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탈주민 508명 사례 1600건
통일부는 3월 31일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다.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발간하는 정부의 첫 공개 보고서다. 이번 보고서는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508명이 증언한 사례 1600여 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특히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최근의 북한인권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기술이 될 수 있게 구체적인 인권침해 사항에 대해 상반된 증언이 있을 경우 양측의 증언내용을 포함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크게 4장으로 구성됐다. 1966년 채택된 유엔(UN)의 보편적 국제인권법인 국제인권협약에서 규정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비롯해 여성·아동·장애인을 취약계층으로 포함하고 정치범수용소와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을 별도로 기술했다.
1 시민적·정치적 권리
북한주민들은 자유권 규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생명권은 모든 인권의 기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생명을 박탈하는 사례가 많다. 광범위하게 사형이 적용되고 있고 아동·임신부가 사형당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공개처형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생체실험도 자행된다. 강제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나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 여행의 자유가 없고 표현의 자유가 없다.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하고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참정권 또한 보장받지 못한다. 평등권은 성분과 계층을 바탕으로 주민을 구분하는 북한정권에 의해 침해받는다.
▲강제출산 후 아기 살해
2014년 임신 8개월 상태로 중국에서 강제송환돼 구금된 여성의 사례다. 기관원은 여성이 중국인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기관원이 분만유도제를 통해 강제로 출산하게 했다. 태어난 아기는 살해당했다.
▲아동·임신부에 대한 공개처형
2018년 청진시에 있는 강변에서 미신 및 종교행위로 주민 2명이 공개처형됐는데 그중 한 명이 미성년자였다. 2015년에도 강원 원산시 경기장에서 16~17세 아동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유포됐는데 영상에서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여성을 공개처형했다. 처형 당시 여성은 임신 6개월이었다.
▲강제로 목격해야 하는 공개처형
공개처형은 총살로 실시된다. 2018년 청진시에서는 기관총을 연사하는 방식으로 공개처형된 경우도 있다. 공개처형을 목격한 증언자들은 처형 장소에 강제로 가야 했는데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동의받지 않은 생체실험
북한에서 생체실험은 주로 83호 병원 또는 83호 관리소라고 불리는 곳에서 이뤄졌다. 83호에 수용되는 실험 대상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지적장애인으로 생체실험에 대해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없는 경우였다. 83호 수용처분은 실험 대상자 가족의 동의를 받는데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겠다”는 안전원의 협박을 받고 처분에 동의해주기도 했다.
▲12시간 넘는 강제노동
여행증을 발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하다가 ‘노동교양처벌’ 6개월을 받고 목장건설에 동원된 사례도 수집됐다. 처벌기간 중에는 작업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 기상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12~13시간 이상 노동에 동원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휴일은 없고 식사는 반찬 없이 옥수수밥이 제공된다. 강도 높은 노동과 열악한 구금환경 때문에 기관원에게 뇌물을 주면서 처분을 낮추는 일도 벌어진다.
▲길거리에서 휴대전화 검열
북한 해외유학생이나 해외파견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스마트폰을 쓸 수 없다. 2017년 양강도에서는 거리에서 통화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불시에 단속하는 사례가 있었다. 2019년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국노래·영화·음란물 등의 불순녹화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검열을 하는 등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자행됐다.
▲차별받는 ‘410호’ 대상
1990년대 실시된 ‘410호 방침’은 성분과 관련된 내용으로 보인다. 부모 중 한 명만 농장원이어도 농장에만 배치받아야 한다. 평양에서도 외곽지역에 해당하는 구역에 사는 시민은 410호 대상으로 규정돼 거주지를 중심부로 이전하지 못하고 중심구역에 공급하는 물자도 제공받지 못한다.
2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북한주민들은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권리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식량권의 경우 충분한 식량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며 계층이나 경제력 수준에 따라 차별적인 식량 접근만 이뤄지고 있다. 건강권과 관련해서도 북한 의료체계의 근간인 무상치료제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민들은 성분에 따라 의료서비스 이용에 차별을 받는다.
직장은 강제로 배치되고 보수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해외파견노동자는 북한에서와 같이 사생활을 침해받는데 심한 경우 17시간까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무상의무교육은 거의 실시되지 않고 교육기회에 대한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보장제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회적 약자는 거의 보호받지 못한다.
▲자구책을 찾는 주민들
2019년 함경남도 기업소에 문건만 올려놓고 개인상점으로 옷장사를 하거나 2018년 평안남도에서 소속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삯벌이를 하는 등의 사례가 수집됐다. 이는 북한에서 식량배급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주민 대부분이 식량을 구하기 위한 자구책을 찾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사례비가 만연한 의료환경
기본적으로 북한에서는 무상의료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의료서비스에 대한 사례비가 정형화돼 있다. 이 중 맹장수술은 300위안, 출산은 30위안, 제왕절개는 150~200위안으로 금액이 정해져 있다. 2018년에는 증세가 심각한 결핵환자가 결핵병원에 입원하려 했지만 한 달에 60~70위안에 달하는 비용을 대지 못해 2개월 만에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상비약으로 사용되는 마약
매우 열악한 의료환경 때문에 북한에서는 마약을 의약품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편이나 ‘빙두’라고 불리는 필로폰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마약을 감기, 염증, 기관지 질환, 축농증, 신경통, 관절염, 뇌졸중, 생식기 질환 치료 등에 사용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수집됐다.
▲인맥과 뇌물로 배치되는 직장
북한에서는 직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맥과 뇌물로 배치된 직장과 다른 곳을 선택하는 사례가 수집됐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장에게 뇌물을 줘 원하는 직장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노동자가 이직을 하려면 뇌물 없이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하루 17시간 일하는 해외파견노동자
북한의 해외파견노동자는 대부분 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2018년 러시아에서 일한 건설노동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몽골에서는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작업한 적도 있었다. 여기에 감시는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수시로 소지품 검열이 있고 ‘스파이’로 불리는 정보원이 존재했다. 스마트폰을 소지하거나 휴대전화로 한국 영상물을 보다가 송환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심각한 교육불평등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2018년 학교 추천으로 스키부에 선발됐지만 체육종합지도원이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고 해 선발명단에서 제외한 경우도 있었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이주민 자녀가 정규교육과정을 밟지 못하고 출신성분이 나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3 취약계층
북한의 여성과 아동, 장애인의 인권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 가부장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북한사회에서 여성은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다. 특히 탈북여성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으로 많은 여성이 인신매매를 경험한다.
아동의 권리 역시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아동이 공개처형되기도 하고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다. 각종 폭력에 노출된 아동이 많은데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다. 장애인은 아예 존재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탈북여성 다수가 경험하는 인신매매
상당수의 탈북여성은 인신매매를 경험한다. 중국남성과 강제로 결혼하거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등의 사례가 다수 수집됐다. 인신매매로 강제결혼을 했다가 3개월 만에 도망친 여성은 송환된 후 노동교화형으로 처벌받았다.
▲영장 없이 체포되는 아동들
한국영화를 소지하고 시청했다는 이유로 15세 나이에 체포된 증언자는 12일간 대기실에 구금된 상태로 욕설과 폭언에 시달렸다. 대부분 성인과 함께 구금돼 성인과 동일한 처우를 받는다. 움직이면 안되고 서로 말해서도 안된다. 규율을 어긴 수감자는 폭행당하는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배려받는 경우는 없다.
▲장애인만 모여 사는 ‘난쟁이마을’
왜소증 장애인만 강제로 모여 살게 하는 난쟁이마을은 2019년까지도 목격됐다. 장애인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등이 시행되기도 했다.
4 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정치범수용소의 수용민과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은 특히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정치범수용소 수용민의 처우는 열악하며 국군포로와 납북자, 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을 받고 있다.
▲법적 절차 없이 수용되는 정치범수용소
성분 문제나 김일성·김정일 권위훼손 관련 문제, 돈 문제, 탈북시도나 한국 관련 문제로 수용되는 정치범수용소에는 수용민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동반 수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처형과 강제노동이 이뤄지는데 ‘하모니카집’이라고 부르는 공동주택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는 증언이 있었다.
▲감시받는 ‘43호’ 대상
북한에서 국군포로는 탄광이나 농장에 무리로 배치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함경북도 무산군과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수십 명씩 목격됐다. 국군포로는 43호 대상으로 따로 관리되는데 직계가족까지 감시받고 대학 진학, 직장 배치, 군 입대 등 모든 면에서 차별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북한인권법 이행 위한 윤석열정부의 노력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눈 감아선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외교·안보 공약의 첫 번째로 북한인권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내세운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눈 감아선 안된다”며 “북한인권법을 이행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유엔과 적극 협력하고 국제사회와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인식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022년 7월에는 5년간 공석이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8월 25일에는 2년 만에 범정부 고위급 기구인 북한인권정책협의회가 열려 북한인권정책 현황을 점검했다. 12월 9일 열린 2차 협의회에서는 3년에 한 번 발표하는 북한인권증진 기본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2023년 3월 10일에는 북한인권증진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북한인권재단이 국회의 협조를 받아 정식 출범하기 전까지 재단 출범을 위한 준비를 하고 국내외 북한인권 증진 활동을 지원하는 등 북한인권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기구다.
특히 3월 31일 ‘2023 북한인권보고서’가 공개된 후부터 북한인권법 이행 노력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4월 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1년 연속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정부는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2018년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윤 대통령은 4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외교·안보 분야 현안과 관련한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를 열고 “북한인권법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