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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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당시 대일 관계는 중대한 위기 국면이었다. 1월 말,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이 군대위안부를 기술한 역사교과서를 “자학적 교과서”라고 비난한 데 이어, 2월22일에는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독도의 날’ 제정안을 제출했다. 또 주한 일본대사가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3·1절은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생각을 내비치는 것으로 분명히 전달되었다. 그 5일 뒤인 3월6일, 대통령은 북악산에 올랐다. 이날 대통령의 상념은 ‘대원군의 선택’이었다.
“과연 당시 대원군이 쇄국이 아닌 개방을 선택했다 해도 그것이 오늘 우리의 운명을 얼마나 바꾸었겠는가? 이미 당시 주변 정세는 우리가 개방하든 쇄국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 아닌가?”
말하자면 우리의 선택이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이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러한 역사인식 위에서 탄생했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탈냉전 이후 지난 10여 년 간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잘라 말하면 이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를 안정과 평화의 질서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모색해 왔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살아왔는데,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오늘날 기회가 되고 있다”며 “21세기는 동북아 시대가 될 것”이라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B]“한국을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허브로 만들겠다” [/B]
노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구상의 일단을 내비친 것은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9일 일본을 국빈방문했을 때 의회연설에서 “한국을 동북아 평화와 협력의 허브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2003년 7월9일 중국 방문 때는 칭화대(淸華大) 초청연설에서 “동북아는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질서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2004년 12월6일 유럽 순방 중 프랑스를 방문해 파리4대학(구 소르본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동북아에 유럽연합(EU)과 같은 개방적 지역 통합체’를 만들고자 하는 기대를 나타냈다.
이처럼 참여정부는 평화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와 한국이 그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것임을 끊임없이 밝혀왔다. 이런 문제의식이 2005년 들어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제시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동북아 균형자론은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의 역할을 냉철하게 규명하고 미래의 평화 번영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동북아에서 일어났던 패권경쟁의 무대였다. 주변 국가들의 힘이 강성해지면 그 힘은 한반도로 뻗쳤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우리 국가를 보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각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핵심이었다.
이처럼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반도와 중·일이 동북아 지역에서 지정학적으로 숙명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나라는 항상 잠재적 갈등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균형자라는 개념이 모호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또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전통적 세력균형 이론을 연상하고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랬듯 필요에 따라 상대를 바꿔가며 이 나라, 저 나라와 연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마치 중국을 가까이하고 한·미동맹을 소홀히 하겠다는 것으로 곡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오해를 윤태영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지난 5월31일자 청와대 브리핑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관련 연설 어디에도 한·미동맹을 불안하게 하는 언급은 없으며 오히려 철저하게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의 균형자론은 동북아의 미래 정세에서 주요한 변수를 중국이나 일본으로 보고 있었다.”
윤 실장의 언급처럼 노 대통령이 말하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미 간에 공유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기초로 추진되는 것이다. 동맹은 공동의 가치를 목표로 쌍방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전제로 성립한다. 한·미 양국 사이에 견해차가 있다면 그것을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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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동북아 균형자론 ‘한·미동맹’ 기초로 추진[/B]
균형자론은 무력이나 힘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동북아 역내에서 중견국가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익과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협력국가가 되기 위해 과거 우리가 종속적 변수였던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역할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문화와 해양문화, 동양과 서양이 두루 통하는 소통 공간이다. 실제로 한·일 간의 상호 방문자는 2004년 400만 명에 이른다. 한·중 간의 상호 방문자도 2004년 348만 명에 이르렀다. 이 같은 동북아 각국의 인적교류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가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동북아 역내에 퍼지고 있다.
힘이 있다고 균형자를 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없다고 균형자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한국은 현재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초강대국들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여러 나라와 협력하고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참여정부가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한국의 종합적 국가 역량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 권의 중견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자위적 국방 역량과 안보 협력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중심세력으로서도 계속 역할하고 있다. 역내 국가들과의 호혜협력관계도 균형자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외교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RIGHT]최영재 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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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3년차를 맞은 참여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는 평화번영정책으로 표현돼 왔다. 대북관계에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남북한 신뢰 구축과 군비 통제를 실현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 목표다.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대해서도 같은 목표를 가진다.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해 한국이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집권 초기 ‘동북아 중심국가론’으로 나타난 후 최근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제시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 초 여러 차례의 연설을 통해 동북아 국가들 간 상생과 공생의 협력질서 창출에 한국이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국내외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B]영토 문제와 과거사 문제가 현실적 배경 [/B]
참여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선언한 것은 동북아 지역의 영토 문제 및 과거사 문제가 향후 동북아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하리라는 우려가 현실적 배경이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라이벌 관계가 부활하면서 동북아 지역 질서가 자칫 갈등과 대립적 질서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의 외교정책 기조는 동북아 지역 질서를 냉전형으로 회귀시킬 가능성이 큰 요인이다.
동북아 지역에서 대립질서가 강화되면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현저히 높아진다. 한국으로서는 동북아 질서가 급속하게 대립질서로 전환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 과정을 한국이 스스로 가속화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동북아 대립질서 형성을 제어하면서 협력질서 창출을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균형자론이 등장했다.
오늘날 동북아 지역 질서는 불안전의 지속(sustained insecurity), 대립과 불신의 역사적 기억(historical memory of distrust and confrontation), 그리고 제도적 장치의 결여(lack of institutional settings)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동북아의 근대사는 협력과 조화의 역사였다기보다 분열과 갈등의 역사였다. 이제 근대를 넘어 탈근대의 담론이 제기되는 시대에 동북아 질서에도 과거의 유산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 질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과정에 한국이 뭔가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이 균형자론으로 표현됐다.
균형자론을 지역 수준에서 기존 세력균형 상태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권력구조를 창출하기 위한 ‘무게추(balancer)’의 역할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균형자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의미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의돼 왔다.
한국은 이미 한·미동맹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기존 한·미동맹의 골격을 해체하고 새로운 동맹 관계를 모색하게 되면 엄청난 부담이 된다. 더욱이 한국의 세력변경 지향의 행위 때문에 동북아 대립질서가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 또한 커진다. 그러한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현존 한국외교에서 결코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따라서 균형자론은 동북아 권력구조의 재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한·미동맹 관계를 안전판으로 유지하면서 동북아의 협력질서, 공생질서 창출을 위한 균형외교(balancing diplomacy)라는 의미가 주어져 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균형외교는 세 가지 기능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는 동북아 지역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는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이다. 대립보다 협력의 국제관계를 촉진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한국 균형외교의 목표여야 한다. 둘째, 국가 간 갈등 관계를 사전에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주선자(broker) 혹은 조정자(mediator) 역할이 필요하다. 조정이라는 외교적 과정에는 국가 간 대화 통로의 네트워크를 향상시킴으로써 갈등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예방외교적 성격도 포함된다. 셋째, 협력의 지역질서 속에서 공생의 질서, 공동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국제적 아젠다를 제시하는 창안자(initiator) 역할도 고려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외교가 평화와 협력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동북아 국제 협력의 원칙을 선창하고 공생 관계 확대를 위한 현안들을 제안하는 것이 균형외교의 기능일 것이다.
[B]동북아 협력질서에 능동적 역할 모색 의지 [/B]
한국이 지향하는 균형은 어떤 균형인가? 균형자 역할, 구체적으로는 균형외교를 통해 한국은 지역 수준의 안정적 평형상태(equilibrium)를 유지하는 과정에 일조해야 한다. 평형상태가 위협받게 되면 상대적 약소국에 돌아갈 위험부담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내 국가 간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는 과정에 힘써야 한다. 국가 간 이익의 심각한 불균형 상태가 협상의 기회를 축소하기 때문이다. 당사국들이 확인해야 하는 이익 이외의 요인들, 예컨대 인식적 불신 구조에 의해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 제3국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주선 및 조정과 중재의 외교를 통해 이익의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하는 것도 지역 수준에서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균형의 하나다.
마지막으로 지역 내 국가 간 인식과 가치의 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균형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국제관계의 행위 원칙과 규칙에 대해 국가 간 인식적 괴리가 존재하면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질서가 창출되기 어렵다. 동북아 질서에서 관련 국가 간 대화를 유도하고 관념의 공감대를 확대할 수 있는 외교 행위가 한국의 역할을 통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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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 한국의 외교적 좌표 속에서 제시된 동북아 균형자론은 두 가지 관점에서 외교사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다. 19세기 한국은 ‘자강론’과 ‘균세론’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식민지화의 길을 강요당했다. 특히 균세론은 동양 전래의 이이제이(以夷制夷)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데 한반도 위에 설정되었던 식민주의(colonialism)의 대립구도 속에서 한국에 허용된 자율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했고, 그 이유로 균세론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균형자론은 그러한 역사적 교훈에 대한 21세기형 돌파구라는 의미를 가진다.
둘째, 그간 한국인의 국제정치적 인식을 장악해 왔던 수세적 대응 태도의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냉전 이후 한반도 정치 기상도는 주로 국제정치 축에 의해 설정되고 결정됐다. 이에 따라 분단 구조가 형성되고 남북한 대립구도 속에서 미국과의 편승 동맹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신념이 한국의 주류적 인식구조였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의 협력질서 구축을 위해 한국이 일정 정도 능동적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적대적 세력균형이라는 이름의 대립질서보다 평화와 협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의사를 능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한국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통해 평화와 협력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지역 질서의 아젠다를 선도해 나감으로써 배타적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한 역내 질서를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의체로 전환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해 연성권력(soft power)을 증대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문화외교가 그것이다. 동북아 국가 간 국경을 뛰어넘는 인식적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이 협력질서의 무형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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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