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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기자 3총사의 3박 4일 ‘독도 체류기’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8월 26일 새벽 4시30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8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울릉도를 거쳐 독도에 가려는 사람들이다. 커다란 짐보따리를 든 우리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에서 동해시 묵호항,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가는 버스에서 배에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 독도 수호를 외치기 위해 가는 사람, 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독도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창가 쪽으로 몰려간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독도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라는 상념도 잠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배는 독도의 오른편 동도 선착장에 접안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기저기서 구호가 들려온다. ‘독도 수호’를 외친다. 이 사람들은 20~30분 후 다시 울릉도로 가는 배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몇 차례의 구호와 기념사진 찍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승선시간에 맞춰 서두르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는 며칠을 이곳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이제 우리가 계획했던 일정을 진행할 차례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하고 상상했던 시나리오는 미묘하게 어긋났다. 우리의 계획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분은 바로 김성도 씨다. 그는 독도리 이장님이자 ‘대장님’으로 통했다. 힘들게 찾아온 우리를 보고 대뜸 “여기 모하러 왔어? 하루 왔다 가믄 모하노? 니들도 다 똑같은 기라.” 호통부터 쳤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호통과는 달리, 서도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 줬을 뿐 아니라,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알려주기까지 했다.





또 저녁 시간에는 이장님 집 안방에 둘러앉아 다 함께 얘기도 나누었다.
“ 독도 문제만 났다 하믄 사람들이 왔다 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 독도에 다시 찾아오거나, 계속 연락 주고받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사람들은 여기서 생활할 때, 나가믄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여기는 섬이라 기상이 좋지 않으면 꼼짝없이 여기서 갇히게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육지 사람들은 자기네가 계획했던 날짜만큼만 식량을 가져오니 당연히 부족하지요. 여기 사는 우리한테 이것저것 빼 묵고는 독도에서 나갈 때는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우리라고 바본가? 근데, 어쩌누? 굶게 할 순 없지요….”

비워진 술잔 앞에 앉은 이장님과 그 옆에서 사과를 깎고 계시는 사모님의 모습이 호통치던 때와는 달리 쓸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야.” 이장님의 한 말씀이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독도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둘째 날, 우리는 십수 명의 훈남들에게 둘러싸여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웬 비명? 동도 꼭대기에 위치한 독도 경비대를 찾아간 것이다. 독도에 오기 전인 8월 9일, 우리는 인사동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독도에 가면 꼭 하고 싶은 일’을 신청받았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독도 경비대와 키스하고 싶어요” “독도 수비대 오빠들과 데이트하기” 등을 꼽았다. 그래서 우리 울림 기자단 3명은 독도 경비대 ‘오빠’들을 찾아간 것. 사실 우리들의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

경비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무척이나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니 끝엔 숨이 턱턱 막혔다. 가는 길에 여러 명의 경비대원들과 마주쳤지만 웬지 어색한 분위기에 쭈뼛쭈뼛 바라만 봤다. 그렇게 마주친 경비대원 10여명을 다 보내버리고 경비대 건물에 도착! 경비대 대장님을 만나고,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다. “저어, 저희와 데이트하실래요?” 10여명의 대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일단 위문품으로 준비한 참치 통조림, 울릉도 호박엿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다시 말을 걸었다. “시민들이 경비대분들과 데이트하고 싶데요. 대신 저희랑 데이트해요.” 이렇게 졸라대자 뿔테 안경을 낀 한 대원이 “저 할래요!”라며 가장 먼저 자원했다. 그리고 쑥스러운지 눈빛으로 의사표시를 한 대원 2명을 더해 즉석으로 ‘3:3 미팅’이 주선됐다.

데이트 약속을 하고 5분 있다가 다시 만났는데 어디선가 불가리 향수 냄새가 풍겨나오는 것이 아닌가. 최연수 대원이 깜찍하게 향수를 뿌리고 온 것이다. 울림 기자단 모두 감동했다. 그렇게 청춘남녀 6명은 동도 곳곳을 함께 구경했다. 경비대 건물 초입에는 한국령(韓國領)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또, 꼭대기의 헬기장·조수기·발전기 등 여러 가지 시설들을 함께 살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 명의 대원은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는 동안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켜주었다. 독도를 지키는 늠름한 모습 때문인지 몰라도 세 명 모두 ‘훈남’임이 확실하다. “대한민국 20대 여성분들! 마음까지 훈훈한 경비대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많이 전해주세요.”




3일째 되는 아침, 이장님은 우리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어제 저녁 이장님이 손수 해주신 홍합밥에 간장 비벼서 열심히 먹는 모습이 좋으셨나 보다. 처음 숙소로 쓰는 어민대피소에서 밥을 해먹을 때, 멋도 모르고 3층 부엌에서 취사를 하려고 시도하다가 할머니(김성도 이장의 부인) 꾸중을 들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너거 이 부엌 왜 쓰노? 저 밑에 내려가서 밥 해먹어야 될 꺼 아니가? 뭐 이카노.” 사실 할머니 댁 전용 부엌이면 좀 써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의외였다. 그 외에도 물을 많이 틀거나 뭔가 낭비하는 모습을 보이면 여지없이 한마디가 날아왔다.

실제로 숙소의 안주인 역할을 하시는 할머니께 사랑받기 위해선 뭐든지 숙소에 있는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이다. 첫 날, 할머니 방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그동안 많은 취재진들이 이 숙소를 거쳐가면서 많이 시달린 일화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때 대부분 사람들이 ‘독도’가 ‘육지’와 달리 생필품을 공수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크게 배려해 주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처럼 보여 여쭤봤더니  “내 지금 뭐 아침부터 감기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있다. 약도 없어”라고 하셨다. 우리는 준비했던 비상약을 나눠드렸고 그 이후부터 할머니께 꾸중이 아닌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삼성 야구 팬이라는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귀여운 면이 많으셨다. 할머니와의 거리가 좁아졌다는 생각에 어제는 서울에 있는 울림 기자단과 요란스럽게 영상통화를 했더니 “저것들이 다 알 만한 나이에 왜 이리 시끄럽노”라고 또 한마디 들었다. 하지만 이내 뭐라고 하시면서 수박 한 접시를 방으로 보내주셨다. 사실 독도에서 가장 친해지기 어려운 거주민이다. 안전이나 보안 문제 때문에 독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주로 딱딱하게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입도 전 경비대에서 숙박할 수 있겠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겠냐는 부탁이 모두 거절되었기 때문에 좀 까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터뷰 제의를 미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해서 2차, 3차로 확인하는 모습을 보니 독도가 참 민감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대에게 사랑받는 방법, 첫째 담배를 사간다. 보급받는 담배 ‘군 디스’는 물량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한다. 둘째, 동도에 머무를 때 경비대원 한 명은 무조건 그 사람이 동도에서 나갈 때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많은 이야기를 통해 친해진다. 경비대원이 무작정 따라다니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대하면서 그날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좋다. 

이제 독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3일 동안의 짧은 체류 경험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독도 경비대 강석경 대장과 나눴던 짧은 인터뷰 도중 그가 한 마지막 말이 아직도 가슴에 선선하다.

“저기 등대 꼭대기에 태극기 보이죠. 저 태극기가 계속 휘날림으로써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대한민국 경찰의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 끝까지 갖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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