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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明治) 43년(1910년) 3월 24일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지방법원 검찰관에 대하여 아래 자(者)에 대한 사형집행을 명함. 한국 평안도 진남포 무직 안응칠(安應七·아명·안중근·安重根), 33세. 죄명 살인범, 형명 사형, 판결 언도 명치 43년 2월 14일.”
중국 동북3성(省) 지역을 점령했던 일제 관동도독부의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제5권(1910년 1~3월)에 실린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 명령 기록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백 주년(3월 26일)을 즈음해 안 의사의 사형집행 명령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 의사가 갇혔던 뤼순 감옥 내 경계상황 등을 기록한 일본 문서가 발견됐다.
국가보훈처는 3월 22일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 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雜報)’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정황 및 잡보는 관동도독이 본국의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로, 그동안 일본 외교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돼오다 공개됐다.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 기록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료들은 국가보훈처가 일본 자료공개법 등을 활용해 전문가들과 함께 지난 2월 찾아내 복사한 다음 국내로 가져온 것으로, 1906년부터 1922년까지의 상황이 담겨 있다. 
이 기록들을 보면 안 의사에 대해 사형이 선고된 지 한 달 열흘 만인 3월 24일 일제의 사형집행 명령이 나왔고, 사형집행 명령 이틀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또한 사형집행 전 안 의사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 특별 경계를 했던 상황과 법정 출두에 대비해 압송마차를 준비한 일도 기록돼 있다.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제4권(1909년 10~12월)은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으므로 모두 독거 구금했다”며 “한국인 구금에 대해서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감옥 안에 임시법정을 설치했다”고 적었다.
아울러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자료에는 안 의사를 포함해 2백28인의 독립운동가가 적시돼 있는데, 이 중 89인은 최초로 확인된 독립운동가들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번에 발굴된 새 자료를 독립유공자 포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가보훈처는 안 의사 순국 1백 주년을 맞아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안 의사의 유해 관련 자료가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관련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자료 수집 노력을 기울여왔다.
안 의사의 딸인 안현생 여사에 대해 처음 발굴된 자료도 공개됐다. 국립대구박물관 이내옥 관장과 가톨릭대 소병욱 총장은 대구가톨릭대 사령원부에서 안 여사가 1953년 4월 1일~1956년 3월 31일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문학과 교수(전공 불문학)로 재직했던 기록을 발견했다고 3월 24일 밝혔다.
안 의사의 1녀2남 중 장녀인 안 여사는 1902년 출생, 8세 때 아버지를 잃은 뒤 프랑스인 신부의 보호를 받았으며 불문학과 미술을 공부했다. 해방 이후 서울로 이주한 안 여사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대구로 피난해 효성여대에서 불어를 가르쳤으며, 1960년 서울에서 58세에 운명했다. 안 의사의 다른 자녀들도 중국을 떠돌며 비운의 삶을 살았다. 장남 분도는 요절했고(7세 혹은 12세), 차남 준생은 1952년 부산에서 45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2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가운데 “안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본과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 사형집행 명령 기록 발굴에서도 불 수 있듯 일본 정부는 안 의사에 대한 각종 기록을 갖고 있으며, 안 의사가 죽음을 맞은 뤼순 감옥이 소재한 곳이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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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보훈처,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와 역사학자, 독립기념관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유해발굴단을 구성해 일본과 중국 정부에 3국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협조를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안 의사 순국 1백 주년이 되는 3월 26일을 맞아 다시 한 번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확대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안 의사께서 국권이 회복되거든 자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달라고 유언하셨는데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뜻을 이뤄드리지 못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3월 26일 오전 서울광장에서는 안 의사 순국 1백 주년 추념식이 열려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많은 추모객들이 참석해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정 총리는 이날 추념식에서 평화의 횃불을 점화했으며, 추념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광화문까지 기념행진을 벌였다. 이 밖에도 안 의사의 가묘가 모셔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을 비롯해 국립 대전현충원 등 전국 각지에서 안 의사의 높은 뜻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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