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최근 아동·여성 대상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26일 경찰청은 ‘어린이·부녀자 실종사건 총력대응 체제’를 선언, 각 경찰서마다 가출·신고 전담반을 가동하고 있다. 법무부와 여성부도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범죄예방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같은 대책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사회는 정보화 시대 도래와 함께 범죄학 측면에서 이미 위험사회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계를 위해 또는 단순히 성욕을 채우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강력범죄는 뚜렷한 동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서 8년간 근무한 뒤, 일본에서 범죄수사학을 공부한 경찰대학교 이동희 교수의 견해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이 교수는 “인터넷을 포함한 유해 매체와 유해 환경의 범람, 핵가족화와 결손가정의 증가로 인한 가정윤리의 해체 등이 범죄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등 현대사회에서 환경적 취약성은 범죄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없을까. 물론 전문가들은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외국사례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 ‘어린이 110번의 집’ 자율 캠페인
실제로 OECD 국가들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의 ‘어린이 110번의 집’이다. 일본 전역에 걸쳐 주민들의 자율적인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운동이다. 이 운동에 동참하는 가정은 집 밖이나 대문 앞에 노란 깃발을 내걸어 위험에 처한 어린이들이 집안으로 피신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경찰 등 공공기관에서도 이 운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관공서의 차량이나 지역별 민간자율순찰차량 등에도 ‘어린이 110번’ 스티커를 부착한 경우가 많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부녀자·어린이 대상 범죄 행위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원인은 서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던 도쿄가 1990년대 후반 범죄율이 급증하고, 검거율이 20%대까지 떨어진 데서 시작됐다.
특히 고베 연속아동살인사건은 일본사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한 도쿄의 외국인 범죄율이 30%에 육박하는 ‘국제 범죄 도시’가 되면서 일본사회는 고이즈미 총리가 앞장서 범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
이후 수상이 직접 주재하고 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참가하는 ‘범죄대책각료회의’가 2003년 9월에 출범하기에 이른다. ‘세계 제일 안전한 나라, 일본’이라는 슬로건 하에 운영되고 있는 이 회의는 그 해 12월 ‘범죄에 강한 사회의 실현을 위한 행동계획’을 마련했다. 경찰을 포함한 행정 각부, 국민 등 범국가적으로 범죄에 대응하는 행동계획을 추진해 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 사이 일본의 경찰관이 1만5000여명 정도 증원됐다는 점이다. 다른 부문의 공무원 수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경찰공무원의 수는 늘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호주는 1979년부터 위험한 사람이 접근하거나 어린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피신할 수 있는 ‘세이프티 하우스(Safety House)’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영국과 뉴질랜드 등으로 확산됐다. 미국은 1982년 이후 길을 잃거나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임시로 보호하며, 범죄가 의심되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는 ‘맥그루프 하우스(McGruff Hous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타주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44개 주로 확산 시행되고 있다. 캐나다는 1986년부터 지역별로 위험에 처한 어린이를 자신의 집에 임시 보호하는 ‘골목 부모(Block Parent)’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캐나다 사회의 약 30만 가구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앰버 경고(Amber Alert)나 실종자를 알리는 핸드폰 수신 또한 지역사회 단위로 구성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동희 교수는 “요즘 핸드폰에 수시로 뜨는 무분별한 실종 신고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실종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무디게 할 우려가 있다”면서 “실종 신고와 앰버 경고의 경우 지역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납치 사건이 일어나 앰버 경고를 취할 경우,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사람들과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보다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역사회가 나서 법 개정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매건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지난 1994년 뉴저지주에서 발생한 매건 캉카(당시 7세)의 성범죄 피해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매건은 성범죄로 2번이나 형을 살았던 이웃집 남성에게 유인돼 살해됐다. 하지만 이웃 주민 어느 누구도 그 남성이 어린이 성범죄 전력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에서 미국 사회는 충격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무엇보다 매건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사건 이후 매건 캉카의 부모가 ‘모든 부모는 위험한 성적 육식동물이 이웃에 이주할 경우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운동을 펼쳤고, 이후 40만명의 서명을 받아낸 사실이 있다.
이를 계기로 뉴저지주에서 시작된 매건법은 1996년 5월 연방의회에서도 제정하기에 이른다. 매건법의 제정 과정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범죄의 피해를 치유하려는 과정이며, 또한 범죄를 예방하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이 범국가적으로 확대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담 철거·밝은 조명 등 방범 효과 높아
범죄예방 차원의 환경개선 효과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CP TED(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가 대표적이다. CPTED는 1968년 미국 뉴욕대학교의 교수였던 뉴만의 ‘방어공간’에서 유래했다. 건물과 가로등, 감시 장비 등을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건축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 등 선진국의 건축 관계 법령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건축물의 층수가 적고 복도와 계단 및 입구의 설계는 감시가 용이하도록 설계하고 공공지역과 사유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표지를 사용하는 것 등이다. 과거에는 단독주택일 경우 높은 담장을 설치해 외부인의 침입을 어렵게 하면 방범 효과가 높다고 인식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담을 철거하고 투과가 가능한 울타리를 설치했을 때 방범효과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의 경우에도 일자형보다는 ‘ㄷ’자형으로 건축하면 이웃 상호간의 현시성 때문에 높은 방범 효과를 보여주었다.
어린이 놀이터 등 폭력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 어두운 뒷골목 등에 가로등의 수를 늘려 밝게 하고 주의의 시야를 가리는 가로수 등을 제거함으로써 방범효과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은 편의점 유리창에 광고물 부착을 금지하고, 학교나 아파트의 담장을 낮추거나 철거해 지나가는 행인들을 공개함으로써 범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범죄 환경 측면에서 보면 범죄 발생 여지가 높은 곳을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서울지방경찰청 강력범죄 전담반에서 일하다 현재 강북경찰서 지능수사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백형산 형사는 “성폭력과 납치 등 부녀자 대상 강력범죄는 대부분 늦은 밤 시간 길거리에서 일어난다”며 “여성들의 경우 일찍 귀가하는 게 범죄를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요즘 들어 ‘도우미’를 고용하는 불법 노래방이 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업소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경우 “지인들에게 항상 자신의 소재를 알리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리는 습관은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습관이다. 부모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이런 방법을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양 초등학생 납치사건의 경우 혜진 양의 어머니가 ‘단순 가출’이 아닌 ‘사고’라고 단정한 이유도 “혜진이는 밖에 나가면 항상 집에 전화를 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렸는데, 그날 오후 내내 전화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특히 성범죄로부터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노력이 절대적입니다. 일단 자기 통제가 어려운 5살~11살의 어린이가 있는 부모는 자녀가 잘 다니는 통학로와 집 주변을 잘 점검하고 우범지대에 혼자 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린이에게 낯선 사람을 봤을 때 대처 능력 등 항상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각박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전·현직 경찰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각 경찰서마다 ‘실종 수사전담팀’ 운영한다
법무부는 이달 1일부터 법질서 확립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검찰에 대해 강력 대처를 지시했다. 특히 성폭력범죄의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방향을 주문했다. 일단, 어린이 납치·성폭력사건에 대해서는 초동단계부터 전담검사·수사관으로 ‘전담 수사반’을 편성, 24시간 수사지휘체계를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초동단계부터 유전자·지문 감식 등 과학수사기법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 △일부 미온적인 형사 처벌조항을 개정 △성폭력사범 위치추적제도 도입·시행 △아동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제도 도입·추진 △성폭력범죄자의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청도 어린이·부녀자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 대응체제를 확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제도 보완 등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종합대책 내용은 △실종사건 수사전담팀 운영 △어린이 안전 지킴이 집 운영 등 민·경 협력 치안시스템 구축 △어린이 안전 확보를 위해 ‘전자태그 시스템’ 추진 검토 등이다. 특히 실종사건을 전담하는 ‘실종 수사전담팀’을 각 경찰서마다 운영할 방침이다. 또한 최근 3년간 어린이·부녀자 실종 가출신고를 전면 재분석, 단순 가출 사건과 범죄피해 의심사건으로 분류해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것은 원점에서 재수사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어린이·부녀자 실종사건은 신고접수 즉시 가용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민·관 합동수색 및 신속한 초동 수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여성부도 어린이 대상 범죄에 대한 예방 대책을 내놨다. 여성부는 성폭력 피해어린이들의 의료·상담·치료를 지원하는 ‘아동성폭력전담센터’(해바라기아동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한다. 현재 서울, 대구, 광주 3곳에서만 운영 중인 아동성폭력전담센터를 올해 1개소 더 설치하고, 2009년까지 전국 시·도에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또 일부 시·군·구에 운영 중인 ‘여성폭력방지 지역협의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어린이보호기능을 확대·강화하는 등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사회 차원의 어린이 안전시스템을 확충할 계획이다. 성폭력 예방 및 피해지원 프로그램으로는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학년별 성폭력예방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성폭력 피해자 응급처치 및 의료지원을 위한 전문자료를 보급할 계획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의료업무 매뉴얼을 작성해 성폭력 전담 의료기관과 원스톱 지원센터 등에 보급하고, 의사협회·산부인과학회 등 의료인 대상 교육자료로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
유전자 분석 등 미국 CSI 못지않은 맹활약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지문 감정·유전자 분석 등 일부 분야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우수성을 자랑한다고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지난 2006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과 최근 네팔 유엔평화유지활동 헬기 추락사고 이후 유전자 감식 능력, 또한 이번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사건에서도 우리나라 경찰의 과학수사 능력이 미국의 CSI(범죄과학수사대) 못지않는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찰의 과학수사 역사는 1948년 경찰부 감식과에서 출발한다. 이후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설됐으며 이후 경찰청 내 감식계-감식과로 이어져 오다 1999년 말 과학수사과로 변경된다. 이후 2005년 1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Police Scientific Investigation)로 확대 개편됐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법의학, 생물학, 약독물, 문서감정, 화학분석, 물리분석, 범죄심리, 교통공학 분야를 담당하고 지문과 족 흔적, 거짓말탐지기, 몽타주, CCTV 판독과 감정은 과학수사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다. 범죄 현장에서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이들 요원들은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 약 1,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경찰청 본청에는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의 과학수사를 지원하는 조직과 지문감정, 장비분석 등 전문 감식요원들이 180여명 있다. 크게 범죄사건 분석(프로파일링), 범죄수법 자료 분류 및 관리 등을 하는 범죄정보지원계와 현장지문 감정, 거짓말탐지기 분석, 몽타주 작성 등 증거분석계로 나뉜다. 과학수사 요원은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방화)를 비롯해 현장 감식이 필요한 사건에는 모두 출동한다. 경제범 정도가 제외되고 거의 모든 범죄에 참가하는 셈이다. 감정 중 DNA 검사, 부검 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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