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2일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국민적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지위 격상은 급성장한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와 외교 등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위 변경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선진국 지위 격상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리더십의 정립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할과 책임도 그만큼 커지게 됐다. 개도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협력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도 더 많이 요구받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유무형적 혜택과 권리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적으로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국민들의 삶의 질이 경제·사회적으로 두루 향상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바야흐로 선진국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 그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 정립과 국제적 책임 및 역할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선진국 지위 격상이 갖는 의미
스위스 제네바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라는 유엔기구가 있다.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와 무역을 통한 개발을 증진하기 위해 1964년 설립된 기구다.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세계무역 관련 양대 국제기구다. 우리나라는 UNCTAD 설립 당시부터 참여해 무역을 통한 성장과정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다. 지금은 지원을 제공하는 위치에서 이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7월 2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UNCTAD 무역개발이사회 폐막 세션에서 우리나라의 소속그룹을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이 회원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과거 그룹 변경 과정에서 회원국의 이의 제기로 무산된 사례가 있어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그룹 변경이 확정됐다.
이는 UNCTAD 설립 이래 57년 만에 여타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 B로 이동한 최초 사례다.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가 우리나라의 선진국 위상을 인정한 것이다. 아태지역권 조정국으로 활동 중인 하슈미 주제네바 파키스탄 대사는 회의 석상에서 우리나라가 다양한 그룹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발언했다. 또한,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의 그룹 B 이동을 환영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가교 역할
우리나라는 1964년 UNCTAD 설립 이래 그룹 A에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세계 10위 경제규모,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과 현실에 부합하는 역할 확대를 위해 UNCTAD 소속 그룹 변경을 추진했다. 외교부는 주제네바대표부, 관계 정부부처, 그리고 UNCTAD 회원국 및 사무국과 사전 조율 하에 이를 추진했다.
우리나라가 UNCTAD에 가입했던 1964년 이후 우리의 위상은 지난 57년간 어떻게 바뀌었을까? UNCTAD 가입 당시 우리의 무역액은 5억달러였으나 2020년에는 9756억 달러에 달해 약 1880배가 증가했다, 수출액 규모는 4465배 증가했다. 최빈국으로 해외원조를 받다가 원조 공여국이 된 성공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중 15위 규모의 개발원조를 제공하는 나라가 됐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우리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국가들을 도와주고 있다. 개도국에 코로나19 확산 초기 진단도구(키트)를 지원하고 2022년까지 2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할 것이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이미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유사입장국으로 활동하고 국제현안 해결에 기여했다. UNCTAD 내 소속그룹 변경을 통해 선진국으로 우리 위상을 공개적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개도국 입장을 경험하고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우리나라는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가교 역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나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선진국 지위 격상으로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부과되는 의무나 부담은 없다. 하지만 UNCTAD를 포함한 국제무대가 대한민국에 요구하는 책임과 역할은 날로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국제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
우리 국민과 기업에도 혜택 돌아오게
또한 국제사회의 규범 형성이나 국제현안 해결에 있어서도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행동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선도적 역할을 위해 세계 10위 경제규모, 한류를 중심으로 한 문화강국, 혁신과 디지털 강국 등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을 통해 국제사회가 처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우리 국민과 기업에도 혜택이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선진국의 위상이 공고화된 대한민국의 외교는 그 시각을 한반도, 동북아에 머물지 말고 세계로 확장해야 한다. 세계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모습의 선진국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태영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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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