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개발의 역사를 함께한 차량길 ‘서울역 고가도로’가 보행 전용길 ‘서울로 7017’로 다시 돌아왔다. 5월 20일 문을 연 서울로 7017은 국내 첫 고가 보행길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듯 개장 9일 만에 방문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서울 도심 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로 7017을 걸어봤다.
때 이른 더위로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육박하는 초여름, 복잡하게 얽힌 차도 위에 세워진 서울로 7017에 아침부터 많은 시민이 찾아왔다. 고가 곳곳에서 안개 분수가 뿜어져 나와 이른 더위에 지친 시민의 땀을 식혀줬다. 한가롭게 고가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고가 밑에서 바삐 움직이는 차들과 대비돼 더욱 여유롭게 느껴진다.
걸어 다니며 서울 시가지를 볼 수 있는 서울로 7017은 그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이 사진이라면 서울로 7017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증강현실에 가깝다. 주변을 둘러싼 서울역, 숭례문, N서울타워 등 서울의 랜드마크와 잘 정비된 고층 건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로 7017이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될 이유는 충분하다.
▶ 5월 20일 개장한 서울로 7017을 방문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
▶ 서울로 7017에 있는 방방놀이터에서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아이들이 고가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서울시
식물 2만 4000여 그루가 있는 공중정원
서울로 7017은 1970년에 지어져 마포구 만리재로와 중구 퇴계로를 연결하는 차도였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2017년에 높이 17m의 17개 보행길로 탈바꿈시켰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난 5월 20일 처음 공개된 서울로 7017은 이미 개장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안전등급 D를 받을 정도로 낡고 위험해 철거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던 곳.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보행길로 재탄생시켰다.
고가에 오르자 동그란 콘크리트 화분 ‘트리포트’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50개 과 228종 식물 2만 4000여 그루를 심은 트리포트는 회현역에 있는 가지과부터 만리동 방향에 있는 회양목과까지 가나다순으로 식재돼 있다. 트리포트 중 기증받은 식물에 세워진 작은 팻말에는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메시지가 쓰여 있어 그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울로 7017에 있는 식물의 숨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해설이 있는 서울로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매주 월·수 하루 두 번 ‘서울로 초록산책단’의 해설을 들으면서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해설이 있는 산책은 7월부터 월·수·토 주 3회로 확대 편성된다. 한 팀당 최대 15명으로 운영하며 단체인 경우 전화로 예약이 가능하다.
걷다 보니 길쭉한 조명 폴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 폴은 밤이 되면 푸른빛을 뿜어 무릉도원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조명 폴은 빛을 내는 것 외에 스피커, CCTV, 비상벨, 태양광 시설 등으로도 쓰인다. 안전을 위해 경비인원 16명이 상시 대기하고 있으며, 주변 경찰서에서 수시로 순찰을 돌 예정이다.
길 곳곳에 있는 공중자연쉼터에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이 많았다. 동그란 족욕탕 안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던 도경순 씨는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평일에 오니 한결 여유가 있다”며 “갈수록 날씨가 더워지는데 족욕탕뿐 아니라 방문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족욕탕, 노천 보드게임 카페 등 편의시설 갖춰
공중에서 보이는 서울 시가지를 스케치하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 시가지를 그리고 있던 최혜영 씨는 “이곳에 오니 도로 한복판에 앉아 있는 기분이라 색다르다”며 “서울로에서 바라본 도시 모습을 남기고 싶어 스케치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공중 자연쉼터 인근의 방방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로를 찾은 어린이들만의 명소로, 트램펄린 하나당 신장 150cm 이하 어린이 두 명이 뛰어놀 수 있다. 방방놀이터 바로 옆에 있는 ‘호기심화분’에는 숭례문을 배경으로 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볼 수 있다. 트램펄린을 탈 차례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이 화분에 난 구멍에 얼굴을 가져다 대곤 연신 “우와”, “신기하다”를 외쳤다.
서울로 7017에서는 방방놀이터, 공중 자연쉼터, 호기심화분 등 상설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문화 콘텐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평일에 서울로를 방문하는 직장인을 위해 예술상담소, 노천 보드게임 카페, 거리 예술공연 등을 준비했다. 퇴근 후 찾는 직장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주로 저녁시간에 시작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 만들기 체험, 식물 드로잉, 서울로 공감각 체험 등 체험 활동도 마련돼 있다. 해설이 있는 산책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은 따로 예약할 필요 없이 현장에서 바로 참여가 가능하다.
방문객이 먹고 즐길 수 있는 식음시설도 있다. 시설이 위치한 곳에 있는 식물의 이름을 따 ‘장미김밥’, ‘수국식빵’, ‘목련다방’, ‘도토리풀빵’ 등에서는 다채로운 메뉴를 준비해 방문객의 입맛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특히 비빔밥을 메인으로 판매하는 ‘7017서울화반’은 서울시에서 정한 명예 셰프 10인이 연중 릴레이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안준호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서울로 7017에 설치된 다양한 편의시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1000만 서울시민의 환대를 전하고, 서울시민에게는 글로벌한 체험과 교류가 가능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편의시설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갖춘 서울로가 서울을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관광명소 1번지가 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