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말하는 ‘선진국 지위 격상’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2일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지위 격상은 급성장한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와 외교 등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선진국으로 분류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위 변경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선진국 지위 격상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리더십의 정립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할과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 개도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협력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가교 역할도 더 많이 요구받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유·무형적 혜택과 권리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적으로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국민의 삶의 질이 경제·사회적으로 두루 향상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바야흐로 선진국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 그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 정립과 국제적 책임 및 역할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회원국 195개)가 7월 2일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집단인 A그룹에서 선진국 집단인 B그룹으로 격상했다. 국민은 이 소식에 “코로나19와 무더위에 모처럼 반가운 뉴스”라며 자긍심을 느낀다면서도 “식민과 분단·전쟁의 현대사를 딛고 산업화·민주화를 이뤄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된 만큼 이제 정부와 우리 국민이 다시 힘을 합쳐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고 안전망을 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감>이 선진국 그룹 격상에 대한 국민의 감회와 정부에 대한 당부·제언을 들어봤다.
“국가 이미지와 협상력 더 좋아질 것”
50대 직장인 박모 씨는 “6·25전쟁 직후 식량·물자를 원조받던 우리가 약 70년 만에 다른 나라를 도와줘야 하는 자리가 됐다니 놀랍고 자긍심도 든다”며 “외형적으로 완전한 선진국 지위를 획득해 우리나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국민 의식과 정치 수준을 높이는 데 우리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30대 회사원 심모 씨도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가 개도국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 의아했다. 경제 10위권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개도국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수출·무역 쪽에서 개도국 지위로서 누릴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돼 얻는 무형의 이점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이미지도 좋아지고 협상력도 더 좋아질 것이다.”
20대 대학생 나모 씨는 “여러모로 힘든 시기에 우리가 선진국이 됐다니 자랑스럽다. 코로나19에서 보여준 우리나라의 빠른 대처와 높아진 국민 의식,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K-문화의 대약진 그리고 코로나19 속에서 빠른 경기회복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선진국이라는 자리에는 뒤따르는 책임감도 있다. 더 발전하는 모습으로 개도국의 본보기가 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발전을 위해 정부는 경제 측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활발한 정상외교도 선진국 격상에 큰 힘을 불어넣었다는 의견도 있다. 70대 자영업자 최모 씨는 “문 대통령은 2년 연속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세계 최정상 선진국 다자 정상회의에 참석해 환경과 보건·방역에서 모범국으로서 우리의 활동을 소개했다”며 “이 과정에서 유·무형으로 국익 증진은 물론이고 국가 위상을 드높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엔 세계 권역별 주도국 4개국만 초청받았는데 우리나라가 여기에 선정된 것은 민주 국가이자 기술 선도국으로서 국제경제 및 정세, 글로벌 현안을 책임 있게 이끄는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선진국 지위 격상도 이 같은 정상외교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질서·규범에서도 선진화 나서야”
경제뿐 아니라 국민 의식과 관행, 개인과 집단의 행동 양식 및 사회질서·규범에서도 선진화에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선진 국가와 시민에 걸맞게 저출산·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는 얘기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는 50대 박모 씨는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된 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큰 자긍심을 줄 수 있다”며 “그렇지만 여러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좋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있고 그래서 실감하지 못하는 국민도 꽤 있을 것이다. 이제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고 안전망을 보완해 국민 개개인의 삶이 좀 더 풍요롭고 튼튼해지도록 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국가와 국민도 선진국 수준에 맞게 자율과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에 더욱 관심을 쏟고 실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40대 주부 박모 씨는 “경제 성공과 별개로 우리가 문화·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갖추고 있는지는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지 많은 시민이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떳떳하게 선진국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라고 말했다.
중견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는 50대 이모 씨도 “선진국이라는데 과연 우리의 현재 상황이 만족스럽고 미래가 보장된 것인가”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2020년 합계출산율은 0.84명, 자살률은 10만 명당 2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하고 산업재해 치명률도 10만 명당 4.6명(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5위”라며 “선진국이 됐다고 자축할 일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동안 국민과 역대 정부가 이룩한 성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향후 백년대계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제 현안에 좀 더 당당한 목소리 내기를”
60대 자영업자 김모 씨는 자아도취를 경계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96년 OECD 가입에 따른 급격한 개방화로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아도취 하지 말고 일류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극소수이지만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대 취업준비생 원모 씨는 “유엔(UN)이 선진국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국민의 삶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시끄러운 정치 분야가 갑자기 선진화될 것도 아니다”라며 “분명한 건 앞으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부담이 이전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선진국이라는 명분으로 늘어나는 의무만 묵묵히 부담하기보다 우리도 국제 현안에 좀 더 당당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책임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70대 소상공인 민모 씨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책임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개도국 지원과 협력 확대가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경제 기초 체력을 더욱 강화하고 공고히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조모 씨도 “선진국 그룹에 합류했다는 건 그동안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한 기업과 노동자들 덕분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다는 건 국제사회에서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