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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도 힘들었던 경우는 숱하죠. 그런데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기억에 별로 없어요.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잖아요. 어디로 숨겠습니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65) 이사장은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묻자 이렇게 받아 넘긴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최고라는 얘기다. 진실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도 이런 맥락과 맞닿았다. 함 이사장은 20년 전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스스로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젠 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는 일에 매달렸다.

온화하면서도 할 말은 한다는 소리를 듣는 그는 차분하게 얘기를 풀어 나갔다. 특히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많은 순국선열이 계십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나라를 위해 먼저 가신 넋을 받들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지요. 민주화운동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되새겨서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시대라고 하지만 완결된 가치는 이 세상에 없으며, 민주화도 끊임없이 이뤄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설명한다.

이야기는 20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일을 하던 무렵이란다.
주보(週報)를 제작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8시쯤 명동성당에 학생·시민들이 몰려들었다. 1만  명은 족히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뜻밖의 일에 당황한 한편 막연한 희망도 뒤섞인 묘한 기분이었다. 경찰, 심지어 군대가 진입한다는 소문이 나돌던 긴장의 밤 12시 안기부 차장이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로 진압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날렸다. 김수환 추기경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어조로 맞섰다. “나라를 위해서나, 여기 모인 시민들을 위해서나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당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여론을 의식하던 정권은 눈치를 봤고, 그렇게 5박6일이  흘렀다. 마침내 15일 낮 해결의 실타래가 풀렸다. 그날 저녁 기도회라는 중요한 행사가 예정돼 있던 터였다. 함 이사장은 “여러분의 뜻이 전국에 알려졌으니 역할은 다한 셈”이라며 군사정권에게 폭압의 빌미를 주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 먹혀들었다.

그는 자신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을 섰다기보다 오히려 올바른 삶을 깨우치도록 이끌어준 사람들이 있다고 숙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60년대만 해도 폐쇄적인 분위기였던 가톨릭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세상 속으로 뿌리를 내려야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싹을 틔웠다. 이 무렵 현실의 세계로 불러낸 사람들이 바로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4·19혁명 대열을 꼽았다. “희생을 무릅쓴 학생들의 열정은 곧 신앙적 결단이었어요. ‘이런 게 하늘의 목소리구나’ 하고 마음 깊숙이 느끼게 됐습니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프다고 한다. 역사과정 전체로 따질 때 미완(未完)에 그쳤다며 고개를 젓는다. “어느 순간도 시원하게 펼쳐진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극적인 변화의 물결로 이어진 역사는 없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일제 치하의 찌꺼기나 군부 독재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한 점을 예로 들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으로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공동체 속에서는 헌신도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구석이 많다는 걱정이다.

4·19에 얽힌 70년대 말 얘기다.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혁명기념일 미사를 올리던 때였다. 성당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에게 ‘불사조’ 얘기를 건넸다.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날 신학대 시절 학장에게 들은 것을 기억해서다. 불사조는 중동국가에 신화로 전해지는데, 삶을 다할 때가 오면 자신이 태어난 나무둥지에 가서 몸을 비빈다고 한다. 그래서 열이 나면서 죽는다. 그러면 남은 잿더미 속에서 그 알이 부화된다는 줄거리다. 학장은 “혁명 때 스러져 자유와 민주라는 선물을 내린 청년들이 모두 우리 시대의 불사조”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운동가요로 널리 알려진 ‘흔들리지 않게’를 소리쳐 부르며 혜화동 로터리로 몰려 나갔다. 가슴을 뜨겁게 한 그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비화(秘話)도 들려줬다. 74~75년 중앙정보부에서 한창 조사를 받던 때다. 며칠째 붙잡혀 몰골이 말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었다. 동태를 감시하던 안기부 직원 2명 가운데 1명이 교대근무를 위해 나간 마당인데, 남은 사람이 다가와 “신부님 힘내세요. 신부님과 같은 분이 나라에 계셔야 합니다”라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
혹시 조사를 받는 과정에라도 부끄러운 점이 있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됐다.  
“어느 곳이든 의롭게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게 마련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도 빛을 밝히리라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지요.”           

송한수 기자














‘87년 6월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몸은 어디에, 마음은 어디에….
아마 뽀얀 최루탄 연기 속을 질주하거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던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을 함께 싣진 않았는지…

20년 전,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구호 아래 하나 되었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렇다. 민주의 열망으로 나섰던 길이었다. 그저 민주와 자유와 더 나은 세상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 후 20년 동안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친 기억이 얼마나 있는가? 지난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룰 때 신명나 달리던 그 때였던가? 정치적으로도 분열을 거듭하고, 사회적으로도 양극화에 짓눌려가고, 경제적으로도 각종 이슈 아래 분화를 거듭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지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으리라. ‘이유가 있으면’ 하나 되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나 되는 기회가 왔다. 6월 민주항쟁 20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6월민주항쟁20년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YMCA전국연맹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범국민 대행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전국을 이어 6월의 광장으로’란 슬로건 아래 다양한 세대의 자발적인 참여와 각 세대별 관심사 표출을 통한 세대간 공감을 확산하는 기획으로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를 펼친다고 한다. 중앙과 지역의 공동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하나 됨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참여와 공감의 민주주의 실천운동으로 기획했단다.

6월 9일(토) 전라, 경상, 강원, 충북, 제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23개 노선의 약1500km에 달하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이어달려 민주주의 시민축제 광장으로 결합하는 프로젝트다. 일반 시민과 각종 동호회, 시민사회단체, 청소년·학생, 민주화 인사 등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에서부터 오늘과 내일의 대한민국 비전을 창출해나갈 주인공까지 대한민국을 순수하게 하나로 만드는 범국민 대행진으로 계획하고 있단다.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범국민대행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종선‘추진위’ 기획팀장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기획이다. 출발지에서의 축제와 각 통과 지역별 환영 행사, 6월의 함성이 가득한 시민축제 현장에서의 장엄한 환영 행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면(외국인도 좋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함께 뛰고, 걷고, 어울리면서 하나 되는 민주주의 시민축제로 결합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6월의 대한민국을 민주의 가치로, 이어 화합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여는 에너지로 분출시키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6월 민주항쟁이 온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듯이 그 숭고한 6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자발적인 시민 참여로 완성하겠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종철 홍보팀장





5월 11일 오후 6시. 길어진 낮 시간 만큼 아직 사위가 밝은데 아이들 손을 잡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공원으로 모여든다. 10개월 동안 준비했던 창작 가족마당극 ‘6월의 꽃이 피었습니다’ 공연이 충북 청주를 시작으로 전국 10개 도시 순회공연의 막을 올리기 위해 첫선을 보이는 자리인 것이다.

연출을 맡은 큰들문화예술센터 송병갑 창작단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3차례의 내부 시연을 거쳐 수정 보완했다.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과 예술감독을 모시고 진주에서의 공개 시연을 통해 현장 반응을 파악하여 수정, 보완작업을 거쳤다. 아이들의 집중과 어른들의 호응을 살핀 후 토론에서 극의 완성도를 확신할 수 있었다”라고 순회공연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실제 공개 시연에서는 15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약 1시간 공연 동안 아이들은 자리 한 번 떠나지 않는 즐거움과 관심으로, 어른들은 20년 전의 이한열 열사 피격과 국민의 저항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그 때를 패러디한 결말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겸연쩍게 눈가를 훔칠 정도의 감동으로 호응했다고 한다.





예술감독 겸 제작담당 PD인 윤민석씨는 “군부 독재정권 시절을 문어장군 독재로 희화화하였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희망을 여는 사람들을 꽃마을로 상징하여 아름다운 노래로 민주의 꽃을 피우고 그 희망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세와 단결로 독재를 물리치는 6월의 정신을 담은 작품”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했다.

막이 오르자 인형으로 제작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평화로운 노래 소리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아악~’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외계(?)에서 등장한 ‘문어대가리’ 군단의 침입이었다. ‘문어대가리’와 그 하수인들은 꽃을 망가뜨리고 노래를 금지하며 꽃마을을 공포와 비극으로 몰아가는 독재를 행사했다. 독재를 물리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저항하며 일어나 노래하며 꽃을 피우고 힘을 모아 ‘문어대가리’를 물리치는 구성이었다. 극 중간중간에 꽃씨를 감춘 ‘칼라똥(?)’을 관객과 함께 지킨다든지 ‘문어대가리’를 물리치기 위해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노래를 합창하는 호응 속에 이한열의 피격 모습을 패러디한 결말에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다. 6월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종철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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