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쿡방’이 유행이다. 요리(Cook)와 방송의 합성어로, 음식 관련 방송을 뜻하는 ‘쿡방’은 거의 모든 채널이 하나쯤은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할 정도로 인기다. 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며 단순히 허기를 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음식을 즐기게 된 것이 그 배경일 수도 있고, 창의성과 예술성이 가미된 요리로 인기를 모으는 스타 셰프들의 등장도 한몫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요즘 쿡방은 종래의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과 많이 다르다. 그중 뚜렷한 것이 단순히 음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던 데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레시피에 스토리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문 닫기 전에 가봐야 할’이라든가 ‘인기인의 냉장고를 뒤져내는’ 포맷이 그런 예다. 보는 사람들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그런 이야기에 매료된다.
한데 이런 쿡방들은 공통점이 보인다. 음식 자체보다는 주변 인물이나 식당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음식 자체에 재미있고 우습고 때로는 허탈한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음식의 풍미를 돋우고 식탁 분위기를 살리는 음식 관련 이야기는 수두룩하다.
언론인 출신이 쓴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보면 아주 맛깔스러운 책이다. 발품을 팔고 역사를 뒤져내 동서양 음식 팔십여 종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웰빙 붐에 힘입어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생선회는 일본어로 ‘사시미(刺し身)’라고 한다. 이걸 문자 그대로 풀면 ‘몸을 찌르다’라는 뜻이다. 물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놓은 것을 ‘찌르다’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십사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사시미란 말이 등장하는데, 원래는 생선을 자른다는 의미로 ‘기리미(切り身)’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하지만 당시 상황 탓에 사시미가 됐다는 것이다. 즉 자른다, 칼로 베다라는 뜻의 일본어 ‘기루(切る)’가 당시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던 ‘배신하다’란 뜻의 ‘우라기루(裏切る)’를 연상하기 때문에 ‘기리미’ 대신 ‘사시미’를 쓰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또 다른 설명도 나온다. 역시 무로마치 시대. 오사카성의 장군이 귀한 손님을 맞은 자리에 요리사가 열가지가 넘는 생선회를 포함한 산해진미를 내자 손님이 생선 이름을 묻더란다. 이후 그 요리사는 주군인 장군의 편의를 위해 생선회를 낼 때는 생선 이름과 부위를 적은 작은 깃발을 생선의 지느러미나 아가미에 꽂아 상을 차렸기에 이후 생선회를 ‘찌르다’라는 뜻의 사시미로 부르게 되었단다.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신분에 따라 먹을 수 있는 빵의 색깔과 종류가 달랐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농부들은 돼지보다 조금 더 나은 열등한 인간이기에 빵을 자를 때 도끼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딱딱한 검은 빵을 먹었고, 부드럽고 하얀 빵은 고상하고 연약한 소화 기능을 가진 귀족만을 위한 빵이었단다. 보통 사람들이 평등하게 하얀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이백년도 안 된 이야기라면 단팥빵을 먹는 ‘감격’이 더해질 것이다.
시원한 동치미가 실은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 침채(沈菜)의 침에 겨울의 동(冬)을 더한 동침(冬沈)에 접미사 ‘이’가 붙은, 한자와 우리말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뜻이라면 조금은 놀랍다.
괴짜의 히스테리로 태어난 포테이토칩, 몽골 초원의 패스트푸드 햄버거, 목숨을 담보로 진시황에게 바친 어묵 등 ‘진수성찬’ 이야기로 입 말고도 머리도 호강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음식이 상식이다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 | 400쪽 | 1만3000원
글 · 김성희 (북컬럼니스트)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