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니 추운 계절 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닫는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선 숲의 존재다. 사계가 요란하게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숲은 늘 무심히 넉넉한 품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숲이라는 품이 감춘 무기는 나무다. 사람이 내뿜은 독을 거두고 치유를 담은 피톤치드를 내뿜는 나무의 무리.
이쯤이면 휴양림으로 향하는 이유로 충분하겠다. 충남 예산 봉수산자연휴양림은 배산임수의 절묘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휴양림 앞을 지키고 앉은 예당저수지는 봉수산을 비롯해 중부지역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인공의 보고(寶庫)다. 또한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은 봉수산은 휴양림을 감싸며 든든한 병풍 구실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저수지와 백제 유민의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은 산이니 근사한 휴양림 한 곳 들어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입지 조건으로 치자면 세상에서 생채기 난 몸과 마음 보듬을 곳으로 이만 한 데가 없겠다. 게다가 휴양림 이웃에는 '느림'을 철학으로 삼은 슬로시티와 일 년 내내 다종다양한 식물군을 관람할 수 있는 수목원까지 함께 자리했다. 출발도 하기 전부터 만족스러울 1박의 여정이 짧게 느껴지면서 마무리될 것이 쉽게 예상된다.
▶ 봉수산자연휴양림은 가족, 연인과 함께 머물며 피톤치드 향기를 느끼기에 좋은 장소다.
예당저수지 옆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대흥면 상중리 방향으로 차를 돌리면 봉수산자연휴양림으로 오르는 길이다. 차 없이 오르기엔 부담스러운 가파른 경사가 이어지더니 이내 휴양림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봉수산 자락에 들어선 이 휴양림은 천혜의 자연 숲과 인공의 숲이 조화롭게 경관을 이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봉수산 자락의 빼어난 경관
사람들 발길 이어지는 곳
많은 이들이 봉수산자연휴양림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울창한 숲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피톤치드' 때문이다. 식물이 병충해에 저항하기 위해 내뿜는 이 물질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와 살균작용, 심폐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를 준다. 무성한 숲에 들어가 오묘한 나무 향을 맡으며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피톤치드의 세례를 제대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피톤치드 피톤치드](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3/25/20160325121314665_WRE0MTV6.jpg)
▶ 울창한 숲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해소와 살균작용, 심폐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를 준다.
단지 천천히 걷고 숨 쉬는 정도의 노력만으로 건강이 회복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피톤치드 가득한 휴양림이 인기 높은 이유를 알겠다. 그러니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만은 조급한 마음일랑은 접고 나무와의 스킨십을 적극 시도해보자.
산책길에서 만나는 밑동 굵은 소나무 한 그루를 조심스럽게 만지고, 쓰다듬고, 실컷 향을 느껴볼 일이다. 그러다 문득 나무가 지금의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면 주위 시선 신경 쓰지 말고 한 아름 안아보는 것도 좋겠다. 말 한마디 못하는 식물임에도 내게는 고마운 존재가 되고도 남는 순간일 테다.
봉수산수목원은 휴양림 산책길에 만나는 또 다른 재미다. 휴양림 옆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조성한 데크를 걷다 보면 나온다. 2015년 5월에 개원한 이곳은 전시온실과 방문자센터, 너와집(휴식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온실 전시온실](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3/25/20160325121448880_6BXP59HZ.jpg)
▶ 봉수산수목원의 전시온실은 온갖 식물의 향기가 차고 넘친다.
테마별 야외식물원에서는 1450종 넘는 식물자원을 관찰할 수 있고 전시온실 안으로 입장하면 각종 수상식물 관람도 가능하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봉수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도 좋다. 산 정상 부근에 남은 임존성 주변 등산로는 1~3시간 걸리는 완만한 경사 덕분에 초보 등산객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면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예당저수지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해보자. 분명 강원도 바다 앞도 아닌 내륙의 여행지를 선택해 방문했건만 동해에 뒤지지 않는 해 뜨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저수지 뒤 곡선을 이룬 산등성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과연 거짓말처럼 해가 고개를 내민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두둑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날씨가 심술을 부려 일출을 가렸다 해도 너무 아쉬워 말자. 예당저수지 쪽으로 피어오르는 진한 물안개 풍경만으로도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당저수지 예당저수지](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3/25/20160325121516433_D4AJG89L.jpg)
▶ 예당저수지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롭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예당저수지의 일출은 보너스
대흥마을 또한 봉수산자연휴양림을 방문한 이가 꼭 가볼 만한 장소다. 대흥마을에서는 '빨리빨리' 같은 단어는 마음에서 지워야 한다. 이곳은 느리게 살고자 작정한 이들이 모인 마을이기 때문이다. 대흥마을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섯 번째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생태계에 안식처를 제공하는 예당저수지와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존성이 자리한 봉수산 덕분에 슬로시티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지역 공동체와 전통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마을의 분위기도 슬로시티 지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년 짧아지는 봄의 자락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면 피톤치드 울타리가 쳐진 봉수산자연휴양림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아름다운 슬로시티와 수목원도 부록처럼 딸린 여행길에서 행복한 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사진 이시우 (여행작가)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