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100일째인 5월 29일 서울 시내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innods/images/000198/의료개혁_640.jpg)
정부가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775억 원 규모의 예비비를 지원한다. 이번 예비비는 공중보건의·군의관 파견, 시니어 의사 등 대체인력 지원, 전원환자 구급차 비용 지원 등 의료공백 대응을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사업들 위주로 편성됐다.
정부는 5월 29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이와 같은 비상진료체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운영방안도 논의됐다. 정부는 간호사가 법적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의료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데 4월 말 기준으로 총 155개 의료기관에서 1만 1395명의 간호사가 사업에 참여 중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참여 간호사에게 한시적으로 수당을 지원하고 상시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 진료지원 간호사 제도화를 포함한 간호사법을 조속히 추진하고 이 제도가 내실 있게 운영되도록 시범사업 참여병원 현장방문, 간호인력 간담회 등을 통해 현장의 건의사항을 적극 수렴할 예정이다. 중대본 본부장을 맡고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는 병원 의료진의 소진을 막고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공백이 없도록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개혁특위 전문위원회 잇따라 열려
한편 27년 만에 의대정원 증원이 확정됐다. 5월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입학전형위원회 회의를 통해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심의·승인했다. 이로써 전국 의대정원이 1509명 증원돼 2025학년도에는 40개 의과대학에서 총 4567명을 모집하게 된다. 이에 대해 5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에 “증원이 이뤄진 대학과 적극 협력해 대입 시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보건복지부에 “비상진료체계를 굳건히 유지하라”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돌아와 환자 곁에서 수련을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재정 당국에도 “의료개혁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내년 예산 편성에 힘써달라”며 의료개혁 관련 재정투자가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는데, 특히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 산하 전문위원회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의료개혁특위에는 의료인력 전문위원회,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 등 4개의 전문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이 중 의료인력 전문위원회는 5월 24일 제1차 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문위가 다룰 과제로 전공의 업무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의 질 개선,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투자 강화, 의학교육의 질 개선 등을 선정했다. 전공의의 주당 근로시간을 현재 80시간에서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연속 근로시간도 36시간에서 단축하는 방안 등이다.
5월 27일에는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의 제2차 회의도 열렸다.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는 의료공급과 이용체계의 정상화, 기능·성과 중심 의료체계 개편 등을 심층 검토하기 위해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료개혁 과제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큰 틀의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향’,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 ‘상급종합병원 관점에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모델’ 등이 안건으로 선정됐다.
큰 틀의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향으로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일차의료기관의 바람직한 역할을 바탕으로 의료공급, 의료이용, 진료협력, 보상 및 평가 등을 아우르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향이 제시됐다. 전문의 중심병원에 대해서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프라, 인력 등의 기준과 전환에 대한 보상방안이 제시됐다. 또 ‘간호사 업무범위 시범사업’ 등 인력운영 혁신을 통해 병상 가동을 회복시킨 사례를 전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 전문의 중심의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전문위원들은 현재의 비상진료체계를 의료정상화로 연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합의했다. 이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진료에 집중하고 숙련된 인력에 투자하며 전공의 근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비상진료체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등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의료공급·이용체계를 안정화시키는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기회로
이처럼 정부는 비상진료체계가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진료하고 경증·외래환자는 지역 병·의원이 담당하도록 운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높아진 지역 병·의원의 외래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월 23일부터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4월 30일까지 약 10주 간 의원급 비대면진료는 약 38만여 건, 병원급 비대면진료는 약 2000건이 운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확대가 경증·외래환자를 분산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비대면진료 추진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선 또한 추진하고 있다. 2월 19일부터 ‘119 구급환자 분산 이송 방침’에 따라 환자의 중증도와 병원의 역량을 고려한 분산이송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2월 대비 4월 기준 대형병원 응급실로의 이송 비율은 15% 하락했고 중소병원 응급실로의 이송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수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복지부 2차관)은 5월 24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앞으로도 중증·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적시에 적절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기관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제도 개선사항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신속하게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