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를 논하려면 결혼부터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시기를 짚어봐야 한다. 시기별 대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출산 극복에 일조하고 있는 4인을 만났다. ‘결혼’ 시기에는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에게, ‘임신’ 시기에는 난임 해결을 위해 뛰는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에게 제언을 구했다. ‘출산’ 시기에는 7남매를 출산한 신재섭·이혜은 부부에게, ‘육아’ 시기에는 ‘공동육아’가 답이라는 이수미 공동육아나눔터 팀장에게서 해답을 찾아봤다.
‘작은결혼식’ 올리는 사람들
“300만 원 든 간소한 결혼식… 거품 뺀 웨딩, 출산 장려 첫걸음”
![작은결혼식 작은결혼식](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6/05/20170605010925813_EADLUJ1R.jpg)
ⓒ여성가족부 작은결혼정보센터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 20~30대 미혼남녀는 왜 결혼을 미루는 걸까. 이유는 ‘소득이 적어서’다. 지난 3월 18일 육아정책연구소가 결혼할 의사가 있는 만 20∼39세 미혼남녀 799명에게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1∼3순위 복수응답을 모두 합산해 가장 많이 꼽은 항목은 ‘소득이 적어서’(48.5%)였다.
거품 뺀 ‘작은결혼식’이 저출산 극복의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는 이유다. 실제로 작은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찍어낸 듯 똑같은 결혼식은 원치 않았고, 간소화된 절차로 비용을 절약해 신혼을 알차게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부산에서 소방관으로 재직 중인 A씨 부부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부산시의 ‘부산드림(Dream)결혼식’ 사업의 첫 수혜자다. 부산드림 결혼식은 심각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시민 인식 개선과 결혼·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사업이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은 하객 음식을 제외한 웨딩 플래너, 예식 장소 및 현장 조성, 예복, 헤어 등 모든 결혼식에 관련된 인적 지원과 물품 지원을 받았다. A 씨 부부는 지난 5월 13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식 장소로 수영구의 F1963(구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택했다. F1963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역 내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 A 씨 부부는 “한 개인의 결혼식을 이처럼 공적인 장소에서 치를 수 있을지 궁금했었다”면서 “결혼·출산 장려를 위해 장소를 내어준 부산시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결혼식은 불필요한 식순은 모두 생략한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특별하게 구성됐다.
부산드림결혼식은 부산에 거주하는 만 40세 이하의 미혼남녀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누리집(http://dev1.busan.go.kr/wedding)에 결혼계획서를 제출하면 부산의 산과 바다, 문화가 어우러진 야외, 공원, 예비부부의 추억이 담긴 장소 등 어디서든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www.smallwedding.or.kr)’를 통해 특별한 결혼식을 올린 커플도 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B 씨 커플은 2016년 11월 청와대 사랑채에서 혼인서약을 했다. B 씨는 “불혹을 넘긴 나이기도 했고, 자영업에 종사하다 보니 하객수가 적었다”면서 “무엇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니 주례 선생님과 가족들, 정말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혼인서약만 하자며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객 수 100명 이하의 결혼식장을 찾다보니 난관에 부딪쳤다. 일반 예식장은 기본 인원수의 하객을 요구했고, 뷔페도 기본인원을 맞춰야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카페에서 하는 스몰웨딩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웨딩을 위한 버진로드와 식사비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게다가 웨딩을 위한 모든 준비를 알아서 할 자신이 없었다.
B 씨는 “고민하던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작은결혼정보센터를 알게 됐다”면서 “누리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작은 결혼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고 청와대 사랑채라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랑채에서의 결혼식은 여성가족부 공모를 통해 매년 20쌍 정도만 식을 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커플이 당선돼 정말 기뻤다”고 소회를 전했다.
같은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C 씨 부부도 거품을 쏙 뺐다. 이 부부는 예단, 예물, 폐백을 모두 생략하고 커플링만 준비했다. 반지도 공방에서 직접 만든 것으로 15만 원 내외의 비용이었다. 하객들에게는 외부 식당에서 설렁탕을 대접했다. C 씨 부부는 “작은결혼식인 만큼 취지에 벗어나지 않고 둘만의 힘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예쁜 결혼식을 만들고자 했다”면서 “열심히 준비해서 300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뜻깊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
“난임 부부의 아이 낳을 권리 보장, 저출산 극복 열쇠”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6/05/20170605011012757_N61YAR2K.jpg)
ⓒC영상미디어
이제는 흔해진 ‘난임(難姙)’이라는 용어.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이다. 그 전까지는 ‘불임’으로 통용됐다. 아직까지 의학계에서는 ‘난임’과 ‘불임’을 구분해서 쓰고 있지만 박 회장은 ‘난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유한다. 계기가 있다. 때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한 난임 부부의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를 다 찾아다녔지만 결국 ‘불임’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불임은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저한테 울면서 호소하더라고요. 제발 용어를 바꿔주면 안 되겠냐고요.”
연합회는 그길로 용어를 공모해 ‘난임’을 채택했다. 난임 부부들이 ‘불임’이 아닌 것은 수치로도 증명됐다.
“2016년 출생아 40만 6000명 가운데 1만 9700명이 난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수치는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2015년에는 4.4%를 차지했고 2016년에는 4.9%에 달합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임 부부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2003년 발족한 한국난임가족연합회는 ‘난임 부부의 아이 낳을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기치로 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난임 치료 시술비의 의료비 지원을 호소하는 8504명의 서명을 국가에 탄원했고, 그해 10월 지원이 통과되는 성과를 거뒀다. 오는 10월 1일부터 난임에도 적용되는 건강보험 또한 연합회의 꾸준한 활동이 빚어낸 성과다. 박 회장은 “이는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청원해온 바”라면서 “아직 보험 적용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진 않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합회는 난임 부부를 위한 각종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원 사업은 체외수정 시술비를 지원하는 ‘아가야 보듬이’다. 정부의 난임 지원을 모두 받고도 임신에 실패한 부부를 돕는 사회공헌 사업으로 25개 병원, 3개 제약회사와 함께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 중인데 현재까지 총 650쌍이 지원을 받고 그중 138쌍이 임신에 성공했다.
박 회장은 “난임 부부에게는 이 같은 재정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상담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지원만 해주고 ‘이제 임신해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난임 진단 시부터 어떤 의료 처치가 필요한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알려줘야 합니다. 특히 정서적인 지원이 중요해요. 시술이 거듭되면서 난임 부부는 심적으로 굉장히 약해집니다.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상실감에 젖어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하죠.”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난임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신적 고통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60%에 달했다.
그간 박 회장이 만난 난임 부부만 해도 수만 쌍. 기억나는 한 부부의 얘기를 들려줬다.
“난소 기능 저하, 자궁내막증을 겪었던 분이 있었어요. 의료학적으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시술을 열 번 가까이 받았는데도 안 돼 연합회를 찾아왔더군요. 제가 그랬어요. 병원 다니는 것, 약 먹는 것 다 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 편하게 10개월만 지내보자. 그렇게 취미 활동을 하면서 10개월을 보냈어요. 연합회에서는 간간이 상담을 해줬고요. 그러다 임신 소식이 들려왔고 그때 낳은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 됐습니다. 현재 연합회 엄마 멘토로 활동 중인 분의 사례죠.”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정서적인 지지’다. 그래서 난임 부부의 상담 지원 또한 연합회의 대표적 지원 사업 중 하나다. 그 밖에도 난임 수기 공모전, DD패밀리 1박2일 힐링캠프, DD맘의 날 교육, 남편들을 위한 올챙이 교실 등 각종 교육 및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난임 엄마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수확물로 함께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심리적인 위안을 찾는다.
난임 판정을 받는 부부는 매년 약 20만 쌍. 박 회장은 “‘아이 안 낳는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간절히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부부에게 의지를 보태줄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난임가족연합회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텃밭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7남매 다둥이 부모 신재섭·이혜은
“첫애 때가 가장 힘들고 많이 낳을수록 오히려 수월해요”
![7남매 다둥이 부모 7남매 다둥이 부모](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6/05/20170605011058954_PAZWALXH.jpg)
▶ 김선교 양평군수(오른쪽)가 신 씨 부부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양평군청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는 유명 인사가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 ‘칠남매 집’으로 불리는 신재섭(49)·이혜은(40) 씨 부부다. 16년 전 첫째를 낳은 부부는 지난 5월 2일 일곱째를 출산했다. 핵가족이지만 이 집은 5남 2녀에 부부까지 9명이 북적인다.
“아이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제 동생이 하나 더 생기면 우리 가족 10명이다!’라고요.”
거의 2년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셈. 칠남매 집에는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실제로 아이가 많아지자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다. 아이들 얘기만 해도 하루가 다 간다. 때문에 부부 간 대화가 넘친다.
“결혼한 이후로 항상 집에 갓난아기가 있다 보니 내가 아직 젊은 느낌이 있어요. 아기를 보고 있으면 나이를 잊게 돼요. 첫째 낳았을 때가 생각나서 부부가 아직 신혼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항상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훨씬 밝아졌다.
“(첫째가) 혼자일 때는 조금 이기적인 성향이 있었어요. 그 후로 동생들이 생기고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니 확실히 가정 안에서 사회성이 길러지더라고요. 자기네들끼리 사소한 거지만 규칙도 만들고 형과 동생 사이에 위계질서도 세우고요.”
애초에 부부는 자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어림잡아 육남매, 더 생겨도 좋다’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자녀 계획을 특별히 세우지는 않았어요. 아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시는 대로 잘 키우자는 주의였죠.”
칠남매 모두 조산원에서 자연분만으로 출산했고 모유수유를 고집했다. 현재 신재섭 씨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이혜은 씨는 전업주부다. 양가 부모님이 멀리 살고 있어서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신 씨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한다. 그래도 힘에 부치진 않을까.
“아이가 하나일 때 가장 힘들었어요. 처음이니까 엄마·아빠가 육아에 서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마음은 뭐든 해주고 싶고요. 아이 입장에서도 혼자면 엄마, 아빠만 찾게 되겠죠. 아마 이럴 땐 지쳐서 둘째, 셋째 계획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육아는 갈수록 수월해져요. 그러다 3명 이상이 되면 4명이나 7명이나 똑같아요.”
부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제언도 덧붙였다.
“국가가 성립하려면 국민, 주권, 영토가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은 그중에서 ‘국민’이 없어지고 있는 형국이에요. 국민이 국력인데 말이에요. 아이를 아예 낳지 않거나 하나만 낳다 보면 사촌이 없어질 수도 있는 거죠. 자연히 아이들에겐 친구가 없어지고요.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우선 아이를 안 낳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죠. 제가 생각하기엔 염려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출산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해주려는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죠. 아이에게 더 많은 걸 해주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아이의 정서 함양 시간이 줄어드니 악순환인 거죠. 더 좋은 학원, 더 비싼 옷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번 더 안아주면 되거든요. 아이들은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온다는 옛 속담이 있잖아요.”
신 씨 부부가 거주하는 양평군은 경기도 내 다자녀 출산율이 1위인 지역이다. 지난 3년간 출생한 다자녀는 넷째 아이 94명, 다섯째 아이 18명, 여섯째 아이 7명, 일곱째 아이 5명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그동안 군이 추진하는 출산, 보육 정책의 효과가 다자녀 가구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양평군은 2012년부터 출산장려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고 2017년에는 출산장려금 지원 조례를 개정했다. 이 밖에도 예방접종, 영양플러스사업 지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신생아 청각선별검사, 철분제 지원 등을 통해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 회복 및 성장 발달을 돕고 있다. 또한 다자녀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도요금 및 전기요금 감면, 관내의 자발적인 업체 참여로 업종별 5~20%의 할인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신 씨 부부는 다섯째 때 1000만 원, 여섯째 때 2000만 원, 일곱째 때 2000만 원, 총 5000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았다. 신 씨는 “양평군은 다른 지자제보다 장려 정책이 잘 돼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수미 서대문구 공동육아나눔터 팀장
“‘독박육아’ 걱정이요? ‘공동육아’로 떨치세요”
![서대문구 공동육아나눔터 서대문구 공동육아나눔터](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6/05/20170605011144473_4YZK7YJG.jpg)
▶ 서대문구 공동육아나눔터 ⓒC영상미디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엄마,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핵가족화를 넘어 4가구당 1가구가 1인 가구인 요즘에도 이는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적어도 ‘공동육아나눔터’에서는 그렇다.
물론 이곳에서 과거 이웃사촌들이 돌아가며 아이를 봐주던 ‘육아 품앗이’의 모습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부모들과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공동육아’라는 말을 써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공동육아나눔터는 여성가족부와 기업의 민관협업 사업으로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전국 122개소가 운영 중이다. 핵가족화로 인한 육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이웃 부모들이 함께 모여 아이를 돌보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지난 5월 말,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1동에 위치한 공동육아나눔터를 찾았다. 오후 4시경 ‘냠냠 드로잉’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세 가정이 모여 각종 채소 등을 미술 재료로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열중이었다. 학부모 A 씨는 “집에서 이런 놀이를 하려면 재료 준비에 뒷정리에 엄두를 내기 힘든데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서 “외동아들이라 집에서는 혼자 체험해야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술 프로그램은 미술심리학을 전공한 강사가 직접 진행하고, ‘책이랑 나랑’과 같은 상시 프로그램에는 독서지도 강사가 참여한다. 강의는 모두 재능기부로 마련된다.
특히 공동육아나눔터의 대표적인 활동 내용은 부모들이 각자의 재능과 장점을 살려 다양한 과목을 지도하는 것. 이수미 서대문구 공동육아나눔터(건강가정지원센터) 팀장은 “예를 들어 음악, 미술, 체육, 발레, 서예 등에 재능이 있는 부모들이 이를 자녀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능 품앗이인 거죠. 돌아가면서 우쿨렐레, 리코더 등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매년 이런 품앗이의 종류가 15~17개 정도 됩니다. 무료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걸 가르쳐줄 수 있어서 좋고, 네다섯 가정 정도 소규모로 모여서 배우니 좀 더 심도 있게 배울 수도 있고요. 또 가르쳐주는 엄마는 자기계발도 할 수 있고 1석 3조죠.”
이외에도 등하원 시 돌아가며 자녀를 데려다주거나, 해당 지역이나 타 지역의 다양한 체험을 가족끼리 그룹을 지어 함께할 수도 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엄마들의 ‘품’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부모들끼리 양육 정보를 공유하고, 집에서 혼자 노는 아이들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죠. 눈에 보이는 품앗이는 이 정도고, 더 큰 품앗이를 기대할 수 있는 씨앗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공간을 토대로 앞으로 어떤 품앗이를 끌어낼지는 엄마들의 몫입니다. 그렇게 자생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나눔터의 목표이기도 하죠.”
품앗이 활동을 하지 않고 나눔터만 키즈카페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나눔터에는 기본적인 책과 장난감이 있고 수유실도 있다. 이 팀장은 “엄마들 반응이 좋아 주말 시간이나 야간 시간까지 열어달라는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공동육아의 현장에서 매일같이 엄마들을 만나고 있는 이 팀장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 또한 일곱 살짜리 딸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전적으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는 지났지만 ‘왜 가족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 치우쳐 있는가’라는 전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저출산 극복은 요원한 얘기가 아닐까 싶을 때가 많지요.”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