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 교실 안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놀던 두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책 귀퉁이에 낙서를 하고 놀았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지고 서로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둘은 다시 만났다. ‘감대’와 ‘동춘’의 이야기다. 감대 김대훈(28) 작가와 동춘 이동훈(28)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온 ‘질긴 인연’이다. 그때 서로 이름을 따서 불렀던 별명이 두 작가의 필명이 됐다. 그만큼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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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 얼마 전 큰 경사가 생겼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평창동계올림픽 창작 웹툰 공모전’에서 일반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들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은 ‘우리는 평창으로 간다’다. 작품에는 알파인 스키 선수들이 등장한다. 부상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스타플레이어 ‘형식’, 형식의 실점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현수’가 서로 갈등을 극복하고 코치와 선수로 함께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알파인 스키를 이야기 배경으로 선택했을까? 알파인 스키는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있는 종목이 아니라 더 의문이 갔다.
“웹툰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 선수 개개인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어요. 선수끼리 경쟁의식이나 서로 간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려면 개인 종목이 우리 웹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알파인 스키예요. 알파인 스키를 다루기로 결정한 후에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저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내용을 웹툰에 실으면 안 되니까요. 가장 많이 봤던 것이 알파인 스키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예요. 선수들의 경기 모습뿐 아니라 어떻게 훈련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죠.”
동춘 작가는 스토리를, 감대 작가는 그림을 맡았다. 동춘 작가가 이야기의 얼개를 만든 다음 감대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현수는 어리숙하지만 나아갈 의지가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눈에 강렬함을 줬다. 형식은 베테랑 선수답게 우직하고 강인한 느낌을 살려 스케치를 했다.
알파인 스키 선수와 코치의 평창 향한 열정 표현
‘우리는 평창으로 간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갈등을 떠안고 있다. 한국 스키의 전설로 불리는 형식은 올림픽 무대를 끝으로 은퇴하려고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기회가 사라진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후배들을 뒷받침해주는 코치로 평창에 가게 된다. 형식을 제치고 국가대표가 된 현수는 ‘감히 형식을 몰아내고 국가대표가 된 애송이’로 등장한다. 올림픽이라는 생각지 못한 기회가 버겁지만 부담감을 떨쳐내고 진정한 국가대표로 거듭난다. 작가는 형식과 현수를 내세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기 없는 종목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웹툰 속 형식과 현수는 사실 감대와 동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비록 자신들이 인기 있는 웹툰 작가는 아니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프로의식을 갖고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를 짜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작품에 몰입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만큼 저희가 작품 내용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는 내내 주인공들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웹툰 시장에도 인기 작가가 있는 반면 저희처럼 아직 인기를 얻지 못한 작가도 있죠. 우리나라에서 알파인 스키가 인기 종목은 아니잖아요. 비인기 종목이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서로 오랜 친구라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았을 것 같지만 두 사람이 팀을 이뤄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대 작가는 혼자, 동춘 작가는 다른 대학 동기와 함께 ‘세븐 먼스(se7en months)’라는 팀으로 작업하고 있다. 서로 막역하게 대할 법도 하지만 작업을 할 때는 서로의 영역을 철저히 존중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작업 과정에서 좀 더 추가되거나 삭제할 내용은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원만하게 해결했다. 날마다 보는 사이가 어떻게 좋을 수만 있으랴. 그들도 티격태격하는 일이 없어 보이진 않았다. 작업하는 동안 서로 싸우진 않았는지 물으니 두 작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가 작업실을 같이 쓰다 보니 일상적인 일로 잔소리를 해요. 쓰레기 좀 밖에 내놔라, 밥 좀 해라, 화장실 문 좀 닫고 다녀라, 이런 식이죠.”
겉모습도 형제처럼 닮은 그들은 지향하는 바도 비슷하다. 인기 웹툰 작가로 성공해 죽어서도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꿈이다. 두 작가는 처음부터 그랬듯 여전히 누구보다 든든하게 서로를 지지해주며 함께 웹툰 작가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감대 작가는 조만간 웹툰 정식 연재 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사귀자’는 작품을 끝낸 동춘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동춘 작가는 앞으로 고우영 화백 같은 만화가가 되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어릴 적 도서관에는 고우영 화백 만화책이 꼭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책을 보러 도서관에 자주 가기도 했죠. 고우영 화백은 돌아가신 후에도 회자되고 박물관에서 작품이 전시되잖아요. 저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람의 이름이 기억되면 영원히 기억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작품으로 평생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대 작가는 래퍼 비와이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래퍼 비와이를 좋아해요. 비와이가 랩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보이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비와이처럼 제 신념을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