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수십 년간 상권을 지켜온 ‘오랜 점포’들이 있다. 다른 나라들이 100년 이상에 걸쳐 이룬 근대화 과정을 불과 수십 년 만에 일궈낸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가게를 찾는 건 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회에 걸쳐 전국에 있는 ‘백년가게’ 81곳을 선정했다. 30년 이상 대를 이어올 만큼 가치 있는 가게 가운데 성장 잠재력이 있는 업체를 심사해 1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아울러 소상공인의 롤모델로 선정해 이들의 경영 노하우를 일반 소상공인에게 확산해간다는 취지도 포함됐다. 선정된 업체는 음식업 59개, 도·소매업 22개 등이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업체 중 서울 노원구에 있는 ‘장군식당’과 부산 동래구에 있는 ‘동래할매파전’ 두 곳의 대표를 각각 인터뷰했다.
강민진 기자
▶장군식당 이상호 대표 | 강민진 기자
31년 족발집 장군식당 이상호 대표
“내 인생 보증서…직원도 다 같이 잘 살게”
‘장군식당’은 노원구 영업허가 1호점으로 1988년 개업해 31년째 성업 중인 족발집이다. 지난 1월 16일 오후 찾아간 가게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족발 삶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가게 곳곳 백년가게 선정을 알리는 현판과 함께 환한 표정의 장군식당 이상호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게를 잠시 둘러본 후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이후 좋은 점이 있나?” 그러자 예상치 못한 이 대표의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운이 넘친다. 즐겁게 일하는 것 같다.
“손님이 늘면서 자리가 모자라 얼마 전 전통시장에 가서 테이블을 추가로 구매했다. 직원도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3명이나 새로 고용했다. 배달도 직접 다녔는데 이제는 일손이 모자라 배달 대행을 쓰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경기침체로 어려운 시기에 우리 가게로 인해 작게나마 고용 창출 등에 보탬이 된 거지 않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백년가게는 어떻게 신청하게 되었나.
“처음엔 신문을 보고 알았다. 과밀 업종으로 분류되는 도소매·음식업에서 30년 이상 사업을 유지하며 전문성, 제품·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 이상의 혁신성을 가진 업체를 선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신용보증재단 등과 연계해 컨설팅·금융 지원 등 다양한 정책 지원이 제공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급전이 많이 필요한 자영업자들에게 이런 혜택은 매우 유용하다. 실제 신용보증재단중앙회의 소상공인 금리우대 자금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주변 자영업자들에게도 적극 추천해왔다. 아울러 백년가게 선정 시 다른 소상공인에게 성공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걸 보고, 젊은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우리 다 같이 잘 살자’라는 말을 가게 직원들에게 한다. 이런 생각으로 소상공인들이 나라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은 지원받고, 더불어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
-백년가게 선정의 효과는?
“지난해 9월 2차 백년가게로 뽑혔다. 4개월쯤 지났는데 눈에 띄는 매출 변화는 없다. 그냥 나 혼자만 뿌듯한 거다. 그런데 내가 신나니까 메뉴 개발 연구며 서비스며 이전보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열심히 한다. 어떻게 하면 손님이 최상의 상태로 더 맛있게 족발을 맛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인 거다. 손님들도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백년가게에 선정됐다는 내용의 전단을 만들어 배달이나 포장주문 때 함께 넣는다. 백년가게 선정은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보증서 같은 느낌이다.”
매출 상승효과는 없다면서도 이상호 대표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백년가게’ 글씨를 새겨 손수 제작했다는 티셔츠며 홍보용 전단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면서 백년가게 선정은 이 대표의 자부심이자 무게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백년가게 선정 이후 가게는 정신없이 바빠졌다고 한다.
-‘다 같이 잘 살자’라는 말이 인상 깊다.
“내 경우 사회생활의 첫 시작을 장사로 한 건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해기사 2급 면허를 따 외항 상선을 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항에서 배에 올라타려는데 아내가 가지 말라고 펑펑 울더라. 배를 한 번 타면 1년가량 나가 있으니 보고 싶었던 거다. 그길로 배에서 내렸다. 그런데 막상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도 있고. 그래서 의자 하나 겨우 들어갈 공간에서 토큰을 팔았다. 당시 옆 가게가 족발집이었는데 족발 삶는 방법 좀 알려달라고 무작정 매달렸다. 그렇게 1년을 배워 가게를 차렸다.
30년 전에는 여기가 허허벌판이었다. 역 바로 앞에 건물 하나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 건물에 세 들어 첫 장사를 시작했다. 눈만 뜨면 가게로 나와 쉬지 않고 일만 했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차리고 보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너무 많더라. 그 가운데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힘들더라.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10년 동안 월세도 단 한 번 밀리지 않았다. 그러다 차츰 자리를 잡고 상권이 활발해지자 건물주가 갑자기 나가라고 통보했다. 하루아침에 권리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그길로 쫓겨나 지금 가게 자리로 옮기게 됐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또 여러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다 보니 손님으로부터 겪는 힘든 일도 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거의 다 먹은 족발을 내게 억지로 먹어보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함부로 대하는 손님도 예전에는 종종 있었다. 그런 일을 겪은 날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일하면서 상처받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최대한 신뢰하고 존중하려 한다. 아무쪼록 자영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이 대표는 백년가게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같은 처지의 자영업자와 가게 직원 등 사람 얘기만 늘어놨다.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혹시나 사고는 나지 않을까 포장 음식을 건네면서도 걱정뿐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혹여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상호 대표의 음식에 대한 고집과 자부심, 그리고 오랜 세월 한결같이 지켜온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백년가게를 이끌어가는 힘처럼 보였다.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 | 동래할매파전
44년 파전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
“4대째 단순 음식 넘어 역사와 문화 이어”
부산 지역 전통 향토 음식이었던 동래파전은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해 11월 3차 백년가게로 선정된 동래할매파전은 서민 음식인 ‘파전’을 ‘동래부사가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이야기로 4대째 지속한 명품 파전집이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가게를 책임지고 있는 김정희 대표와 지난 1월 17일 오전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가 깊어 보인다.
“시증조할머니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동래장터에서 파전을 구워 파시던 게 동래파전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가게도 없이 시장 한 모퉁이에서 장사하셨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에 시할머니가 제일식당이라는 상호로 이어받았고, 1975년 시어머니가 지금의 동래할매파전으로 허가를 받았다.”
-특별히 백년가게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동래파전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그런 점에서 책임감과 동시에 자부심을 느낀다. 단골손님들도 이런 내 마음가짐을 알고 있다. 찾아주신 손님 여러 사람이 백년가게 신청을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백년가게 취지가 너무 좋았다. 4대를 거쳐 내려온 집안의 가업인데 전문성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년가게에 선정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제 어머니께서 늘 하신 말씀이 ‘그 어떤 기교도 신선한 원재료를 이겨내지 못한다’다. 음식의 주재료인 파는 채가 짧고 흰 부분, 푸른 부분이 선명한 조선 쪽파 속대만 사용해 계절마다 다른 맛과 향을 낸다. 여기에 싱싱한 각종 해산물, 곡물류와 따로 만든 육수를 섞어 채종유에 부쳐낸다. 이렇게 만든 파전을 간장이 아닌 초고추장을 곁들여서 낸다. 담백하면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동래파전만의 특징이다. 이런 특유의 맛을 엄격하게 지켜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기에 서민 전통 요리 하면 떠올리기 쉬운 푸짐하고 저렴하기만 한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한 점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가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가업이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대대로 찾아준 고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엄마 손잡고 파전 먹으러 오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아이들 손을 잡고 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감사함과 더불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백년가게 선정 이후 달라진 점은?
“20% 정도의 매출 상승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요즘 젊은 세대는 SNS나 인터넷 기사를 많이 찾아보고 방문한다. 백년가게 선정 이후 단골손님 이외에 젊은 층의 손님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백년가게 신청을 잘했다 싶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정희 대표는 “동래파전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백년가게 선정은 4대째 내려온 소중한 가업을 잘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라는 역할의 의미도 포함하는 것이라 느낀다”고 밝혔다.
거점 상권 30곳 집중 육성 등 자영업 성장·혁신 추가 대책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백년가게 육성사업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선정 기준은 30년 이상 사업을 유지한 신청 업체 가운데 서류 및 현장평가와 식품위생 관련 행정처분 여부, 평판도 등을 심사한다. 평가를 거쳐 백년가게로 선정된 업체에 대해서는 인증 현판과 홍보 기회 등을 지원한다. 또 지역 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 비율(100%) 및 보증료율(0.8% 고정) 우대 혜택과 소상공인일 경우 자금을 빌릴 때 금리우대(0.4%포인트 우대) 등 다양한 혜택도 제공한다. 백년가게 육성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업체는 연중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본부와 전국 60개 소상공인 지원센터, 온라인(100year@semas.or.kr)으로 신청하면 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누리집(www.semas.or.kr)과 통합콜센터(1357)를 통해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정부는 백년가게 육성사업에 이어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자영업자 성장·혁신 종합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자영업자가 잘사는 나라’를 위한 중장기 정책으로 △자영업·소상공인 전용 상품권 18조 원 발행 △전국 구도심 상권 30곳 혁신 거점 집중 육성 △전통시장 주차장 보급률 100% 및 주요 상권 내 공영주차장 설치 확대 △0%대 수수료율 실현을 위한 제로페이 시행 및 국민포인트제 도입 추진 △상가임대차 보호범위 확대를 위한 환산보증금 단계적 폐지 △부실채권 0.9조 원 조기 정리(지역신보) 및 소상공인지원센터(60곳) 폐업 지원기능 강화 △1인 자영업자 사회보험 획기적 개선 추진 △소상공인·자영업 기본법 제정, 자영업 전문 부설 정책연구소 신설 등 8가지 핵심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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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