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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의·동해선 남북열차 시험운행




“진짜 북녘땅을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할머니의 고향을 그것도 열차를 타고 간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네요.”
판문점 바로 옆에 위치한 최북단 마을 파주시 대성리에 사는 김동현(47) 이장은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탑승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후세대인 김 이장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실제 북녘 땅을 밟을 줄 몰랐다”며 벌써부터 기대감에 부풀었다.

김 이장의 할머니 고향은 판문점 북쪽에 위치한 고두메라는 작은 산골마을. 김 이장은 “분단이후 한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셔 마음이 늘 아팠는데 이번에 통일의 열차를 타고 할머니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철책선 너머로만 바라보던 북녘땅을 이제 걸어서 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기대했다.

분단 이전 경의선 열차를 타고 서울과 개성을 자유롭게 왕래했던 김종민(72) 할아버지는 “이번 시험운행에 실향민이 포함돼지 않아 아쉽지만 마음은 벌써통일의 열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통일의 열차로 운행되기를 바란다”고 간절한 소망을 나타냈다.

남북을 가로지를 열차 시험운행 준비가 끝나고 출발 기적소리만 남았다.
경의선은 17일 오전 11시 30분에 문산역을 출발해 세관 통행·검사차 정차하는 도라산역을 거쳐 오후 12시 10분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한 뒤 오후 1시 개성역(27.3km)에 도착한다.
같은 시각 북측 금강산역에서도 북측 열차가 남으로 출발해 오후 12시 20분께 MDL을 넘어 12시 30분 우리 측 제진역(25.5km)에 도착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탑승자들은 점심식사를 마친 뒤 경의선은 오후 2시 40분께 개성역을, 동해선은 오후 3시께 제진역을 각각 출발해 나란히 오후 3시 30분 MDL을 통과한다.





남북철도, 물류비용 80%까지 절감

이날 남북 연결 열차가 달리게 된 것은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 시험운행에 대한 군사보장이 전격 합의됐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남북 열차운행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3년만이다.
세 차례나 시험운행을 합의했지만 북측과 군사보장 합의를 이루지 못해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세부일정에 합의하고도 군사보장 합의서를 체결하지 못해 시험운행 행사를 하루 앞두고 연기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하지만 이번 열차 시험운행은 남북 분단으로 끊겨진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남북이 함께 복원함으로써 민족분단과 냉전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물류혁신의 일대 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인천항에서 북한 남포항까지 배를 통해 물자를 수송하면 7~10일이 소요되며 비용은 1TEU(20피트 컨테이너 1대분)당 720달러가 든다. 반면 철도를 이용하면 운임은 132달러에 불과하고 하루나 이틀이면 화물운송이 가능하다. 수송일수가 6~8일이나 단축되고 운임도 588달러가 절감된다.

그런가하면 이번 남북의 철도 연결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남북 간 물류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GR), 만주횡단철도(TMR) 등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철도망 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남북경협 차원을 넘어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중심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천릿길을 가는 소중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연결된 남북 철도는 최대 자원보유국인 러시아 및 엄청난 시장인 중국과 연결해 우리 경제에 새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남북 연결 철도의 ‘단계적·부분적 개통 방침’에 따라 △개성공단 물자 수송 및 공단 북쪽 노동자 통근(1단계) △개성공단 남쪽 노동자 통근 및 개성관광 관광객 운송(2단계) △서울~평양 등 남북 사이 정기열차 운행(3단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권태욱 기자






한국전쟁으로 철로가 끊긴 지 56년 만인 5월 17일 경의선·동해선 남북열차 시험운행을 앞두고 한준기(80·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1950년 12월 경의선 마지막 열차의 기관사였다.
한씨는 그때 당시 몰았던 열차가 파주시 장단역에 멈춰선 것이 남북 간 열차 운행의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군의 명령에 따라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군용트럭 한 대가 도착했고 미군 20여 명이 열차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때는 영문을 몰랐지만 기차가 인민군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지요.”

그 열차는 그해 12월 31일 오후 10시께 장단역에서 미군의 저지로 운행이 중단된 뒤 56년 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지난해 11월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된 기관차의 화통만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2000년 7월 남북합의에 따라 경의선·동해선 남북열차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이제 개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준기 씨는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기관사로 일했다. 광복 후인 1945년 11월 귀국해 이듬해 2월부터 서울철도국 수색기관차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개성을 거쳐 토성역까지 80여km를 오가던 한씨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기관차 운행을 중단했다가 서울이 수복된 같은 해 9월 중순께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운전하고 싶다
1950년 12월 30일, 역시 그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한씨는 오전 11시쯤 서울 수색차량기지에서 남쪽의 화물열차를 몰고 출발, 개성역에 도착했다. 원래는 개성역에서 군수물자가 실린 화차를 달고 오는 것이 한씨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에서 “북한 기관차를 인계받고 평양으로 올라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한씨가 지시에 따라 올라가는 중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역에 머물러 있던 화차를 연결해 되돌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가 북한 화물열차를 후진해 12월 31일 오후 10시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기관차 승무원은 모두 대기하라”는 미군의 지시를 받고 기관차에서 내린 뒤 두 번 다시 올라갈 수 없었다.

한씨는 17일 경의선 시험운행 탑승자로 초청받았다. 2000년 9월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기공식에서 옛날 자신이 몰았던 증기기관차를 본떠 만든 ‘염원의 열차’를 몰고 북쪽으로 100m가량 운전하기도 했다.
그는 “경의선 열차를 다시 몰 그 날을 위해 등산을 다니면서 꾸준히 건강을 관리해왔다”며 “재개통되는 경의선 열차가 증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달라졌다지만 운전할 수 있다”고 강한 열의를 보였다.
한씨는 “경의선 열차를 다시 운전하는 영광이 오긴 어렵겠지만 평생 가슴에 담아온 그 길을 죽기 전에 다시 가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격”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세기 넘게 멈춰 있던 경의선 남북 연결구간을 다시 달릴 최초의 기관사로 선정된 신장철(55·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씨. 그는 17일 문산에서 개성에 이르는 경의선 구간을  달릴 기관차를 운전하게 된다.
“경의선 남북 연결구간의 최초 기관사라는 임무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기에 감격스럽습니다. 며칠 전 대전에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너무 기뻐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특히 아내가 무척 기뻐했습니다.”

신씨가 더욱 감격스러워하는 이유는 그의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 신씨의 선친 신현우(97년 작고) 씨의 고향이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이다. 신씨의 선친은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와 민통선에서 가까운 파주에 정착했고, 신씨는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78년 결혼한 부인 허인애(52) 씨도 똑같은 이산가족이다. 허씨의 선친은 북한 장단이 고향이다.

신씨는 “함께 내려온 친지 분들이 생일 때마다 모여 고향 얘기를 나눴는데 모두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 “이제 그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제가 부모님을 대신해 고향 땅의 일부라도 밟게 돼 조금이나마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신씨를 기관사로 선정한 이유 역시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능력은 물론이고 이산가족이라는 가족배경을 크게 고려한 것이다.

풍부한 경험·가족 배경 고려
신장철 씨는 서울공업고등학교 재학시절 경의선 열차로 통학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철도전문교육기관(철도전수부)을 거쳐 1971년 청량리기관차사무소 부기관사로 발령받으며 36년 간 기차를 운행했다. 1980년 기관사가 된 후 지난 1999년 100만km 무사고 운전기록을 달성했고 2000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까지 무사고 운전기록은 128만km이다.

신씨가 시험운행에 선정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시험운행에서도 기관사로 선정됐지만 아쉽게도 무산된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기회를 놓쳐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 많이 낙담했거든요. 제게 또 다시 기회를 준 코레일에 감사드립니다.”

신씨는 지난 달 도라산부터 군사분계선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사전점검 운전도 담당했다. 당시 군사분계선 근처에는 노루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많이 보였는데, 이번 시험운행에서 각별히 그때의 경험을 살려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 무사히 운전하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이번 시험운행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정기운행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경의선 시험운행에는 기관사인 신씨 외에도 부기관사인 김재균(46) 씨와 검수원 이시명(39) 씨, 여객전무 이창우(50) 씨, 차장 이진아(29) 씨가 한 팀이 되어 동행한다.
한편 코레일은 이번 시험운행 경의선 열차가 디젤전기기관차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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