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병엔 부동산도 위태, 은퇴 후 3단계 자금 분배 필수”
건강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사람들은 늘어난 수명에 따라 건강한 노후를 기대하지만 실제 기대수명(82.1세)과 건강수명(70.7세)은 10여 년의 차이를 보인다. 노후의 질병과 재해의 기간은 실업과 의료비 지출을 의미한다. 건강관리가 곧 자산관리다.
고령화 사회의 속도만큼 노인 의료비 증가세도 빠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6년 65세 이상 진료비가 월평균 32만 8599원으로 국민 1인당 월평균 10만 6286원의 3.1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65세 이상의 진료비는 25조 187억 원으로 전체 38.7%를 차지한다. 여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비용, 처치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 노후 의료비는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65세 이후는 생애 의료비 절반을 지출하는 시기다. 질병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금전적 부담까지 감당해야 한다. 특히 9.9%의 발병률을 보이는 노인 치매는 1인당 평균 진료비가 연 1193만 원가량으로 집계돼 큰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고액의 진료비가 가계를 빈곤층으로 빠뜨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개인의 가처분소득에서 의료비를 40% 이상 지출하는 경우를 ‘재난’으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의료적 빈곤 상황을 ‘재난’으로 여기고 암, 뇌질환, 희귀성난치병 등이 있는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질병이 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은퇴 후 생활까지 걱정 안 할 만큼 여유로웠는데…”
부산에 거주하는 성인숙(가명·57) 씨는 2008년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평소 암보험에 가입해둔 덕에 그는 진단비로 5000만 원을 지급받았다. 항암치료와 수술 두 번을 받으며 병세는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5년 뒤 그는 암세포가 유방으로 전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병기간이 길어질수록 성 씨와 가족들은 지쳐갔다. 담당 주치의는 신약이라며 폐암 표적치료제 ‘잴코리’를 권했다. 약값은 한 달에 약 1000만 원. ‘1년이면 1억’이라는 약값이 부담스러웠지만 남편과 대학생 두 자녀는 적극적으로 복용하길 바랐다. 그는 1년 넘게 복용하다가 패혈증이 생겨 약을 중단했다.
성인숙 씨가 복용했던 ‘잴코리’는 2015년 급여 항목으로 전환됐다. 월 1000만 원에 육박했던 약값은 37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암 치료제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분류되면 환자의 부담액은 5%로 떨어진다. 비급여로 ‘잴코리’를 부담하던 성 씨는 “약값이 너무 부담돼서 두 달 동안 복용을 중단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었다. 검사, 수술, 입원, 요양병원 치료비 등에 비급여 항목이 많았다. 암보장보험, 실손보험 등 개인보험을 갖고 있었지만 투병생활이 장기간 이어지며 각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모아둔 여유 자금도 금세 바닥났다. 결국 60평(198㎡)에 달하던 아파트와 대형 세단까지 처분했다.
상황은 점차 악화됐다. 하루 7만 원 하는 간병인 이용료도 부담됐지만 성 씨를 돌볼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자영업을 하던 남편은 가게를 정리하고 아내를 돌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기적 수입이 중단됐고 그의 가정은 파산신청을 했다. 성 씨는 “은퇴 후 생활까지 걱정 안 할 만큼 여유로웠는데, 중증질병에 걸리면 집이 풍비박산 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숙 씨의 사례에서 보듯 중증질환은 건강을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본인의 실직 또는 배우자의 실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 소득은 감소하고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가정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해온 노후 준비마저 망쳐버리는 연쇄 문제가 일어난다.
물론 의료비 부담이 큰 질병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 급여 항목 확대를 추진해오며 총 672항목이 급여로 전환되고, 7657억 원가량의 환자 부담액이 경감됐다.
![65세 이상 건강보험 진료비 및 비중 65세 이상 건강보험 진료비 및 비중](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3/05/20170305000911719_E2VKO1SY.jpg)
“60세 이상 재난적 의료 대상자 57.7%”
임승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계속해서 소득 기준을 보편적 취지에 맞게 전 국민에게 적용하고, 지원 대상 질환도 중증질환뿐 아니라 모든 고액 입원 질환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의료 재난을 겪는 ‘메디컬 푸어’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또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 대상자 중 60세 이상의 지급 비율이 57.7%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고령층의 의료 빈곤 상황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암 투병을 한 지 10년이 된 성인숙 씨도 재난적 의료비 사업에 지원해 2000만 원 상당의 진료비를 덜었다. 물론 아직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최근 복용하는 폐암 치료제 ‘자이카디아’가 2016년부터 급여 항목으로 분류되어 부담을 일부 줄였다는 점이다. “800만 원 상당의 약값을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급여 처리가 돼 4만 원 정도 내고 있다”고 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사망원인 1위는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2016 고령자 통계). 이러한 질환들은 의료비가 많이 들어 노후생활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 쉽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건강관리가 곧 자산관리라 할 수 있다. 건강수명을 늘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중증질환 재?거 의료비 지원사업 중증질환 재?거 의료비 지원사업](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3/05/20170305000952696_1XDJR05O.jpg)
![병원사진 병원사진](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editor/2017.03/05/20170305001017900_CL9P7HPF.jpg)
은퇴 후 의료비 준비
“실손보험은 필수, 활동기·수축기·비활동기 나눠 의료비 분배하라”
1. 은퇴 자금 분배가 필요하다.
은퇴 후 삶을 세 단계로 나누어 자금도 분배하는 것이 좋다. 보통 활동이 가능한 75세까지는 은퇴 ‘활동기’라고 한다. 이때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즐기는데 이후의 삶까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후 ‘수축기’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돈이 별로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가장 위험한 것은 ‘비활동기’다. 죽음 직전의 단계로 의료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시기이며 예측이 불가능하다. 짧으면 2~3년,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은퇴 초기부터 이 시기를 구분하여 자금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2.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라.
의료자금은 실손의료보험으로 충당하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없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가입 연령 제한이 70~80대까지 확대되어 고령에도 가능한 실손보험 상품들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입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50대에는 은퇴 전반기를 그려보며 반드시 실손의료보험을 갖고 노후 의료비용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3. 간병자금을 대비하라.
의료자금은 급여 항목이 늘어나면서 많이 줄어든 편이다. 복병은 간병자금이다. 24시간 자녀들이 간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다. 민간 간병인은 하루 6만~8만 원인데 병상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같이 늘어난다. 이럴 때는 개인보험으로 간병인 비용을 마련해두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활용하라. 민간 간병인 대신 해당 병원에서 간호사가 돌봐주는 시스템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원주 | 박원주소비자재무교육연구소 소장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