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innods/images/000198/강형원_신종_640.jpg)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국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이다. 신라 시대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범종(梵鐘)이다. 신라 성덕대왕의 공을 알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실패를 거듭하다 34년 만인 771년 성덕왕의 손자 혜공왕(惠恭王)이 어렵사리 완성시켰다. 무려 1만 8900㎏의 구리를 녹여 만들어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소리를 낸다. 처음에 경주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 봉덕사종이라고 하고,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설화로 인해 ‘에밀레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번 듣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소리’라는 뜻의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이 적혀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에는 용왕의 아들이라는 포뢰의 머리 모양이 조각돼 있다. 종의 맨 위에는 타종할 때 파상되는 잡음을 제거하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이 있다. 음통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볼 수 있다. 몸통의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 모양으로 두 개의 당좌(撞座)가 있다. 종을 치는 나무 막대인 당목(撞木)은 고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교학 전문가인 동국대 한정호 교수는 “상상의 동물인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해서 당목이 연꽃을 치면 종소리를 지른다”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사찰들이 없어질 때에도 성덕대왕신종은 세종의 명으로 살아남았다. 세종실록에는 ‘무게는 구리(銅) 12만 근인데 치면 소리가 100여 리까지 들린다’고 기록돼 있다. 또 세종 6년 (1424년) 5월 3일 임금의 명령을 전달한다는 전지(傳旨)에 의하면 ‘경상도 경주 봉덕사의 큰 종은 제거하지 말라(慶尙道 慶州 奉德寺大鍾 勿毁)’고 기록돼 있다.
![강형원](http://www.korea.kr/goNewsRes/attaches/innods/images/000198/강형원.jpg)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