완성품 제조업체-소비자로 이어지는 부가가치의 사슬에 따라 움직인다.
고객 위해 뛰다보면 경쟁자 이겨
먹이사슬에서는 윗 단계 생물이 쫓아다니고, 아랫 단계 생물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반면 부가가치의 사슬에서는 아랫 단계에 있는 경제주체가 윗 단계 경제주체를 쫓아다닌다. 유권자가 의원을 선출하듯 윗 단계 경제주체는 맘에 드는 아랫 단계 경제주체를 골라 지갑을 연다.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각 사슬에 ‘기업생존의 부등식’이 있다고 설파했다. 기업생존의 부등식이란 가격이 비용보다 커야 하고, 가치가 가격보다 커야 한다는 내용이다. 가격보다 더 큰 가치를 주는 기업일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같은 값이면 더 큰 부가가치를 주는 기업에게 돌아간다. 또 같은 부가가치라면 더 값싸게 제공하는 기업이 차지한다. 고유한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다른 업체가 흉내내지 못하는 탁월한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은 우월한 지위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경제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다시 해가 뜨면 당신은 뛰어야 한다. 잡아먹거나 잡혀먹히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경쟁자보다 먼저 고객에게 이르기 위해서다.’ 생태계의 경쟁이 ‘어떻게 하면 남보다 한발 앞서서 뺏느냐’라면, 경제에서의 경쟁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빨리 더 큰 부가가치를 줄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줘야 받으니, 이른바 ‘기브 앤드 테이크’다.
물론 실제 상황은 이와는 판이하다.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겪는 현실은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르지 않다. 먹이사슬처럼 부가가치의 사슬에서도 소기업에서 중기업, 대기업으로 높아지면서 숫자가 줄어든다. 윗 단계의 기업은 이런 상황이 주는 우월적 지위를 휘둘러 아랫 단계에 있는 협력업체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러나 이런 실정이 부가가치의 사슬이 갖고 있는 본질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이는 뛰어난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대등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이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지난 7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리켄(理硏)이 지진피해로 생산에 차질을 빚자 일본의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생산시설 복구 현장에 모두 1000여 명의 직원을 파견한 일이다.
“어우르는 자들이 살아남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란 논리를 앞세워 아랫 단계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는 대기업은 자연에서 상생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생태를 연구하는 최재천 서울대 교수는 자연에서 서로 도운 종들이 더 번성했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어우르는 자들이 살아남는다’는 글에서 “사람들은 ‘자연’ 하면 흔히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 등의 표현을 떠올리지만 다윈 자신은 그런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태학자들도 과거엔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긴 종들만이 오늘날 이 지구에 살아남은 것으로 이해했다”며 “그래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대개 생물들의 경쟁관계를 연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생태학 연구의 추세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전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생물들보다 일찍이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한 생물들이 훨씬 더 많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최 교수는 ‘어우름’(상생)의 대표적인 예로 꽃을 피우는 식물과 곤충을 든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생태계 생물중량에서 으뜸을 차지한다. 곤충은 숫자가 가장 많은 생물집단이다. 두 생물집단이 이처럼 생태계에서 무게와 수로 으뜸의 지위에 오른 것은 “서로 물고 뜯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아” 도운 덕분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한다. 이어 무차별적 경쟁보다 상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류도 어찌보면 곡물·가축과 상생한결과 이처럼 번성했다고 덧붙인다.
생태계와의 비교가 경제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경제에서 경쟁의 목적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고객에게 더 큰 효용을 주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경쟁자를 앞서게 된다. 경쟁자를 이기는 데에만 골몰하다가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간과하게 된다. 실제로 백화점이 주력인 유통업체가 다른 백화점과의 시장점유율 경쟁에만 치중하다가 할인점 시장의 기회를 놓친 사례가 있다.
또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플러스 섬 게임을 해야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는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등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상생경영을 펼치는 일본이 세계 최고의 산업경쟁력을 자랑하는 데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협력업체에게 가혹한 대기업 얘기가 더 익숙하다. 대기업은 반대로 경영주나 그 2세가 큰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 협력업체에게는 일정한, 가끔은 과도한 이익을 보장해준다. 그러다보니 계열사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 외의 협력업체는 경쟁력을 키울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그런 대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업체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 상생은 다른 종끼리 이뤄진다. 같은 종끼리는 대개 다툰다. 그러나 경제에서 대기업은 협력업체와 같은 ‘종’에 속하지 않는다. 상생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대기업만이 소비자에게 더 큰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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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