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것입니다. <공감>은 설을 맞아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라이팅 픽션 | 문학
재닛 버로웨이 지음 | 문지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분들로부터 글쓰기 교재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꼭 한 권을 콕 집어 추천하기 어려워 망설이곤 했다. 이 세상엔 좋은 글쓰기 책이 너무 많으니까, 한 권을 고르기는 어려웠다. <라이팅 픽션>을 읽으며, ‘이제는 이 책부터 추천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매우 훌륭한 글쓰기 책이 많지만, 이 책에는 아주 실질적이고, 즉각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생생한 조언이 가득하다. 아무리 훌륭한 글쓰기 조언을 열심히 읽어도, 막상 컴퓨터 자판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오늘부터 당장 쓸 수 있는 글쓰기에 집중하자’라며 동기부여가 된다. <라이팅 픽션>은 소설뿐 아니라 짧은 에세이, 일상적인 글쓰기를 제대로 해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다정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정여울 위원 (『나를 돌아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동백어 필 무렵 | 인문예술
명로진 지음 | 들녘
대한민국은 드라마 천국이다. 서구에서 TV 드라마를 소프 오페라(soap opera)라고 부르는 건 저녁 설거지 후 시청한다는 뜻도 있지만, 대개는 비누처럼 사라질 뿐 보고 나면 그다지 남는 게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창’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어떤 것을 소비하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헤르더의 말처럼 ‘시대의 딸’이다. 대표 드라마 25편을 가려 뽑아 그 ‘언어’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작가이며 배우인 명로진 특유의 날카로운 눈과 경쾌한 언어감각으로 그것들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해석한다. 그래서 ‘소프 오페라’가 ‘소울 드라마’로 진화하는 것을 우리는 추억과 더불어 경험하게 된다. 드라마를 소환하여 세상과 삶을 펼쳐내는 작업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그 지점에 이 책이 있다.
김경집 위원(인문학자)
우리를 지키는 법 | 사회과학
노윤호 지음 | 카멜북스
‘n번방 사건’처럼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폭력은 유형과 수법, 심지어는 가해자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그 피해는 당사자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에 이르며, 날로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닥칠지 모르는 폭력의 불확실성하에서 사회의 구조적·제도적 대응만을 논하는 것은 확률 높은 답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피해의 가능성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 책은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에 대해 아동과 청소년, 명목상이 아닌 진정한 보호자가 되고 싶은 어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도의 법 지식을 쉽게 다루고 있다. 책이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함을 새삼 생각해본다.
이준호 위원(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역사 속의 색채 | 자연과학
김관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면서 과학을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우리가 색을 볼 수 있기에 아름답게 보이고 또 색으로 표현되었기에 아름답다. 호모사피엔스인 우리는 감사하게도 색을 볼 수 있다. 인류는 오랜 시간 색채와 함께해왔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이를 동굴벽화로 남겼고, 고대 이집트인은 그들만의 신성한 청색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화학이 꽃을 피우던 시기에 이르러 다양한 색채의 안료는 근대 인상파의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켰고, 염료는 산업의 한 축을 맡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는 유기화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가 어떻게 인류의 역사에서 예술작품 속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색을 내는 화학 성분들은 무엇인지 설명했다. 과학자가 쓴 책답게 문체는 간결하고 늘 핵심만을 이야기한다.
송기원 위원(연세대 생명과학부 교수)
질문하는 독서의 힘 | 실용일반
김민영 지음 | 북바이북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매번 새해 계획에 올라 있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독서. 연초면 으레 잡히던 신년회가 사라진 자리에 독서 시간을 넣으면 어떨까. <질문하는 독서의 힘>은 책을 읽을 때, 질문을 하자고 제안한다. 더 집중이 잘 되는 것은 물론, 나와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사회를 보는 시각도 다양해진다.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함께 읽기’ 경향을 반영해 독서모임 회원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논제 만들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담겼다. 책은 발췌문을 어떻게 뽑으며 논제문은 어떻게 쓰는지를 실제 책의 발췌문·논제문을 예로 들면서 생생하게 알려준다. 이제 논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할 차례다. 토론의 기본은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반응해주는 경청이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으로 독서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함께 ‘집콕’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회원들의 말을 경청하자.
송현경 위원(내일신문 기자)
엄마소리가 말했어 | 그림책, 동화
오승한 지음 | 바람의아이들
우리는 흔히 언어는 생각이나 감정에서 나온다고 여기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언어가 우리 생각이나 감정을 만들어내고, 더 크게 부풀리고, 더 작게 찌그러뜨릴 수 있다. 언어를 단순한 전달 도구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산 기제로 간주할 때 우리는 자신을 더 정교하고 깊이 있게 다듬을 수 있다. <엄마소리가 말했어>는 그런 명제를 적극 실천하는 책이다. 부드러운 손바느질 인형으로 아기 닿소리들을 품에 안고 있는 엄마를 보여주는 표지에서부터 글자들은 생생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가난, 변덕 같은 부정적 말이 싫은 기역이나 비읍이에게 ‘같이’와 ‘반짝임’을 알려주며 달래고, 끝말잇기에서 늘 진다며 투덜대는 리을이에게는 네가 있어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토닥이는 엄마소리. 이런 폭넓고 긍정적인 언어 운용은 독자에게 자신만의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다.
김서정 위원(동화작가)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 | 청소년
김혜진 지음 | 서유재
그림에 구상화와 추상화가 있듯 이야기에도 줄거리가 선명한 것과 흐릿한 것이 있다. 선이 굵어야 이야기답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런 이야기도 인물의 행위 동기나 사건의 인과관계는 한 가지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사물은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으므로, 반대로 줄거리선을 지우고 인과관계에 빈틈을 만들어놓은 이야기가 사실적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근대화는 바로 그런 경향이 확산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소설, 특히 청소년소설에 대한 고정관념 가운데 하나는, ‘전개가 분명하며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전근대적인 생각을 거부한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집으로 가는 길을 계속 바꾸고 다시 찾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언니의 병명은 아예 밝혀지지 않으며 상상에 맡긴다. 사춘기에 ‘집으로 가는 길을 일부러 잃은’ 적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관습을 혁신한 ‘모던한’ 청소년소설이다.
최시한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