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을 가다
촌각을 다투는 현장이었다.
“환자분 의식은 있어요? 호흡은 하나요? 가슴과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확실히 보이나요? 경추 쪽 이상 있을 수 있으니 움직임 없도록 해주시고요. 눈에 띄는 다른 외상은요?”
7월 30일 오후 1시께. 경기 의정부 소재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 신고 전화를 받은 구급상황관리 요원들의 눈과 입이 분주해졌다. 이들 책상에는 네 대의 모니터가 병풍처럼 놓여 있었다. 실시간으로 뜨는 경기 북부 구급차량의 동태, 신고 내용과 신고자 위치를 매의 눈으로 좇으며 입으로는 끊임없이 응급처치를 내렸다. 그 사이 건너편 수보요원(사건접수 요원)들은 현장 출동 요원들과 지속적으로 무전을 주고받았다. 촘촘한 대응체계는 어떤 공백도 허용치 않았다.
응급환자 즉시 이송체계 강화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했다. 중증·응급질환별 전국 단위 순환당직제 실시, 암환자 적시 치료 지원, 의료인력 수당 및 당직비 확대, 비대면 진료의 활성화가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119종합상황실·구급상황관리센터의 응급환자 상담·안내 등 활동 대책도 포함된다. 모두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공백을 메우는 조치다.
흔히 위급상황 때 119에 전화를 걸지만 “병원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하다. 그러면 ‘구급상황관리사’에게 연결된다. 이들은 신고 접수 시 응급처치 지도뿐만 아니라 질병 상담, 병의원 안내, 이송 병원 선정 업무도 한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의 구급상황관리사는 총 16명이다. 4명씩 4개 팀이 2교대로 근무한다. 2020년까지만 해도 팀당 2명이었던 인원이 올해 7월 두 배로 늘었다. 비상진료체계 강화에 따른 인력 보강이다.
구급상황관리사인 최미옥 소방장은 “2월 의사 집단행동 이후 일평균 상담 건수가 약 30% 증가했다”면서 “진료가 취약한 야간, 주말 및 공휴일 시간대 병의원 안내 문의가 가장 많은데 성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와 같은 비응급 특수과의 진료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그다음은 이송 병원 선정 문의와 질병 상담 순이다. 이송 병원 선정은 ‘응급실 뺑뺑이’ 같은 응급환자 이송 지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중증환자 발생 시 구급대원들이 일일이 알아봐야 했던 이송 병원을 이제는 구급상황관리사가 함께 선정한다. 구급상황관리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진 거다. 5월부터는 중앙응급의료센터의 광역응급의료상황실과의 협업으로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더욱 강화했다”는 것이 최 소방장의 말이다.
체계에 따라 중증·응급환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대형병원으로, 경증·비응급환자는 지역 의료기관이나 인근 병의원으로 이송한다. 각 시·도 소방본부는 관내 진료가능 의료기관을 파악해 누리집 게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안내 중이다.
구급 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유선 상의 응급지도는 구급상황관리사 본연의 몫이다. 낙상, 심정지 등 다양한 사고 상황에 지혈,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를 안내한다. 하계 휴가철인 요즘은 익수 사고 신고가 늘었다. 영유아 사고는 자주 있는 일이다. 특히 기도폐쇄, 열성경련 사례가 많다.
“최근 11개월 된 아기 기도에 포도가 걸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기가 숨을 못 쉬어 청색증이 온 상태였다. 아기를 뒤집어서 등을 두드리는 방식의 기도폐쇄 응급처치를 안내했고 다행히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포도 알이 나왔다. 수화기 너머 아기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호전됐음에도 출동한 대원들은 끝까지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최 소방장은 “보호자 입장에서 흥분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응급처치를 잘 따라줘 위급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면서 “119에 응급상황을 신고할 때는 소방요원이 요청하는 정보를 침착히 파악해 전달하고 지시받은 응급처치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경증환자는 응급실 안돼요”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남부와 북부로 나뉜다. 북부는 11개의 관서를 관할한다. 의정부부터 양주, 동두천, 포천, 남양주, 가평, 구리, 고양, 일산, 파주, 연천까지다. 관할 지역이 광대한 만큼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린다. 평일 평균 350통, 주말과 공휴일에는 600통까지도 온다.
상황실 전면에는 대형 현황판이 걸려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30분까지 들어온 ‘구급신고’ 전화만 253통이었다. 최 소방장은 “시민의식이 격상한 만큼 장난전화는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비응급환자의 신고 비율이 약 70%”라고 했다.
“의료공백 사태 극복을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의 협조도 필요하다. 응급환자라면 구급차를 요청하는 게 당연하지만 비응급환자는 1차 의료기관에서 먼저 진찰 보기를 권한다. 급하게 질병 상담이 필요한 경우 바로 응급실에 내원하지 말고 먼저 119에 연락하면 좋겠다. 비응급환자의 구급차 및 응급실 이용 자제가 응급환자의 소생을 도울 수 있다.”
간혹 응급실에 갈 만큼 급한 증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되기도 한다. 이때도 119에 전화해 의료 상담을 요청하면 된다.
“의식이 있고 호흡곤란이 없으면 대체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보면 된다. 심혈관, 뇌혈관 증상에 해당하는 가슴 통증, 심한 어지럼증이 아닌 경우에는 보통 이렇게 응급과 비응급을 구분한다. 사고나 증상 발생 시 무턱대고 큰 병원부터 찾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수지접합이나 화상의 경우 전문병원으로 가야 한다. 119에 미리 연락을 주면 전문?강소병원을 안내해준다.”
최 소방장은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당직의 수가 적은 응급실 내부 피로도 또한 상당히 높은 상태”라면서 “무엇보다 국민이 가장 피해를 보기 때문에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현 기자
박스기사
인터뷰 | 최미옥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 소방장·구급상황관리사
“병원 찾느라 헤매지 말고 119로 전화주세요”
2006년 1월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최미옥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 소방장은 구급대원, 행정 업무를 거쳐 2020년부터 구급상황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구급상황관리 업무와 현장 업무의 다른 점은?
“현장에 출동해 직접 응급처치 하는 것과 유선으로만 지도하는 건 크게 다르다. 음성만으로 흥분한 신고자를 진정시키고 절차를 안내하는 것에 처음에는 한계도 많이 느꼈다. 여러 동료가 협업하는 출동 업무와 다르게 단독으로 전화를 받고 온전히 자신의 판단하에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응급처치를 무사히 마치고 전화를 끊은 뒤 여운이 남는 경우도 많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게 적절했을까 밤새 고민하기도 한다. 구급 보수교육과 특별교육 외에 개인적으로도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다.”
의사 집단행동 이후 달라진 내부 풍경은?
“타 지역도 상황이 비슷할 텐데 비응급 특수과 진료 문의가 늘었다. 응급환자들은 권역이나 지역센터 등 관내에서 수용하도록 하고 비응급 특수과 등 진료가 제한되는 경우에는 서울 구급상황관리센터 등에 연결하고 있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큰 고충은 뭔가?
“행복하고 즐거운 일보다 불의의 사고와 같은 불행한 상황에 항상 노출된다는 점이다. 죽음에도 점차 무뎌지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사명감도 많이 느낀다. 구급상황관리 업무를 하며 전화 음성만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신고자와 통화를 하는데 거리가 먼 가평, 연천지역까지 출동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 시간 동안 흐느낌, 비명과 같은 음성을 계속 마주하다보면 덩달아 울컥하기도 한다. 다행히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는 소방동료상담소(소담센터)가 있다. 소방공무원 대상의 심신건강 전문 상담센터다.”
최근 인력이 보강됐다고 들었다.
“의사 집단행동 이후 상담 건수가 증가했고 인원 또한 보충됐다. 2020년도까지만 해도 야간 근무자가 1명이라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다. 좀 더 체계적인 업무가 가능해진 만큼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도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개설되길 바란다.”
장기간 의료대란으로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상당한 불편과 애로사항이 있을 거라 공감한다. 병원을 찾기 위해 직접 돌아다니고 여러 차례 거절당하며 고생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럴 땐 119에 도움을 청하면 된다. 의료상담과 병원안내를 요청하면 언제든 상담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