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엔 오감(五感)을 일깨우는 네 가지 향기가 있다.
깊고 그윽한 커피향, 기운을 돋우는 바다와 솔숲이 있다.
회 한 접시로 여행 기분을 한껏 느끼고, 옛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두 여성의 아름다운 그림과 시로 가슴을 적신다.
봄날,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 옛길을 따라
나른한 몸을 깨우는 향기를 맡으러 강릉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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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해변과 경포해변을 잇는 강문솟대다리.
대관령 옛길은 영서와 영동을 잇는 길이다. 옛 사람들은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바다에서 내륙으로, 내륙에서 바다로 문물을 실어 날랐다. 대관령 옛길에서 남대천을 따라가면 강릉항이 나타난다. 강릉항 옆엔 커피 로드로 각광받는 안목해변이 있다. 많은 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이곳을 찾는다.
커피향을 맡기 전에 해변을 먼저 걷는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긴 모래가 부드럽다. 미끄러지는 모래 해변은 찬찬히 걸어야 한다. 해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모래를 한 줌 쥐어본다. 고운 모래알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해변을 거닐며 고운 알갱이만큼 다양한 사랑을 나눈다. 한적한 바다 위에 밀고 당기는 파도 소리만 들릴 뿐 주변은 고요하다. 마치 시간도 공간도 없는 무한의 세계에 들어선 것만 같다.
길가에 자리한 커피집으로 향했다. 메뉴판엔 지도에서만 보던 지명이 적혀 있다.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하와이. 강릉의 작은 항구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자란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시는 것, 이것도 하나의 여행이다. 적당히 쓴맛과 신맛을 가진 예가체프를 주문하고, 바다 쪽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오후의 그윽한 커피향은 따뜻한 봄날처럼 다가온다. 커피향이 조급했던 마음을 단숨에 느긋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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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즐길 수있는 안목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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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생가 주변의 울창한 솔숲
안목해변엔 수많은 커피집이 있다. 카페 ‘보헤미안’의 박이추 선생이 강릉에 터를 잡으면서부터 커피 로드가 시작됐는데, 이제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집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자부심만큼 맛도 조금씩 다르다. 커피를 볶는 것에서부터 내리기까지 손이 닿는 모든 과정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조금씩 다른 커피 맛은 사람의 기분을 닮았다. 좋은 커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명품 소나무 숲길의 명품 솔향
안목~강문해변 드라이브와 산책 코스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솔숲으로 향한다. 강릉을 여행하다 보면 눈에 많이 띄는 게 소나무다. 해변을 따라 빼곡히 이어진 솔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안목해변에서 강문해변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옆에 있어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창문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솔향을 느낄 수 있다.
걷는 것도 길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우람한 소나무의 거친 껍질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수북하니 쌓인 솔잎을 밟아보기도 한다. 시나브로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숲을 나오면 경포호가 물비늘 반짝이며 여행자를 맞는다. 경포호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이다. 호수 주변에 잘 자란 벚나무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려서다. 눈처럼 날리는 꽃과 향기에 취해 계속 호수 주변만 맴돌지도 모른다.
산책로를 따라 참소리박물관을 지나면 관동팔경에 빛나는 경포대가 있다. 경포대에 서면 바다와 호수를 가득 안을 수 있다. 빼어난 경치 덕에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이 찾아들었고, 저마다 경포대를 칭송하며 흔적을 남겼다. 그중 율곡 이이가 열 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도 내려오고 있다.
“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 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하더라.”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누각에 앉아 읽으니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좀 더 아늑한 분위기를 찾는다면 허난설헌 생가가 있는 솔숲을 추천한다. 초당마을 입구에서 한갓진 농가들을 지나면 울창한 숲이 두 팔 벌려 반긴다. 바람이 솔가지를 스치며 내는 소리가 반갑다. 오후의 햇살이 솔밭을 노랗게 물들이고 따스한 볕이 몸을 감싼다. 잔뜩 가슴을 옥죄었던 일상의 무게가 스르르 풀리며 어느새 안도감이 밀려온다.
천재 여류 시인의 부용꽃 향
허난설헌, 시대를 앞선 여인의 삶
솔숲 생가엔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의 삶이 있다. 이 생가는 허난설헌이 살던 곳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봄 매화처럼 시대를 거스른 예술혼을 불태웠던 허난설헌. 안채에 가면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으로 만난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단아한 그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닌 여성이었다.
허난설헌의 아명은 ‘초희’로, 그는 경상감사를 지낸 허엽의 작은 딸로 태어났다. 오빠인 허성과 허봉은 당대 뛰어난 문인이었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그의 남동생이다. 허난설헌은 어린 시절부터 예쁘고 총명했고 남다른 문학적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허난설헌의 삶도 제한적이었다. 집안을 지키고 후세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는 15세 때 안동김씨 김성립과 결혼했다. 이때부터 그의 불행은 시작됐다.
시를 쓰는 아내이자 며느리를 남편과 시어머니가 곱게 보지 않았고, 그들 사이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남편은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허난설헌에 대한 부담이 컸다. 과거 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았다. 허난설헌은 불행한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시를 지으며 현실을 잊으려 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객사로 집안이 몰락했고, 돌림병으로 2명의 아이를 모두 잃었다. 이를 계기로 급격히 쇠약해진 허난설헌은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뒀다.
허난설헌의 재능이 빛을 보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가 재평가되어 그는 조선 규방의 유일한 시인이자 뛰어난 천재로 인정받게 됐다. 현재 그의 주옥같은 시 200편이 전한다.
조선시대 여성이었기에 우뚝 서지 못했던 허난설헌,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지었다는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 꿈에 광상산에서 노닐다)’이 애틋하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뛰어난 여성 화가 신사임당의 묵향
신사임당이 키운 600년 된 매화나무
허난설헌 생가에서 경포호와 생태습지를 지나면 오죽헌(보물 제165호)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본가이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우리가 아는 신사임당은 율곡을 낳은 어머니이고 5만 원 권 지폐의 주인공이다. 어릴 때 닮고 싶은 위인으로 남자아이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을 꼽고, 여자아이들은 신사임당이라고 답할 만큼 신사임당은 한국적인 여성상이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5만 원 권엔 신사임당의 인자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은 지폐에 들어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양성평등 의식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사임당을 지폐의 주인공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였다. 어릴 적부터 안견의 ‘몽유도원도’, ‘적벽도’ 등의 산수화를 보면서 모방해 그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감탄했다고 한다. 동시대 유명한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소세양은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두고 ‘동양신씨의 그림 족자’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을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신사임당의 서화 작품으로는 ‘초충도병풍(草蟲圖屛風)’을 비롯해 풀벌레, 포도, 화조, 매화, 난초 등을 그린 40여 점이 남아 있고, 오죽헌 안에 있는 율곡기념관에 신사임당 서화가 전시돼 있다.
오죽헌은 뒤뜰에 까만 대나무가 자라서 붙은 이름이다. 오죽헌엔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 용꿈을 꾸었다고 해서 붙여진 몽룡실이 있다. 그 옆에 정조가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 원본과 벼루 등을 보관하도록 지어준 어제각이 있다.
몽룡실 옆엔 수령 600년 된 매화나무가 자란다. 신사임당이 생전에 정성 들여 키운 나무다. 그는 매화를 즐겨 그렸고 맏딸 이름도 매창으로 지었을 만큼 매화 사랑이 대단했다.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난 매화는 신사임당과 닮았다. 현모양처의 상징이 아니라 깊은 학식과 시와 그림에 능통했던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 말이다.
오죽헌에서 나와 다시 바다로 간다. 푸른 하늘 아래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낮 동안 맡았던 감미로운 향기들도 어느덧 기억 속에 둥지를 틀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봄날의 잔잔함을 맛보는 만족스러운 순간이다. 움츠린 꽃봉오리가 소리 없이 피는 것처럼 마음도 활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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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유정열 (여행작가) 20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