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로운 대아세안 정책인 신남방정책 추진을 공식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을 처음 밝힌 것은 2017년 11월 9일 인도네시아 국빈 방문을 계기로 개최된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 연설을 통해서였다. 이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저의 목표”라며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아세안과의 협력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자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 비전을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임기 내에 아세안 10개국 모두를 방문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에만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세안 4개국을 방문하고 다양한 협력 방안에 합의했다. 아울러 지난 8월 신남방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범정부 차원에서 신남방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도 갖췄다. 특히 2019년에는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맞아 아세안 10개국 정상 모두를 한국에 초청,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아세안 정상들과 합의함으로써 한·아세안 관계는 신남방정책을 발판 삼아 더욱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세안인 “한국, 가장 가보고 싶은 지역”
이제 추진한 지 갓 1년이 지난 신남방정책의 효과는 사람, 상생번영, 평화 등 신남방정책이 표방하는 3대 핵심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유대 강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서서히 시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분야에서는 신남방정책을 실현하고자 하는 긍정적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한·아세안 교역액이 16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제2 교역 대상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올해 베트남 수출액이 유럽연합(EU) 수출액을 넘어서면서 베트남은 우리에게 제3의 수출 대상국으로 떠올랐다. 신남방정책 추진으로 아세안과 우호적 교역환경이 보다 확대된다면 2020년까지 교역액 2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도 순조롭게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8000여 개의 우리 기업들이 아세안에 진출하고 있다. 한류 열풍을 바탕으로 K-푸드, K-콘텐츠를 비롯해 우리의 중견·중소기업들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베트남에서는 박항서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광고 효과로 국산 피로회복제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가 약진하는 등 아세안 소비시장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다.
무엇보다 신남방정책이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교류 면에서 최근 괄목할 만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한·아세안 간 상호 방문객은 매년 약 10%의 증가세를 보여왔는데, 올해는 최초로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1년 530만 명 수준에서 7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팝,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가 아세안에서 확산되며 이제 한국은 아세안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지역으로 떠올랐다. 한편 아세안은 우리 국민이 휴가, 여행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해 사람 중심의 교류가 지속될 전망이다. 2017년 우리 국민 760만 명이 아세안 지역을 방문했다.
한·아세안 간의 인적 교류는 단순한 관광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세안 지역에서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세안 지역 출신 유학생은 2014년 7500여 명 정도였는데 2018년 3만 2500명으로 4년 사이에 4.3배 증가했다. 이는 최근 5년간 우리나라로 온 외국인 유학생이 1.7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특히 베트남 출신 유학생은 8.5배나 증가해 현재 2만 7000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올해 국내로 온 아세안 유학생 비중은 전체 23%로 늘어나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아세안의 젊은 학생들이 한국 유학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 고국 발전을 위한 핵심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향후 우리와 아세안의 미래를 이어주는 든든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위한 인적·문화교류 확대해야
이처럼 신남방정책 추진 1년의 변화들은 우리와 아세안 지역의 관계가 앞으로도 더욱 긴밀히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신남방정책이 우리와 아세안의 상생공영의 공동체 형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교역과 경제교류 확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세안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신남방정책의 지향점이 경제 분야의 물질적 이익 확대에만 만족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아세안을 우리의 수출시장에 지나지 않는 ‘경제 영토’ 정도로만 생각하고, 우리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으로만 여기는 과거 경제 중심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아세안을 단순한 경제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접근을 통해 상호이해와 공감대를 확대해 궁극적으로 한·아세안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고자 하는 신남방정책의 목표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아세안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호호혜적이고 상생할 수 있는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적·문화교류의 확대를 통해 우리와 아세안 간 상호이해와 인간적인 유대를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아세안 인적교류의 목표를 단순한 상호 방문객이나 관광객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인적교류는 결국 미래 세대인 젊은 청년들의 교류 확대에 중심을 맞춰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상호교류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길 때 진정한 한·아세안의 밝은 미래가 열릴 수 있다. 미래 세대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세안의 많은 청년과 학생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고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청년교류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범 1년을 맞은 신남방정책이 향후 한·아세안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최원기│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