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글 |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2007 대선 정국에 온 나라가 몰입하고 있던 사이, 지구촌에선 의미 있는 이벤트 하나가 종결됐다. 지난 12월 15일 오후 190여 개국 정부 대표와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NGO) 대표 1만여 명이 인도네시아 발리섬 누사두아에서 열린 제1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막식에서 ‘발리 로드맵’을 채택한 것이다. 이른바 교토의정서 후속(POST 2012)이다.

발리 로드맵 채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선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서 37개 선진국에만 적용됐던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2012년 이후 개발도상국으로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교토의정서 상 개도국 지위를 누렸던 우리나라도 감축 대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바야흐로 지구촌 전역이 온실가스 저감에 함께 나서게 됐다.


난산 끝의 타결 
하지만 로드맵의 채택은 난산의 연속이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면서도 교토의정서에 끝내 서명을 거부했던 미국을 필두로, 선진그룹인 일본·러시아가 가세해 로드맵에 구체적인 감축목표를 넣지 말자고 고집한 반면, 유럽연합(EU)과 개도국들은 반대 입장을 나타내 총회 내내 반목과 충돌을 빚었다.

한편 개도국 그룹의 중국과 인도는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할 때 각국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넣자고 우겨 총회가 지연됐다. ‘로드맵 채택 무산설’이 나올 정도로 회의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11~12일 총회장을 지키다 동티모르에 갔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15일 오전 발리로 다시 돌아와 막판 조율을 시도했다. 결국 ‘의무감축국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5∼40% 감축한다’는 조항과 ‘향후 10∼15년간 배출량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2050년까지 2000년 대비 50% 이하로 줄이도록 한다’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으로 선진국을 달랬다.

개도국들에겐 ‘POST 2012’체제에서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모두 참여하되 자국 능력범위에 따라 측정·보고·검증 가능한(measurable, reportable, and verifiable) 감축 공약 또는 행동(정량적 감축목표 포함)으로 온실가스 감축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구체 방안 2009년 완성
로드맵에 따르면, 모든 선진국과 개도국 참여 하에 기후변화 대책을 논의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온실가스 감축·기후변화 적응 기술 이전을 협상하며, 이를 위한 재정지원 방법도 개발하기로 했다. 다만 협상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협약 트랙’과 기존 교토의정서 하의 의무를 지는 선진국이 참여하는 ‘의정서 트랙’으로 이원화해서 진행될 예정이다.

개도국이 자국의 산림 황폐화를 막는 조림사업 등을 이행하면 선진국이 인센티브를 주고, 기존의 산림을 잘 보전할 경우에 대한 보상 방안을 논의키로 합의한 것도 진일보한 성과라면 성과다. 또 기후변화 대응재원 마련을 위한 탄소세 부과 등을 논의하고, 탄소배출권 거래 시 2%씩을 떼어내 조성된 기금을 개도국 기후변화 적응사업에 쓰기로 하고 지구환경기금(GEF)을 관리주체로 결정했다.

향후 온실가스 감축 논의는 △교토의정서 상 의무감축국의 2012년 이후 추가감축 문제와 △발리 로드맵에 따른 선진국·개도국의 감축문제로 이원화되는데 일본·캐나다 등은 교토의정서보다 로드맵에 따른 감축방안이 유리할 경우 로드맵을 따를 전망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감축 목표와 방법은 올 3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2년간의 협상을 거쳐 2009년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발리 로드맵 채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은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자 9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며, 온실가스 배출증가율 1위국이다. 특히 2009년 마무리될 협상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발리 로드맵은 일단 족쇄다. 그만큼 에너지 사용에 있어 우리의 고통이 커진다는 뜻이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지녔으면서도 청정에너지나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실용화 노력이 미흡하기 짝이 없는 우리로선 분명 위기다. 특히 확실한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앞으로도 당분간 에너지 소비가 늘어날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노력은 그만큼 투입(input)에 비해 산출(output)이 적은 고통스런 작업이다.

그렇다고 목표치를 턱없이 낮춘 전시성 감축 계획을 내놓을 수도 없다. 선진국들은 중국·인도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개도국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한국을 압박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발리 로드맵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선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재편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저탄소 중심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제2의 경제혁명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탄소(低炭素) 체제 맷집 키워야
그러기 위해선 대전제가 필요하다. 저탄소 체제로 가기 위한 맷집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에서 에너지 절약기술과 청정·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물론 이 분야 투자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렇게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적극 진출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벌충할 수도 있다. 청정개발체제(CDM) 등을 통해 확보한 배출권을 쓰고 남겨서 필요한 나라(또는 기업)에 팔 수 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5년 우리 경제를 저탄소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정부 산하 기후변화대책위원회의 존재가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되어서도 안 되고, 부처 간 이기주의에 의해 온실가스 저감 대책이 표류해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