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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정상회의와 K-컬처의 진화, 기술이 예술에 던지는 질문



9월 7일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영화와 영상 콘텐츠의 미래를 논의하는 최초의 국제회의인 ‘뤼미에르 정상회의(Sommet Lumière)’가 열린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공동 주재하는 이 행사는 단순한 문화 교류를 넘어 전 세계 150여 명의 최고위급 인사가 모여 영상산업의 지형을 재편하는 이른바 ‘영화계의 다보스포럼’을 표방한다.

위기의 창작 생태계 맞선 범국가 연대
프랑스 내부에서 이 행사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잔여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확립하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가 아니냐는 냉소적 시각이 있을 법도 하지만 문화예술계와 학계의 기류는 사뭇 다르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가에탕 브뤼엘 국립영화영상센터(CNC) 대표 등 권위 있는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현재 글로벌 창작 생태계가 마주한 위기감이 그만큼 절박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범국가적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한국이 공동 주최국으로 나선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제3국들은 한국을 단순히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국가 이상으로 바라본다. 과거 1926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영화회의가 할리우드의 독점에 맞서기 위한 유럽의 연대였다면, 정확히 100년 뒤 열리는 이번 회의는 거대 글로벌 플랫폼과 빅테크 기업의 패권에 맞서기 위해 가장 강력한 지식재산권 창출 능력을 증명한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의 의제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 행사가 단순한 문화예술 축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공지능(AI)의 충격, 스트리밍과 비디오게임의 융합, 몰입형 콘텐츠 등 미디어 기술과 산업을 총망라하는 명실상부한 ‘아트 앤 테크놀러지(Art & Technology)’ 정상회의다. 과학기술은 이제 예술을 구현하는 부차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술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규정하며 예술 활동의 가장 핵심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100년 전 폴 발레리의 경고
이러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날카롭게 통찰한 프랑스인이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가 발표한 ‘은판사진술(daguerreotype)’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939년 파리의 소르본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시인 폴 발레리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시각 기술이 언어와 문학에 미친 심대한 충격에 대해 밝혔다.
시인에 따르면 문학은 시각적 대상에 대한 사실주의적 묘사의 기능을 사진에 넘겨주고 말았다. 사진 이후 문학은 ‘오직 문학만이 성취할 수 있는 목적’에 스스로를 헌신해야 한다는 새로운 자기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더 나아가 시각적 지식을 둘러싼 모든 기준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으며 결국 인간이 세계를 보는 방식 자체가 변하고 말았다. 사진 이후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동굴을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앎의 방식이 변한 것이다.
K-컬처 이후의 문턱에 선 우리에게 100년 전 발레리의 사진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AI가 과거의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높은 수준의 문화적 역량이란 ‘AI가 미처 학습하지 못한 미래의 질문을 상상해 내는 능력’이어야 한다. 과거 프랑스에서 발명한 사진이 시각적 진리의 기준을 바꾸고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듯이 21세기 K-문화기술이 바로 그 혁명가의 역할을 도맡게 되길 바란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첫 뤼미에르 정상회의의 파트너라는 역할이 문화기술 증진을 위한 향후 우리 내부의 진취적 변화로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원재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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