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올해로 ‘6월 민주항쟁’이 스무 돌을 맞는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성년이 된 것이다.
6월 항쟁은 헌법전문이 명기한 대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군사정권에 대항해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등 험난한 가시밭길로 이어진 우리의 근현대사는 또한 이를 극복하고 국민의 자유와 존엄을 수호하려는 저항과 투쟁의 발자취로 아로새겨져 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 향유의 계기
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 등 신군부에 대항한 광주항쟁이 처절한 참극으로 끝난 이후 7년 만에 우리 국민들은 전국에서 동시에 80년 광주를 재현해냈다.
전두환 정권은 한때 계엄령을 검토했지만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물리력을 총동원해도 분출한 국민의 힘을 제압할 수 없었기에 유혈진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6월 항쟁은 우리 현대사를 결정한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과 더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앞서 두 사건보다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의 성장을 뚜렷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4·19와 5·18은 즉각적인 반동을 불러와 5·16쿠데타와 5공화국 군사정권을 불러왔다. 그러나 6월 항쟁은 그 이후로 부단히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 확대하는 민주적 발전과정을 거쳤으며 대외적으로는 남북냉전의 해소와 평화공존의 길을 공인받았다.
또한 6월 항쟁은 그 이전과 비교해 민주화운동의 전략전술적인 성장과 진화를 볼 수 있다.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 쟁취라는 하나의 강령을 획득하기 위해 20대 대학생 조직에서부터 70대 노정객(老政客)에 이르기까지 단일대오를 이루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라는 국민적 항쟁의 지도부 구심을 먼저 세우고 국민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구호와 행동지침을 개발한 것도 성공의 주요 원인이었다.
국민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청년들은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고, 차량들은 경적을 울렸으며, 교회는 종을 울리고, 거리의 여성들은 손수건을 흔들어 가장 친숙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군사정권이 임의로 체육관에 가두어 놓은 국민의 ‘정부 선택권’을 되돌려 받는 데 모두 찬동했다. 하물며 꽃다운 젊은이 ‘박종철’을 고문으로 숨지게 하고도 모자라 그 범인을 은폐·조작한 타락한 권력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일임에랴!
박종철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무수한 의문사가 있거니와, 오로지 폭력에 의존해 정권을 지탱할 수밖에 없는 군사정권이 스스로 불러들인 필연이다.
역사는 때로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을 통해 필연을 관철한다.
정통성과 효율성의 부재에 시달리던 군사정권이 퇴장하고 87년 이후 점차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 국민은 이제 군사쿠데타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우며,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거둔 성과이다.
복지국가 모든 국민의 소망
지금 우리 국민은 건국 이래로 가장 자유로운 국민으로 살고 있다.
집회, 결사, 출판 , 학문, 예술 등 모든 표현의 자유와 구의원에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뽑는 참정권을 향유하고 있다.
적어도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향유라는 점에서는 세계 그 어느 선진문명국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없다.
그러나 자유로워진 국민은 이제 보다 평등하게 차별받지 않고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다. ‘자유권’의 충족을 기초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사회권)’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요구라고 본다.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평등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수립이 자유권을 남김없이 성취한 우리 국민의 소망이 된 것이다. 현재 혼란스럽게 보이고 있는 여러 갈등과 마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비정규직, 양극화, 환경문제, 여성 아동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소수자의 권익향상 등의 문제는 국가의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자유권은 법률에 명기하는 순간 효력을 가지지만 사회권은 가용자원의 우선순위와 의회와 행정부의 정책집행에 의해 점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가운데서도 저임금 비정규직화는 빈곤의 세습, 구성원내부의 극렬한 갈등과 불신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정부의 최우선적 현안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수구언론 등 구시대의 여러 관행과 경향들이 온존하고 있어서 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는 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과거의 권위주의 군사문화와 결별하고 부단히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병행, 발전시키고 있는 중이다. 전후에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신생공화국을 출범시킨 국가 가운데 가장 앞서가고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상호배타적인 명제로 보고 그 택일을 강요하는 수구세력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참여정부를 두고 국정파탄 운운하는 일 역시 지나친 정파적 소아적(小兒的)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6월 항쟁은 평화적인 국민의 참여정신이야말로 공화국을 존재케 하는 가장 으뜸가는 가치이자 동력임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으며 이는 공화국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유시춘은…
1950년 경북 경주 출생
1973년 중편 <건조시대>로 세대 신인문학상 받으며 등단
소설집 <살아있는 바람> <우산 셋이 나란히> <안개 너머 청진항> 장편 <찬란한 이별>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총무로 창립 주도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집행위원
1994년 민족작가회의 상임이사
1999년 국민정치연구회 정책연구실장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2007년 3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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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