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옷 한복이 언제부터인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옷임에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왜 입어야 하는지 그 의미가 잊힌 지 오래다.
다행히 최근 들어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더욱이 반가운 것은 그 기류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불편하다고 벗어버린 바로 그 한복을 입고 경복궁으로, 창덕궁으로, 전주로 가 '인증 사진'을 찍으며 한복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다.
또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소통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한복 입고 세계여행'을 실행할 뿐 아니라 버킷 리스트에 올리는 걸 보면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과연 한복의 어떤 매력이 요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예쁘기 때문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또 남들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복을 입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복이 예쁜 옷이 된 건가. 그건 아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이미 개항기(강화도조약 이후 봉건적인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가던 시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도 간파한 사실이다.
▷ 지난해 7월 20일 서울 청계천에서 회원 수 12만 명을 보유한 다음 카페 ‘독하고 도도한 여성들’(cafe.daum.net/zzzzzzaaaasasa) 회원들이 ‘한복의 상용화’를 위해 뭉쳤다. 한복의 소중함을 알리고 ‘한복은 불편하다’는 인식을 개선하고자 시민 참여 행사와 걷기를 진행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쓴 영국의 여행가이자 탐험가 새비지 랜도어는 "고대 로마의 조각에 나타난 아름다움을 볼 만큼 보았지만 한국 여성의 복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 아름다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비너스가 누구인가, 미(美)의 아이콘 아닌가. 그런 비너스의 곡선미조차 한복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만하면 한복이 아름답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복의 아름다움
개항기 시대 외국인들도 인정
그뿐만이 아니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온 문화예술가 모리스 쿠랑과 샤를르 바라는 한복 중에서도 모자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며 "한국은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모자를 지니고 있는 모자 발명국"이라고 했다.
심지어 "한국의 모자가 프랑스인들의 신상품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조선풍물지>를 쓴 영국 외교관 윌리엄 칼스 역시 "한국에서 가장 가져가고 싶은 것은 조바위"라고 했으니 이쯤 되면 한복이 갑자기 예쁜 옷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복색은 어떠한가. 음양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복색은 붉은색, 흰색, 푸른색, 노란색, 검정색의 오방색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간색(오방색 중 두 가지 이상을 섞은 색)은 은근하면서도 우아한 복색을 결정짓는다. 한국인의 상징과도 같은 흰옷과 어우러진 색동이 외국인들의 눈을 휘어잡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샤넬 2015 크루즈 쇼에 선보인 ‘한국의 전통 조각보와 색동을 떠올리게 하는 패치워크 드레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을 쓴 조르주 뒤크로는 "한국인이 즐겨 입는 흰색은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떠올리게 하는 색상으로 여기에서 창의적 정서가 생성돼 조선인들의 심성이 어린아이와 같이 밝고 깨끗하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창의성이 바로 한국인의 복색인 흰색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으니 이는 우리도 몰랐던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화가 드 라네지에르도 흰색을 '한국의 색'으로 인정했다. 우리의 흰색에 대해 "백옥같이 밝은 흰색에서 거칠고 투박한 흰색까지 마치 음색의 향연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 세계정세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한국인들은 영원토록 백색왕국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술가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흰색은 단순한 흰색을 넘어선 것이다.
샤넬 2015 크루즈 콜렉션
한복의 흰색, 색동 등에 주목
물론 흰색 옷과 대비되는 여러 색깔의 색동과 허리띠, 고름, 주머니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는데, 그 덕에 한복은 그 자체로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을 쓴 퍼시벌 로웰은 "화려한 색의 술(띠, 끈, 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이 없었다면 한복 바지는 한쪽 통으로 사람의 몸 전체가 들어갈 정도의 길고 넓은 밋밋한 통바지가 돼버렸을 것"이라면서 "바지를 입고 발목에 밝은 색깔의 대님을 치지 않았다면 바지 부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바지선의 참맛을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바지를 묶기 위해 사용한 끈, 술, 대님 등의 실용적인 목적에 주목한 것으로, 이런 것들이 옷의 맵시를 살린다는 점을 간파한 셈이다.
이처럼 한복에 대한 예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인임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많을수록 한국,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높아지고, 우리의 자긍심도 같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복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최근 발표된 '전통 문화산업 육성 진흥방안 연구'에서도 진가가 드러났다. 산업계에서는 전통 의류의 산업화 정도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선도 산업화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천연섬유(26.0%)와 한복(8.2%)이 각각 1위와 3위로 꼽힐 정도다.
▷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에 실려 있는 ‘Two Korean Children(두 명의 한국 아이들)’.
이를 뒷받침하듯이 지난 5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2015/16 샤넬 크루즈 콜렉션(Chanel Cruise Collection)'을 서울에서 열었다. 그 역시 한복의 아름다움을 흰색과 어우러진 색동에서 찾았으며, 조각보와 나전 등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공예 기법에 주목했다.
이미 140여 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외국인들의 눈에 아름답게 비쳐졌던 바로 그 한복이다. 이제 우리는 한복이 한국인의 옷, 한국인만 입는 옷이 아니라 한국인이 만들고 세계인이 좋아하며 세계인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이 되도록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한복 짓는 아가씨 - 황이슬
황이슬(28) 씨는 만화에서 영감을 얻어 한복 디자이너가 됐다. 한복에 실용성과 모던함을 담아내는 그녀의 일상은 <위클리공감> 누리집(www.korea.kr/gonggam) '공감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 한국복식사 전공)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