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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모험’이란 편견을 뛰어넘은 도전이자 우리나라 산업화의 시발점이 된 ‘한국경제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7월 7일로 개통 40주년을 맞았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는 정운찬 국무총리,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 1천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 기념 ‘도로의 날’ 행사가 열려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전장 4백28킬로미터에 이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1968년 2월부터 1970년 7월 7일까지 2년 5개월간 1백65만 대의 장비와 연인원 8백93만명이 동원된 유례없는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공사 현장은 열악했다. 공사 참여 16개 시공업체 중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는 곳은 현대건설뿐이었으며, 공사 장비들 대부분이 노후장비였다. 믿은 것은 오직 사람뿐, 20~30대의 젊은 노동 인력이 투입됐다.

반대 여론도 드셌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백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 국가 예산의 23.6퍼센트인 4백29억7천3백만원이 투입된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과 부산 간 지역에 대한 중복투자와 지역편중, 시기상조란 주장과 더불어 졸속공사, 환경파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 단축이란 의미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원활한 물류 수송에 힘입어 경공업 위주에서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으로의 산업구조 재편이 가속화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또 인근 도시까지 더불어 발전하며 국토 균형발전을 이끌었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가까워지며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던 날, 젊은 도로 기술자들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77인의 희생으로 이뤄낸 경부고속도로, 이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대역사(大役事)를 이뤄내면 국가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생활까지 바뀐다는 국책사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한 대혁신이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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