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캐나다·멕시코에 관세 25%, 중국에 추가관세 10%를 부과하는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반도체·인공지능(AI)·전기차 등 첨단기술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시간을 선점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기업이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맞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지원도 강구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제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이러한 내용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첨단전략산업기금 방안’을 비롯해 ‘국가계약 분쟁조정제도 개선 방안’, ‘중장기 가축방역 발전대책’, ‘K-농업기술을 활용한 개발도상국 식량안보 기여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첨단전략산업 패권 경쟁 금융지원으로 맞서
먼저 정부는 산업은행에 5년간 최대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한다. 기존 반도체 저리대출 프로그램 17조 원 중 2025년분(4조 2500억 원)을 제외한 2년분을 기금으로 통합해 운용한다. 이를 기초로 산업은행 본체, 시중은행과 협력해 100조 원 이상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단위 총력전에 적극적인 금융지원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반도체 저리대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첨단전략산업을 지원 중이긴 하나 규모가 작고 대출 중심이며 금융규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첨단전략산업기금 지원 대상 산업은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미래차, AI 등이다. 미래전략 및 경제안보에 필요한 산업으로써 대통령령으로 지정되는 업종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뿐 아니라 첨단전략산업 생태계 전반 중견·중소기업까지 폭넓게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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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운용 위한 기금운용심의회 신설
정부는 그간 정책금융기관이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지분투자 및 후순위 보강 등의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시장성 차입·저리 대출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는 지분투자자로 참여해 산업생태계를 강화한다. 간접투자인 경우에는 민간자금 매칭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기술·인프라투자에 집중한다. 전력·용수 등 초창기 인프라 사업에는 기금을 후순위로 보강하고 산은 본체·민간은행과 대규모 자금지원을 시행할 계획이다. 기금의 일정 수준(7.4%)을 후순위로 보강하면 참여 은행들의 대출 위험 가중치는 최대 400%에서 100%로 감축돼 출자 부담이 줄어든다.
아울러 정부는 반도체 외의 첨단산업에도 설비 투자·연구개발(R&D) 자금을 국고채 수준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단순 운영자금이나 기존 차입급 상환 목적의 자금은 제외한다. 첨단전략산업의 글로벌 수주 경쟁 때는 구매 상대방에 금융지원 패키지를 제공한다. 산업기술력은 좋으나 금융지원이 부족해 수주하지 못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투명한 운용을 위해 기금운용심의회를 설치한다. 지원대상 산업 추가, 연도별 운용 규모 등 기금 운용과 관련한 주요 정책은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고의·중과실 없이 적극적으로 기금 관리·운용 업무를 처리한 경우에 대한 면책조항도 만들어 적극적인 운용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는 3월 중 산은법 개정안과 정부보증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해당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최소한의 준비기간을 거쳐 조속히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 주도 방역체계 지역·민간 주도로 전환
가축방역에 대한 중장기 대책도 마련됐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주도해 가축전염병 관리체계가 안정화되고 피해·확산을 최소화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으나 가축전염병 예방·관리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2029년 법정 가축전염병 발생을 현재 절반 수준인 440건으로 줄이고 방역 우수 농장을 500곳까지 확대해 ‘가축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청정 축산’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요 전략으로는 ▲자율방역 강화 ▲사전예방 시스템 효율화 ▲신종 전염병·소모성 질병 등 대응 강화 ▲방역인프라 확충 등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지역 여건에 맞는 방역대책을 수립하고 지자체 평가 및 환류체계를 구축한다. 지자체의 방역대책 등을 평가해 우수 지차체는 우선 지원하고 긴급방역비 지원을 차등화할 계획이다. 매년 농림축산식품부·지자체 합동 재난대응 가상방역훈련도 실시한다.
스마트 방역·신종 가축전염 대응체계 구축
정부는 국가가축방역통합시스템(KAHIS) 기반의 스마트 방역체계도 조성한다. KAHIS에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험도 평가를 고도화한다. 일례로 현재 평가지표 57개(주변지형, 출입차량 등)에 철새 발생이력 및 마릿수, 농장밀집도 등 13개를 추가한다. 정부는 2024·2025년 AI 위험도 평가를 통해 선별된 고위험 농장·지역에 소독자원을 집중투입하고 농장 예찰 주기를 단축하는 등 방역 조치를 효율화한다.
신종 가축전염에 대비·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진다. 정부는 가성우역(야생고라니 등)과 아프리카마역(파리, 모기 등) 백신을 사전에 비축하고 긴급행동지침(SOP)을 마련하며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와의 협력을 강화한다. 더불어 인수공통전염병(SFTS, 큐열, 포유류 AI 등)의 예찰을 확대하고 중장기 예찰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심의 관계부처 간 정보 공유 및 인수공통전염병 확산 등에 대비한 원헬스(One-Health) 협력체계도 공고히 한다.
정부는 방역인프라 확충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법정 가축전염병을 1·2·3종으로 구분짓고 종별 방역 조치를 체계화한다. 가령 현재 1종은 일부 전염병만 일시이동중지명령, 예방적살처분 등이 이뤄졌는데 앞으로는 모든 전염병에 지역단위 방역조치가 가능하다. 이밖에 정부는 가축방역 연구협의체를 가동해 대규모 전략투자 분야 발굴 및 현장 중심의 R&D를 강화한다.
개도국 식량안보 지원 강화
이날 회의에서 논의된 또 다른 안건은 ‘K-농업기술을 활용한 개발도상국 식량안보 기여 방안’이었다. 한국의 우수한 농업기술 전파에서 더 나아가 세계 각국과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고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부는 ▲협업으로 공적개발원조(ODA) 파급 효과 제고 ▲글로벌 R&D 네트워크 구축 ▲상호 호혜적인 농기자재 수출 촉진 등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웠다.
농촌진흥청은 ODA 사업으로 국가별 맞춤형 기술 개발과 대륙별 현안 해결을 지원 중이다. 이 사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원국 정부·관계부처·국제사회와 협업을 추진한다. 또 2024년 6월에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의 후속조치로 아프리카 회원국을 37개국으로 늘리고 카리브공동체(CARICOM)와 함께 ‘한·카리브 농업연구혁신 플랫폼’을 만든다.
정부는 농업기술 강국과 R&D 국제협력을 추진해 글로벌 농업 난제 해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한다. 아울러 한국이 주도하는 국제 농업기술 R&D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시아·아프리카 51개국이 참여하는 국경이동성 해충 감시체계를 만들어 주요 외래 해충에 대한 역내 대응역량도 높인다.
정부는 개발도상국 여건에 적합한 농기자재 패키지를 구성하고 작물 재배 전 주기에 투입해 생산성 향상 효과를 검증한다. 이는 K-농기자재 수출 촉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축산분야 기술 수요가 많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K-낙농기술 패키지(수정란 이식기술, 사료첨가제, 동물약품 등)의 우수성도 검증한다. 올해 우즈베키스탄 실증단지에서 효과를 검증한 이후 중장기적으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몽골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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