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삼각지’와 함께 가장 치열했던 6·25 전쟁터로 알려진 곳은 바로 낙동강 방어선의 심장부 격인 경북 칠곡군의 다부동전적지와 다부동을 둘러싼 유학산 일대다. 탱크 모양의 독특한 다부동전적비와 시인 조지훈의 시비가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 왜관지구전적비, 밀려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끊어야 했던 ‘호국의 다리’ 등 칠곡의 전적지를 찾아 6월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기려보자.
▷6.25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북 칠곡군의 가산산성 진남문.
다부동전적기념관
6·25전쟁 당시 낙동강변까지 퇴각하며 수세에 몰려 있던 우리 군이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다부동전투’다. 다부동전투는 1950년 9월 24일 천생산(구미시 인동) 진지를 탈환할 때까지 55일간이나 계속됐으며 북한군 2만4000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 피해를 냈다. 다부동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81년 다부동전적기념관을 건립했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에 위치한 다부동전적기념관은 다부동고개가 시작되는 입구 지점에 25m 높이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으로 6·25 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 기념관 외벽에는 격전 당시의 모습을 부조로 나타내고, 내부에는 당시 전투에서 사용했던 중화기와 소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낙동강 방어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전투를 기리는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이 격전지가 된 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다부동은 팔공산이 일어서 황학산, 유학산, 소학산을 빚어놓은 틈새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지형이다. 그러다 보니 대구와 문경새재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다부동고개는 요충지일 수밖에 없었다. 신라 이후 축성된 천생산성, 가산산성, 냉산산성 등이 다부동고개의 험난한 역사를 전해 주고 있다.
다부동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유학산 곳곳에도 참상의 흔적이 서려 있다. 유학산에서는 1950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8일간 9차례의 고지 탈환전이 벌어졌다. 인근 석적면 포남리의 328고지는 무려 15번이나 고지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6·25전쟁에 종군했던 고 조지훈 시인은 그해 9월 26일 격렬했던 다부동전투의 참상을 찾아 ‘다부원(多富院)에서’란 시로 표현했다. 이 시는 1995년 시비로 만들어져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조그만 마을 하나를/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 문의 | 다부동전적기념관 054-973-6313
▷대구지역을 사수한 격전을 기념해 세운 왜관지구전적기념관.
왜관지구전적기념관과 ‘호국의 다리’
다부동에서 왜관읍 쪽으로 빠져나와 낙동강변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석적면 중지리에 왜관지구전적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이곳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졌던 격전을 기념해 건립됐다. 6개의 전시장에는 당시 사용된 무기류와 피복 등이 전시돼 있다.
‘왜관철교’로 알려진 왜관인도교도 전쟁으로 폭파와 재건이 반복됐다. 6·25전쟁 발발 직후 급격히 전세가 기울며 그해 8월 낙동강 방어선이 설치되자 왜관 전 주민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낙동강 방어선의 교량들은 적이 강을 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폭파됐다. 이때 왜관인도교도 함께 폭파됐다. 8월 16일 인민군 4만여 명이 왜관으로 넘어오는 강변에 집결해 대구 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도하작전을 벌이자 유엔군은 융단폭격을 퍼부어 적을 궤멸시켰다.
이렇게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왜관인도교(구 철교)는 그해 10월 총반격 때 침목 등으로 긴급 복구한 후 계속 통행에 이용하다가 노후화가 심해지자 통행을 차단했다. 1993년 칠곡군이 복구해 ‘호국의 다리’로 명명했다.
| 문의 | 왜관전적기념관 054-975-9155
▷6.25전쟁 당시 폭파돼 중간 난간이 끊긴 채인 호국의 다리.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가실성당
왜관 지역은 신부와 수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왜관읍에 자리한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운치 있어 칠곡 지역의 전적지를 찾는 길에 함께 찾아도 좋은 곳이다.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은 독일 성베네딕도회 오딜리아수도원에서 파견된 수도자들이 북한 덕원과 중국 옌지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중 이념의 차이에 따른 당국의 탄압과 박해로 이곳으로 내려와서 1952년 왜관성당으로 사용하던 곳에 둥지를 틀었다. 왜관성당은 읍내 새 건물로 이전했다.
▷6.25전쟁 당시 병원으로 사용된 가실성당.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출발해 낙동강변을 따라 자동차로 10분쯤 내려가면 도착하는 가실성당은 왜관읍 낙동강변 둔덕에 자리 잡고 있다. 1895년 우리나라에서 11번째,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는 계산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6·25전쟁 당시 병원으로 사용돼 치열한 전쟁 와중에도 잘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 문의 | 칠곡군 문화공보 담당 054-979-6061
글 · 박길명 (위클리 공감 기자) 201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