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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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최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해 한국인들의 분노 섞인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동북공정이란 2002년부터 올해까지 5년에 걸쳐 시행되는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대형 학술 과제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단순히 ‘학술프로젝트’라고 주장하지만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고구려를 비롯해 발해와 고조선의 역사가 한국과 관련 없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고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침탈 전례 많아
이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즉 변강 역사 지리 연구센터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일부 우익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학설이 아니라 국가정책을
실천하는 기관에서 주장한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이 동북공정은 한국사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한반도의 정치변화와 동아시아 질서에 깊이 간여하려는 의도가 담긴 프로젝트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이미 1986년대부터 티베트와 신장지역에 대한 서남공정(西南工程)과 서북공정(西北工程)을
실시해 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아직도 티베트 독립운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결과는 그들의 모국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족은 중국보다 문명과 생활수준이 나은 한국을 모국으로 삼고 있어 그들의
동북공정이 심한 저항을 받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소수민족의 중국화를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해 끝마쳤다.
이 동북공정에 따르면 한국의 고조선은 없어지고, 한국사는 은상(殷商)의 고대 식민국가로부터
출발해 기자조선이 됐다는 것이다. 또 모든 문명의 기원이 중국에 있다는 선전은
지금도 랴오닝성(遼寧省) 박물관에서 행해지는 요하문명전이 잘 대변해주고 있다.
중국은 이밖에도 몽골지역에 대한 북방공정과 윈난(雲南)을 비롯한 미얀마·태국·베트남 접경지역에 대한 남방공정, 그리고 대만·하이난섬(海南島)과 오키나와·필리핀 등이 연관된 해양변강공정도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이 동북공정을 실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일적다민족국가’ 정책의 일환에서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사의 중국사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동북공정은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중국역사라고 억지
중국학자들의
고구려(BC 37~AD 668)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조선사(한국사)다.
이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국인과 조선족들 사이에 있는 의견이었다. 둘째는 고구려의
수도가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 있던 시기는 중국사에 해당하고, 평양천도 이후의
고구려는 한국사에 해당된다고 하는 이른바 일사양용(一史兩用)이었다. 셋째는 동북공정과
함께 공식화하기 시작한 평양 천도 이후도 중국사라는 시각이다. 둘째 견해도 역사를
계기적이거나 학문적으로 보지 않고, 단지 현대의 영토 환경을 과거 역사에 소급해
보려는 시각이 문제가 된다. 셋째는 북한 지역에 대한 역사주권을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그러나 ‘삼국사기’와 ‘고구려본기’에는
고구려가 독립국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본기(本紀)란 중국의 ‘사기(史記)’를
본보기로 해 황제나 정통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 서술방식이다. 그런데 김부식
등 ‘삼국사기’ 찬자들은 일정하게 송나라 중심의 생각을 갖고 있었음에도, 고구려와
함께 백제, 신라를 우리(我, 該)라고 표현해 삼국을 동일 역사권으로 인식했다.
또한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는 모두 고구려를 당나라 왕들의 ‘본기’와
다른 곳인 동쪽 오랑캐의 ‘동이열전’에 백제·신라·왜와 함께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구려를 포함해서 백제와 신라는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 고해 ‘삼국사기’의
‘삼국’과 같은 역사권으로 인식했던 것도 오늘날 한국인들이 고구려를 한국사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중국은 한사코 고구려가 중국역사였음을 강변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에
대한 국가적 견해는 이미 2001년과 2003년의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총론’(흑룡강교육출판사)과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집약됐다.
집필은 모두가
동북공정의 핵심 위치에 있는 마다정(馬大正)이 주편을 맡았는데, 2002년 동북공정이
실시되기 전부터 이미 이에 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두 책은 그 이후 고구려사 연구의 기준이 됐으며 이에 대한 비판도 전무한 상태다.
동북공정 3대 근거의 허점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하는 근거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둘째, 고구려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 셋째,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구려 부여 땅에서 건국=고구려가 중국
땅에 세워졌다는 근거는 고구려가 상나라(商人)의 후예라는 논리로 시작한다. 한·중의
여러 학자들이 광개토대왕비를 인용해 고구려족이 부여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주몽(추모)을 비롯한 왕족들만 부여에서 왔지 고구려족은
중국의 상나라 때부터 현지에 살고 있었다고 중국 측은 주장한다.
또한 고구려는
한사군의 하나였던 현토군에 세워졌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며, 이것은 고구려의 중국사설을
이끌고 있는 핵심이론이다.
고구려의 예맥계 및 부여계설은 광개토왕비와
중국 기록 등에 입각해 많은 중국학자들도 인정해 왔던 바다. 그러나 하상주단대공정에
입각한 고구려의 염황 씨족설이 등장하자 중국 측은 고구려가 중국 땅에 세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고구려의 현토군 건국설은 중국학자들도 인정하다시피
현토의 고구려현과 주몽이 세운 고구려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했어야 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서기전 37년 홀본(졸본) 땅은 한나라 현토가 아니라 이미 부여의 땅이
돼 있었다. 주몽은 부여 땅에 고구려를 세웠다는 것이다.
◈책봉 조공은 외교행위일뿐=고구려가 당나라의
지방정권, 즉 중국사였다는 주장은 동북공정 이전부터도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그
근거는 일반적인 설에 의해 고구려는 당으로부터 책봉을 받았고, 조공을 바쳐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당나라 중심의 국제질서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책봉은 당 왕실이 주변 왕조를 인정하는 하나의 외교적 승인행위였고, 조공이란 대체로
관영무역이었다는 사실은 세계 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바다.
이를 근거로 말하자면
백제나 신라, 왜까지도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고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고구려 왕조는 28대 705년을 유지했던 왕조인 반면에 같은 시기,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왕조들은 무려 35개나 존망을 거듭했다. 도대체 705년 동안 변하지 않는
정권 위에 35차례나 바뀌는 중앙왕조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광개토왕비
등으로 볼 때, 고구려는 분명 황제를 자처하는 천하관을 갖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던 독립국이었다.
◈고구려 멸망 후 유민 대부분 발해로=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인은 대부분 중국에 속하게 되었기에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신당서와 구당서는 고구려가 69만 가구에 대략 35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가장 적은 15만 호를 억지로 도출해 70만~8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하면서, 이들 중에서도 고구려가 멸망한 뒤 6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중국 한족에 융합됐으며 10여만 명의 사람만이 반도의 민족에 융합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구려 인구는 350만 명 정도로 보아야 하고, 이 중에서 많아야 50만 명 정도의
사람만이 당나라 내지 등으로 이주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고구려에 남았고
이들이 곧 발해인이 됐다고 봐야 한다.
[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한국의 영문명
KOREA, 고구려에서 비롯
중국이 지금과 같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게
된 배경에는 발해사를 한국인들이 소홀히 여긴 원인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한국학계에서
발해국이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고, 고구려인들이 세운 왕조가 아니고 마치 그와
다른 말갈이 세운 국가로 간주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현대사적 의미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영문명인 ‘코리아(Korea)’도 고구려에서 비롯됐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렇지만 중국도 고구려나 발해를 연구하고 말할 권리는 있다. 그 지역에서
현대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나라 지방정권도 아니고,
한국사와 관련 없는 것도 아닌, 현대 중국 동북지역의 고대 역사라는 입장에서 일
것이다.
세계에서 고구려와 발해 후손을 자처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고, 고구려·발해인들이
사용하던 온돌이 지금도 모든 가정의 난방시설인 곳은 한국밖에 없다는 점도 한국인들의
고대사가 고구려·발해사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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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 발해가 당나라 지방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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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은 고구려인… 독자적 연호 사용
중국은 책봉과 조공을 근거로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은 발해는 예맥의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가 아니라 그와 구별되는 말갈족이 세운 왕조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1980년대부터 체계화돼 이미 교과서 등에 반영돼 있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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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