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노년 드라마, 영화라고 부르자. 어느 드라마인들 노인이 안 나올까마는 그들이 주인공, 그들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니까.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가 그렇고, 얼마 전 막을 내린 등장인물들의 평균 나이와 그 역을 맡은 배우들의 평균 나이 모두 70세가 넘은 ‘디어 마이 프렌즈’도 그렇다. 영화도 심심찮게 나왔다. 최근에만 해도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장수상회’가 있다.
![고령화 사회인 현 세태를 반영한 노년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대에게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노년의 사랑과 일상을 담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왼쪽 사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오른쪽 사진). 고령화 사회인 현 세태를 반영한 노년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대에게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노년의 사랑과 일상을 담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왼쪽 사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오른쪽 사진).](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7/15/20160715140037831_6QOGKOP4.jpg)
▶고령화 사회인 현 세태를 반영한 노년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대에게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노년의 사랑과 일상을 담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왼쪽 사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오른쪽 사진).
노인. 드라마와 영화로서는 내키지 않는 주인공이다. 세상이 그렇다. 누가 늙은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기껍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으랴. 그것이 설령 드라마와 영화라도.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아직 까마득한, 자신들과 거리가 먼 세상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처럼 아무리 멋진 인생, 해피엔딩을 다짐하지만 노년은 쓸쓸하고 아프고 처량하다. ‘꽃보다 할배’에서 아무리 아직도 청춘이라고 외쳐도 세상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실은 현실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문화가 있다. 더구나 평균수명이 나날이 늘어 내남없이 여든, 아흔까지 사는 게 다반사인 고령화 사회. 양로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벌써부터 ‘백세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그냥 방 안에 누워 골골 생명을 이어가는 100세가 아니라 손수 빨래하고, 밥 해먹고, 걸어서 시장에 가고, 병원도 혼자 다니는 100세 말이다.
‘백세인생’ 노래의 유행
고령화 시대 우리의 자화상
무명가수 이애란을 1년 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든 ‘백세인생’은 이렇게 노래한다. ‘80세에도 아직 쓸 만해서 못 가겠고, 90세가 되더라도 재촉하지 마라. 100세 때 좋은 날 좋은 시에 가겠다고 전해라’라고. 때 이른 죽음을 거부하고, 때가 되었을 때는 그것을 초연히 받아들이겠다는 인생관이 담겨 있다. 그때가 바로 100세다.
노래의 유행은 세태를 꼬집고,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반영한다. ‘백세인생’ 열풍 또한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고, 고령화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8분의 6박자에 여덟 소절이 다섯 차례나 단순하게 반복되는 민요 가락의 마지막 소절은 아리랑 후렴구에서 그대로 따왔다.
그 구절처럼 이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흔, 여든, 아흔의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외롭고 힘들게 지나가야 할까. 어쩌면 ‘백세인생’은 삶에 대한 애착보다는 살아야 할 시간들에 대한 슬픔과 인생의 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은퇴를 하고 앞을 보면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까마득하다. 그나마 모아놓은 돈이라도 있거나 연금이라도 두둑하게 받아 경제적 걱정이 없어 더 이상 ‘밥벌이’를 계속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직도 학교 다니는 자식, 학교는 졸업했는데 취직 못 하고 있는 자식이라도 있으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가족을 위해 어디서든,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 구차함과 고단함과 지겨움이란.
그나마 경제적 여유만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백세인생’이 된다면야 또 얼마나 좋으랴. 일흔이 되면 지식의 높낮이, 여든이 되면 돈이 많고 적음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이 있다. 자식도 큰 소용이 없어진다. 건강이 최고의 권력이고 아내와 남편이 최고의 친구다.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에서 대가족의 큰 어른으로 환갑이 지난 아들 며느리를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으려 아파트로 옮겨 따로 독립생활을 선언한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 부부처럼.
그나마 그들은 부부가 아직도 무병장수하니 행복하다. 누가 먼저 죽어 혼자이거나, 하나가 아프면 하루 종일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노인정에서 물끄러미 TV만 보고 있거나 꼼짝 못 하고 병상을 지켜야 한다. 이런 노인들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말한다. 남편과 아내보다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늙으면 친구가 제일이라고.
꼭 문정아(나문희)와 조희자(김혜자)처럼 또래가 아니어도 좋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오충남(윤여정)이나 장난희(고두심) 같은 ‘동생, 언니’ 하는 사이라도 괜찮다. 늙으면 친구의 조건은 ‘사이’와 ‘나이’가 아니라 ‘시간’과 ‘거리’다. 아무리 친해도 멀리 있으면 소용없고, 나이 차이가 나도 함께한 시간이 많으면 편하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되고, 마음 맞고, 가까이 살아도 노년에 ‘디어 프렌즈’가 되어 쭉 지내기란 이래저래 쉽지 않다. 드라마야 비슷한 배우들 모아서 친구로 만들면 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로망’일 뿐이다.
설령 그 로망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그마저도 소용없는 쓸쓸하고 아프고 슬픈 노년이 찾아온다. 오래 살게 되면서 점점 더 두려워지는 고통과 망각의 시간. ‘디어 마이 프렌즈’도 결국에는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는 치매에 걸린 조희자가 아직 제정신이어서 스스로 찾은 요양원에서 뛰쳐나오고, 장난희는 수술이 잘되어 건강하게 퇴원해 여행에 동참하는 행복의 순간으로 끝나지만, 드라마에서 이제 현실로 걸어 나오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 드라마•영화•노래
남아 있는 날들의 소중함
어디 장난희와 조희자만일까. 내 친구의 어머니가 장난희이고, 내 누이와 아내가 바로 조희자다. 시간과 기억을 잃어버리는 노인들, 결국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통을 참으며 병실에 누워 있는 노인들. 전국의 요양원, 요양병원에 가보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우리의 고령화는 한편으로 이렇게 슬픈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무작정 오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죽음보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 놓인 시간들이 더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 드라마와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과 남아 있는 날들을 우리 모두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가 그랬듯이, 그들의 현재가 곧 우리의 미래이니까 .
드라마와 영화의 모습과 이야기가 그들만의 위안을 위한, 그들만의 별난 문화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동정과 연민이 아닌 공감하고 소통하고 함께 나누고 걸어가는 ‘문화마당’인 이유일 것이다.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6.07/15/20160715140212129_XUWPNNJJ.jpg)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