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
새로운 일상 맞이하는 시민들 목소리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뒤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마주했을까? 자정을 넘겨 회식 자리가 이어지고 ‘치맥(치킨+맥주)’과 팝콘을 먹으며 스포츠·영화 관람을 하고 결혼식장의 풍경도 예전을 닮아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식당과 카페 등 생업시설에 적용되던 운영시간 제한 조치가 전면 해제된 것이다. 즉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고 입을 모았다. 다시 일상을 되찾은 지 보름, 사회 각계각층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은 어떻게 일상회복 시대를 맞고 있는지 의견을 들어봤다.
# 사례 1_ 온전한 축제의 모습으로 돌아온 전주국제영화제
“여러분,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장현성 배우의 인사말에 3년 만에 세워진 전주돔에 환호가 터졌다. 30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여전히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한 칸 띄어 앉기는 없었다. 4월 28일 개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제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개막 당일 역시 3년 만에 대면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고 이벤트와 공연 등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3년 만에 전주를 찾았다는 정희연(30) 씨는 들떠 있었다. 정 씨는 “정상화된 영화제의 축제 열기를 마음껏 즐겼다”고 말했다. 영화를 관람한 뒤 감독·배우와 직접 소통하고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고 기념품도 사고 거리공연(버스킹)으로 음악까지 즐겼고 주말을 껴서 3박 4일 휴가를 내고 혼자 방문한 정 씨는 휴대전화로 매 순간을 기록했단다.
“예전엔 당연하던 풍경이었는데 3년 만에 접하니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거리두기 제한이 해제된 게 실감이 나네요.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 같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전북 전주시 전주돔 주변이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 씨네21 오계옥
# 사례 2_ 식당, 술집 매출 회복세 뚜렷
4월 27일(수) 오후 7시. 서울 서대문역 인근 직장인 사이에서 회식 장소로 유명한 중식당을 예약 없이 방문했다. 열 개가 넘는 방을 갖춘 제법 큰 규모의 식당이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근 2년 만이지? 오랜만에 한잔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40대 남자 둘은 한때 같이 일한 동료라고 소개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이직해 한동안 통 얼굴을 못 봤다고 한다.
다른 좌석에서 만난 직장인 박 씨는 “오늘이 두 번째 회식”이라며 “지난주에는 가볍게 팀 회식을, 지금은 부서 전체 회식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오늘은 2차, 3차까지 간다”라며 모처럼의 회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식당 종업원은 “거리두기 해제 이후로 저녁 단체 예약이 크게 늘었다”며 매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4월의 마지막 불금(불타는 금요일), 서울 신촌에서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하는 오기봉 씨에게 봄날은 천천히 오고 있었다.
“우리 집은 2차로 오는 술집이에요. 코로나19 타격이 아주 컸죠. 오후 6시에 문을 열어 새벽 1~2시까지 영업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오후 9시, 10시로 영업시간을 제한받았으니까요. 매출이 곤두박질칠 수밖에요.”
시간제한이 풀리면서 오 씨의 가게 문이 예전처럼 새벽 1시까지 열렸다. 뜸했던 단골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매출은 확연한 회복세를 띠었다. 그러나 오 씨는 “지난 2년 동안의 습관 탓인지 밤 12시가 되면 사람들이 쑥 빠져나간다”며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옛날처럼 밤 문화가 이어질지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속대로 정부에서 손실에 따른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5월 1일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 파주점은 그동안 ‘집콕’ 쇼핑의 답답함을 벗어나려는 방문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 심은하
# 사례 3_ 심야 영업하는 택시기사
“택시 운전업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근래 택시 기사 한태평(50) 씨는 일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뒤로 매출이 올라가면서 느끼는 활력이다.
한 씨가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코로나19 직격탄으로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선택한 직업이다. 그런데 기대보다 낮은 운행 수입에 꽤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요즘 택시 잡기 많이 힘드시죠?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야간 시간대 영업이 힘들어지면서 기사들의 상당수가 택시업계를 떠났어요. 그만두거나 돈이 되는 택배나 배달 쪽으로 생계 노선을 바꾼 것이죠.”
한 씨의 말처럼 지난 2년간 많은 택시 기사가 택시업계를 떠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택시운송업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2020년 3월부터 2022년 1월까지 꾸준히 감소했다.
깊은 ‘코로나 시름’에 허덕이던 택시업계에도 일상회복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요즘 한 씨는 매일 새벽까지 운전대를 잡는다. 주말에는 새벽 4시까지도 일한다. 심야 택시대란 해소를 위해 서울시가 개인택시 3부제를 일시적으로 해제했기 때문이다. 개인택시는 운전자의 과로 방지, 차량 정비, 수요 공급 조절을 위해 3부제(가·나·다)로 운영 중이다. 이틀 운행 뒤 하루를 쉬는 방식이다. 3부제가 해제되는 기간엔 휴무 중인 택시도 심야 시간에 택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택시업을 시작한 한 씨는 최근 되살아난 심야 영업을 체감하며 택시 기사의 일상을 맛보고 있다. 한 씨가 목격한 새벽의 진풍경에서도 일상회복의 기운이 감지된다.
“4월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새벽 4시까지 일했어요. 홍대 쪽에서 마지막 손님을 태웠는데 길거리에 100여 명이 꽃샘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벚꽃 문화제 등 대면 행사가 진행되며 서서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경희대학교 캠퍼스 | 경희대학교
# 사례 4_ 우리 수학여행·모꼬지 떠나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오준용 군에게 2022년 4월은 특별하다.
“‘코시국’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벌써 중2가 됐어요. 며칠 전에 중간고사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자유도 만끽했고요.”
4월 27일 시험을 마치고 오 군과 친구들이 찾아간 ‘해방타운’은 영화관이었다. 우르르 몰려가 본 영화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이들은 팝콘과 콜라를 사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먹어도 되나 망설였는데 둘러보니 형과 누나들이 사 먹더라고요. 용기 내어 매점에 가서 물어봤더니 4월 25일부터 극장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허용됐다고 하더라고요.”
오 군은 “친구들과 팝콘을 먹으며 영화 관람을 한 것이 다시 생각해도 신났다”며 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박준서 군은 가을 수학여행 소식에 들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2년간 사라졌던 수학여행 부활을 학교에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고교 시절 추억이 하나도 없어요. 친구들과도 아직 서먹하고요. 수학여행 가서 뭐하고 놀지 생각만 해도 벌써 즐거워요.”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2년 4월 서울시 학교를 조사한 결과 278개 학교가 수련 활동을, 306개 학교가 수학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학교의 43%에 달한다.
대학의 일상회복 속도는 더욱 빠르다. 대학가는 2~3년 만에 전면 대면 축제 재개에 나서는 분위기다. 서울대는 5월 10∼12일 버들골 풍산마당에서 ‘SNU 페스티벌’을 열고 심야 캠핑과 방 탈출 게임, 장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에는 봄과 가을 모두 축제가 열리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비대면과 대면 혼합으로 진행됐다. 전면 대면 축제는 3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2년 동안 축제를 열지 않았던 한양대와 중앙대도 전면 대면 축제를 연다. 한양대는 5월 25∼27일 사흘간 대동제 ‘라치오스(RACHIOS)’를 열기로 했다. 중앙대는 5월 23∼27일 닷새간 ‘봄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거리공연(버스킹)과 푸드트럭, 벼룩시장 같은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건국대는 5월 25∼27일을 ‘일상회복맞이 주간’으로 정했다.
서울대 4학년생 이재인 씨는 “해외 교환학생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동기들과 푸드 트럭을 털고 싶다”고 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중앙대 2학년생 오지영 씨는 “신입생 때 느꼈어야 할 설렘을 이제야 느끼는 것 같다”며 “동아리나 학회에서 엠티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3학년생 심제희 씨는 “아직 축제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5월부터 전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다”는 학교 지침을 전했다. 그러면서 심 씨는 “이번 여름방학에는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일상회복의 바람을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인원 제한이 풀린 결혼식장이 하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 한겨레
# 사례 5_ 결혼식 준비하는 예비 신랑
“7월에 결혼합니다.” 예비 신랑 김용운(30) 씨의 목소리가 명쾌하다.
김 씨는 거리두기 전면 해제가 누구보다 기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청첩장 보내기가 내심 눈치 보였다. 또 코로나19 진단으로 격리돼 결혼식이 연기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참석 인원 제한이 해제되기 전에 결혼식장을 잡아 하객을 더 초대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게 된 기쁨을 전했다.
김 씨 예비부부는 요즘 몸이 바쁘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 결혼 소식을 정식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에게 전화로 결혼 소식을 전했어요. 그게 마음에 늘 걸렸죠. 최대한 시간을 내어 직접 만나 인사드리려고 합니다. 얼굴을 보며 축복을 받으니까 결혼하는 게 더 실감 나고 좋아요.”
예비 신랑은 작은 소망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게 마스크도 벗게 된다면 더욱 바랄 게 없어요.”
심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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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