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늪’의 정의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늪은 그저 물이 고여 있는 곳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늪‘ ’ 에 주목한다. 왜 그럴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인 경남 창녕 우포늪을 찾았다.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이방면·대합면·대지면 총 4개의 행정구역 2.313평방킬로미터로 펼쳐진 습지다. 1998년 국제 람사르협약(동식물 서식지로 인정되는 습지를 보호하고자 채택된 국제협약)에 등록됐고, 1999년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이다.
창포군락이 형성된 우포늪의 남단 제1전망대에 서서 우포늪을 바라본다. 초록의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고 백로와 고니가 한가로이 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들판의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고 수십종의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고 한다. 색색의 꽃들이 피어 우포늪의 매력을 더한다. 그 넓고 푸른 가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늪이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포늪은 오래도록 인간과 호흡하며 긴 세월을 지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늪은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가 되며 홍수를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창포나 생이가래 등의 식물이 자라 물을 항상 깨끗하게 정수해 준다.
우포늪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포늪생태관’을 먼저 들러보는 것이 좋다. 우포늪 남쪽에 위치했다. 우포늪의 형성과 역사, 그 가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포늪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늪 해설사’라고 불리는 전문가에게 우포늪에 대한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우포늪생태관의 마스코트인 노용호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도 만날 수 있다. 노 연구관은 우포늪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벌써 몇년째 이곳에 머물며 우포늪을 연구하고 관련 책과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가끔 그가 늪 해설사로 나설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독특하다. 본인의 몸을 이용해 동물과 식물, 늪의 탄생과정을 알려준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춤을 추며 우포늪을 설명한다. 스스로를 생‘ 태춤의 창시자’라 말한다.
우포늪은 10경(景)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왕버들수림, 수천마리가 떼 지어 날아올라 장관을 연출하는 기러기의 비상 등이다.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장면은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이다. 일출 전인 새벽 5시 30분 전에 도착해야만 느낄 수 있는 우포늪의 숨은 매력이다.
경남 창녕에는 역사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중 창녕석빙고를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조선 영조 18년에 건축된 곳으로 보물310호로 지정돼 있다.
석빙고는 자연에 의해 생겨난 얼음을 겨울에 채집해 다음해 가을까지 보관하는 장소다. 지금의 냉장고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전기가 없던 시절에도 얼음을 1년 내내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하니 놀랍다. 외형을 고분처럼 만든 이유는 얼음을 더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해서다. 얼음을 보관하는 빙실이라는 공간이 주변 지반과 비교해 절반은 지하에, 절반은 지상에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두텁게 덮어 외부의 열기가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오동동 시장일대 창동예술촌… 골목마다 예술의 향기
우포늪의 자연, 창녕석빙고의 역사를 봤다면 이제 경남의 문화를 맛볼 차례다. 여유가 된다면 차를 타고 남쪽으로 35킬로미터 정도 이동하기를 추천한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가 나온다. 그곳에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문화예술마을이 형성돼 있다. 오동동 시장 일대에 형성돼 있는 ‘창동예술촌’이다.
이곳은 수많은 예술인들과 상인들이 모여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산 창동은 과거 수많은 인파와 가게가 들어서 북적거리던 곳이다. 하지만 근처 인구가 감소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곳곳에 점포가 비어 슬럼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면서 마산 원도심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주인이 떠난 빈 점포에 예술인들이 자리 잡고 멋진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골목 구석구석마다 벽화를 그리고 다양한 조형물을 배치했다. 여러 화방과 공방, 찻집, 공예체험장이 들어섰다.
골목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가게에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은 것 같은 만족감을 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들어가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면 된다. 전문가들에게 직접 배워 냅킨아트(휴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 휴지를 붙여 디자인하는 예술)를 하고, 유리공예작품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해 볼 수 있다. “예술과 문화, 과거의 향수와 새로운 볼거리가 가득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요. 이곳에 와서 낭만적인 가을 데이트를 즐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창동예술촌에서 냅킨아트 공방을 운영하는 박해영 씨의 말이다.
글·박성민 / 사진·김현동 기자 2014.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