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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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7일은 우리나라 항만 인력공급의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 북항 중앙부두를 비롯해 3부두, 4부두, 7부두에는 부산항운노조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술렁거렸다. 부산항운노조, 부산항만물류협회, 그리고 정부가 체결한 ‘부산항 항만 인력공급 체제 개편을 위한 노·사·정 세부협약서’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됐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결정에 따라 1897년 청진항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이후 110여 년 만에 인력공급 체제의 틀이 바뀌는 상황이어서 조합원들뿐 아니라 노·사·정 관계자들도 투표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과는 찬성이었다. 찬성률이 77.1%로 나와 반대 22.6%를 크게 앞질렀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박상섭 사무관은 “투표하기 이전부터 협약안이 통과될 것이란 견해가 많았지만 예상보다 찬성률이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기존의 인력공급 체계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결국 부산항운노조 조합원들은 노조의 인력공급 독점권보다는 부두운영회사가 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상시고용 체제를 반겼다.
잇단 채용비리… 고용체제 개편 급물살
근래 들어 항운노조는 인력채용과 관련된 비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3월말.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여론의 집중포화, 노조원들의 반발로 사면초가에 빠진 부산항운노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노조혁신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어 노조의 분위기를 추스른 것은 물론, 정부가 항만 인력공급과 관련된 상용화 방안을 제시할 경우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진화에 나섰다. 노조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용비리에 대한 비난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결국 항만 인력공급권을 포기한 채 백기를 들고 말았다. 고립무원에 빠진 부산항운노조의 예상된 자구책이었다.
인력공급과 관련한 해묵은 문제점도 또 다시 불거졌다. 항운노조가 인력운용을 독점함에 따라 부두운영회사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 데다 항만의 현대화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형태 연구위원은 “노조의 채용비리, 기계화 저해 등 불합리한 요인들이 악순환되면서 항만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면서 “항만 인력의 상용화는 2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우리나라에서도 항만 인력을 상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지난 1999년 4월 규제개혁위원회 권유가 나오면서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규개위는 2004년까지 항운노동자를 단계별로 상용화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항운노조 가입 개방, 복수노조 허용, 근로자파견제도 도입 등을 통해 항운노조의 인력공급 독점권을 없애 항운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규개위가 주장한 핵심내용이었다. 이후 노사정협의회는 3년에 걸쳐 전국 항만의 상용화 추진 협상에 나섰지만 노·사·정 간의 견해차이로 제자리에서만 맴돌았다.
항만 경쟁력 강화 기대감 높아
한동안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항만 인력 상용화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항운노조원들을 부두운영회사가 상시고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항만 인력공급 체제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에 이어 올해 6월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를 근거로 부산항인력공급체제개편위원회가 구성됐고, 무려 15차례나 머리를 맞댄 끝에 지난 11월 9일 합의안을 도출한 것.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마침내 110년 동안 유지돼온 부산항운노조의 인력 독점시대가 막을 내렸다.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클로즈드숍제의 인력 공급형태가 사라지고 내년 1월부터는 부두운영회사가 노동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부두운영회사가 인력을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진 것. 노·사·정 3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은 “항운노조 110여년 역사에서 이번 협약 타결은 항만 인력공급 체제의 큰 틀을 바꾸는 일대혁신”이라며 “안정적인 고용 보장과 부두운영회사의 자율성 확보로 우리 항만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타결된 노·사·정 협약안의 주요사안을 살펴보자. 핵심내용은 완전고용과 정년보장, 그리고 상용화 인력에 대한 월급 형태의 임금 지급 등이다. 계속 취업을 원하는 노동자에겐 취업 보장과 함께 6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들 취업자의 임금수준은 지난 4~6월 3개월간 월평균 임금으로 지급한다는 것. 희망퇴직자의 경우 생계안정지원금을 통해 최대 45개월치를 지급키로 하는 등 노조 측에 유리한 내용들을 많이 포함시켰고, 부두 임대기간 연장과 부두임대료 감면 등 부두운영회사 지원안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우선 북항 중앙 등 부산항 5개 부두의 노조원 3000명 가운데 1200여 명은 일감이 있을 때만 일을 하는 임시직에서 벗어나 부두운영회사에 정규직원으로 취업하게 됐다.
“이번 협약안 타결의 효과로 근로자의 신분안정과 항만생산성 증가를 꼽을 수 있다”고 밝힌 김 연구위원은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경우 생계안정에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다 나아진 근무환경은 생산성의 대폭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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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비 350억 절감… 생산성 향상 기대
해양수산부 우수한 사무관은 “항만 하역의 현대화 지연과 효율적인 작업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항만생산성이 떨어져 왔다”며 “인력 상용화 체제가 부산·인천항에 자리를 잡게 되면 30~40%의 인력절감과 함께 연간 351억 원의 물류비를 줄일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력 공급의 상용화 실시로 우리나라 항만들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영국·프랑스·뉴질랜드 등 주요 국가들은 1980년대 말부터 항만 인력 공급체제를 개편해 좋은 결과를 낳고 있다. 대만 역시 1997년에 상용화를 실시, 우리보다 훨씬 앞서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도 좋은 본보기다.
상용화 이후 이들 국가에선 항만하역 인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항만물류비 절감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1989년 항만노무법 시행으로 상용화를 실시한 영국과 1996년 노동시장개혁수정법을 통해 노무공급독점권을 폐지한 호주는 50% 이상의 인력이 줄어들었고, 뉴질랜드도 33%의 인력을 줄여 물류비용을 크게 낮췄다.
부두운영회사의 부두운영과 자율성이 확보됨에 따라 항만시설 확충과 장비현대화 추진으로 생산성 향상이 기대된다. 대만과 호주의 경우 기계화로 선박 체류시간이 각각 14%, 100% 단축됐다.
노·사·정 3자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
신설 부두 개장 때마다 작업권·손실보상금 등의 마찰로 항운노조와 협상지연으로 빚어지던 사회적 부담을 해소한 것도 상용화 실시의 이점이다.
가장 큰 효과는 우리 항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것. 해양수산부 신평식 해운물류국장은 “항만 인력공급 체제의 자율화로 대외신인도가 높아져 외국선사의 신규유치뿐 아니라 다국적 물류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냄으로써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두운영회사와 노조지부 사이의 개별협상에선 임금수준과 근로조건 등을 놓고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 ‘도급제’를 ‘월급제’로 바꾸기로 한 데 대한 혼선이다. 즉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물량이 있을 때 작업하는 형태를 근로시간으로 보수를 산정하는 월급제에 적용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
희망퇴직자 규모도 걸림돌이다. 희망퇴직자가 15%를 넘으면 하역작업에 차질이 생겨 노동강도가 높아지게 되므로 임금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노조 측의 주장에 부두운영회사가 난색을 표명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사·정 삼자가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개별협상도 낙관하는 분위기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조승환 항만물류과장은 “항운노조원들이 높은 찬성률로 협약안을 가결시킨 것은 항만환경 변화를 받아들인 현명한 결정”이라며 “연말까지 개편대상 조합원의 퇴직금 지급, 부두운영회사와 조합원의 고용계약 체결 등 행정절차를 모두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탁 부산항운노조위원장은 “노조원들이 노·사·정 대표에게 보내준 신뢰에 보답키 위해 근로조건과 임금수준이 낮아지지 않도록 힘을 쏟겠다”고 했고, 김수용 부산항만물류협회장도 “부두운영회사들도 부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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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하역제도 변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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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공급, 왕실→노동조합→부두운항회사 근대적 항만사업이 본격화한 것은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부터. 항운노동조합은 1897년 청진항에서 가장 먼저 결성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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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