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과 사적소유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국가의 개입과 인위적인 재배분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복지를 발전케 하는 추동력으로 우리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가 산업화의 발달로 인한 각종 부작용의 분출, 둘째가 독점자본을 대신하여 국가가 총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작동, 셋째가 국민의 복리에 충실한 국가관료 엘리트들의 정책 설계 능력, 넷째가 성숙한 이익집단에 의한 욕구의 표출과 관철,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당활동 등이 그것이다.
1961년부터 본격적인 복지입법이 만들어지면서 공적 사회복지역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본격적인 제도 확대기 이전까지 서구의 복지역사를 추동시켜 온 그 어떤 동력도 갖지 못한 채, 오로지 독재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경제성장의 보족적 도구라는 두가지 특수한 요인이 그 역할을 대신하여 왔었다. 1961년과 1981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반민주적이었던 그 두해가 사회복지입법사에 있어서는 가장 정점이 되는 해였다는 사실, 산업재해보상보험이나 일부대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만이 유독 조기 실시되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복지 추동력의 결여는 우리나라 복지제도를 시혜적인 성격으로,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후진적 모습으로 조형(造型)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70년대와 80년대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리는 가운데에서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독재정부에 항거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을 뿐, 복지제도에 대한 시각은 모순된 체제의 근본적 변혁을 가로막는 정권 시혜물로 보았던 것도 복지발전을 지체시킨 요인이기도 하였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열풍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된 정치지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노동운동과 각종 시민운동의 분출을 낳는 계기가 되어 이후 민주화과정의 견인체 노릇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러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우리나라 사회복지발전사에 있어 진정한 추동력을 회복하는 계기였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진실의 일면이다.
과거의 복지는 시혜적 성격 강해
1988년 국민연금제도의 도입, 1989년 의료보험의 전국민으로의 확대, 1992년 영유아보육법의 제정, 1995년 고용보험의 도입 등 굵직한 복지제도의 발전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성장지상주의라는 강고한 외피(外皮)는 1987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온기로 그리 간단히 제거될 것은 아니어서, 김영삼 정부까지도 진정한 시민의식의 성숙과 발로에 의한 복지권 확보의 역사가 본격화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1997년 닥쳐온 외환위기의 광풍은 국민들의 절대 고통을 낳게 했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의 사회안전망에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관심을 촉발했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는 정권의 수평교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적 위기 앞에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위에 놓여 있게 되는지에 대한 처절한 각성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 다음의 과정이 바로 경제적 민주화와 함께, 무엇보다도 사회적 민주화임을 각인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여 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지역단체들은 국민의 기초생활(national minimum)이 하나의 권리로서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1999년 9월 국회를 통과하여 2000년 10월부터 발효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탄생시키는 역사를 만들어 냈다. 이는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추진력이 국민과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사회에 의해 주체적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그간 시민사회 내에 움직임이 있었지만 정권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던 의료보험의 통합주의에 입각한 개혁, 국민연금의 가입자 참여민주주의로의 개혁 등이 김대중 정부 탄생과 함께 비로소 실현된 것 역시 시민사회로부터 발원된 대안적 복지정책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정도(正道)의 역사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디지만 점진적 발전 기대해야
그러한 김대중 정부의 역사적 성과를 담보로 시작된 참여정부.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동반성장’, ‘사회정책의 경제정책화, 경제정책의 사회정책화’ 등 의미있는 담론을 생산하며 복지분야의 일정한 진전을 기록하였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양극화와 사회양극화의 균열상은 진정되었다고 볼 수 없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속도의 노령화 등을 감안하면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산업화 사회에서 소득중단을 유발하는 각종 위험 요인, 이른바 구(舊) 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s)인 실업과 장애, 노령, 출산, 빈곤, 가구주의 사망, 출산 등에 대해서도 제대된 방어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사회, 개방사회, 노령사회 등으로 급속히 편입됨으로써 직면하는 이른바 신(新)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 즉 가족 내 부양기능의 약화, 신진기술 습득의 지체로 인한 노동기회 상실, 비정규직의 복지사각화 등을 동시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힘든 여정(旅程)은 87년의 민주항쟁만큼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선명한 타도대상이나 선악으로 구분되는 피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때론 차악(次惡)의 선택만이 가능하거나, 계층과 집단 간의 이해가 상충할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제약요건으로 인해 매우 더디고 점진적인 진전에 갈급한 마음은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와 사회적 민주화로 완성되어야만 우리사회의 진정한 민주화의 역사는 완성된다는 점에서 아무리 힘들지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 또 다시 우리 역사의 진보를 믿고, 우리 민중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여 새로운 민주화의 기념비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사회복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 반드시 발전시켜야 하는 필수물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성장과 복지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선(先) 성장, 후(後) 분배의 신화에 함몰된 이에겐 더 이상 신성한 복지의 주권이 허락되지 않아야 한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복지없는 성장이어서도 안 되고, 성장없는 복지이어서도 안 된다. ‘복지를 위한 성장’ 그리고 ‘성장과 함께 하는 복지’를 실현하여 민주화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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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