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 허용
경기 의왕시의 한 이탈리안 식당. 채민이 씨가 반려견 ‘아리’와 나란히 식탁 앞에 앉았다. 얼마 뒤 테이블 위에는 채 씨가 지인들과 먹기 위해 주문한 피자와 파스타, 음료가 서빙됐다. 아리가 먹을 토마토 미트볼 파스타도 바로 옆자리에 놓였다. 반려견 전용 메뉴다. 채 씨가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주자 아리는 제자리에서 음식을 받아먹었다. 아리를 챙기며 채 씨도 지인들과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배를 채운 아리는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식당에 가더라도 식사하는 동안 반려견을 케이지나 유모차에 넣어둬야 해요. 저만 밥을 먹고 있자니 늘 마음이 불편해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나오기 바빴죠. 반려견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상황은 사실상 ‘동반’의 의미가 무색하다고 느껴요. 이곳처럼 반려동물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현실 반영 못한 법 개선
채 씨의 바람대로 앞으로는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겸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을 규제샌드박스 시범사업으로 허용한 덕이다. 규제샌드박스란 신산업이나 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일정 조건(시간·장소·규모)에서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식약처는 규제혁신 100대 과제의 하나로 반려동물의 음식점 동반 출입을 선정하고 2022년 12월부터 이와 관련해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 등 식품접객업소에 대한 반려동물 동반 출입 여부를 영업자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반려동물 동반 음식점·카페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접객업소 안에서 반려동물과 보호자는 분리돼야 한다. 동반 취식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동반 입장도 법에 어긋난다. 한곳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으며 반려동물 시설은 외부나 별도로 구분된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관련법을 인지하지 못한 반려동물 동반 외식업소들 중에는 동반 입장 및 취식을 허용하고 있는 곳이 많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외식업소가 부족하다”며 “관련 업체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관광공사의 ‘2022 반려동물 동반여행 실태조사’에서는 반려동물과 여행 시 생기는 불편사항으로 응답자의 49.5%가 ‘동반 가능 음식점 및 카페 부족’을 꼽았다.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식약처의 이번 시범사업은 이 같은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식약처는 전국 총 10곳, 98개 매장을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으로 승인했다(2023년 10월 기준). 그중 4곳, 38개 매장은 사업을 개시해 운영 중이다. 참여업체는 영업 개시일로부터 2년간 시범 운영을 하게 된다.
‘홍삼계탕’, ‘멍푸치노’… 동물 메뉴 구비
프리미엄 반려동물 복합시설 코코스퀘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디 코코는 국내 최초로 반려동물 동반 식당 시범사업 업체로 선정돼 지난 4월부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플래그십스토어 트라노이 신사점(11월 중 오픈 예정)을 비롯해 코코스퀘어에서 운영하는 반려동물 동반 식당 네 곳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의왕시 매장(코코스퀘어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점)을 찾은 날, 평일임에도 식당 안은 반려동물과 보호자로 붐볐다. 매장에서 먼저 눈에 띄는 건 테이블마다 비치된 정보무늬(QR)코드였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이용해 반드시 반려동물 접종 등록 여부를 인증해야 한다. 즉 기본 예방접종이 모두 완료된 동물만 입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20㎏을 넘지 않는 반려견만 출입이 가능하다.
메뉴판의 ‘반려동물 전용 메뉴’도 시선을 끌었다. 닭 안심 도시락, 소고기 도시락, 토마토 미트볼 파스타를 비롯해 홍삼계탕 같은 국물요리도 있었다. 모두 매장에서 직접 요리한 ‘화식(火食)’이다. 황인수 코코스퀘어 F&B 파트장은 “반려동물의 기호성이 높은 것들로 메뉴를 꾸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알레르기다. 알레르기가 있는 동물들을 위해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들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음식을 주문하면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메뉴가 함께 나온다. 다만 그릇은 한눈에 봐도 명확히 구분된다. 반려동물의 음식은 떨어져도 깨지지 않는 실리콘 소재에 담겨 나온다. 그릇에 담긴 음식은 설명하지 않으면 사람용 메뉴로 착각할 정도였다. 황 파트장은 “이곳에서 제공하는 반려동물 전용 메뉴는 아주 좋은 재료들로 만들고 있다. 입맛에 맞지 않을 뿐 사람이 먹어도 문제없다”고 귀띔했다. 디저트 메뉴 중에는 반려견을 위한 ‘멍푸치노’도 있다. 멍멍이(개)가 먹는 카푸치노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개발바닥 모양의 라테아트가 하얀 우유 거품 위에 앙증맞게 그려져 있었다.
매장에는 반려동물 전용 식탁도 구비돼 있다. 여느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아기의자’를 연상케 했다. 식탁 앞쪽엔 물그릇과 밥그릇을 하나씩 놓을 수 있게 돼 있다. 매장 내 반려견들은 식탁에 앉거나 보호자 무릎에 앉아 나란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온 공훈남 씨는 “우리나라에선 반려동물이 10㎏만 넘어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이곳에선 여유롭게 식사까지 할 수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반려견과 외출할 땐 늘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마른 간식만 챙겨 다녔는데 여기선 반려견에게도 맛있는 걸 먹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반려견 식기 분리 등 ‘위생관리’ 철저
문제는 가격이다. 일부 음식점 중에는 동물 출입을 허용한다는 이유로 음식값을 비싸게 책정하는 곳도 있다. ‘위생’도 중요한 문제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식사하는 공간인 만큼 매장에서는 식기관리와 청소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이곳에서는 식기는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함께 쓰지 않도록 안내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철저히 분리한다. 식탁 의자도 반려동물이 사용하는 것을 따로 마련해뒀다. 또 매장에는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거나 버릴 수 있는 세정제와 걸레, 휴지통도 곳곳에 구비돼 있다.
매장에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장치들도 보였다. 벽에 걸린 후크는 반려동물이 의자에 앉아있지 않을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보호자가 식사하는 동안 반려동물이 돌아다닐 수 없도록 리드줄은 반드시 후크에 걸어둬야 한다. 반려동물은 의자와 케이지 등 전용공간 외에는 풀어둘 수 없고 항상 목줄을 착용해야 한다. 다른 테이블의 반려견과 접촉하지 않도록 매장에는 리드줄을 짧게 유지하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법에 정해진 맹견은 입장할 수 없고 짖음과 공격성이 심한 동물은 매장 이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호자 없이 반려견을 혼자 두면 안 되고 보호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안전사고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매장 직원 오인선 씨는 “직원들은 서빙하면서 반려동물을 만지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손님들도 다른 보호자의 동물에게 다가갈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펫 프렌들리’ 정책 맞물려 산업 활성화
일각에서는 음식점 내 반려동물 출입을 허용할 경우 비반려인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현장의 생각은 다르다. 오인선 씨는 “매장 출입구에는 반려동물 동반 출입이 허용되는 음식점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표시가 있다. 애초에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출입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는 반려동물의 음식점 출입이 제도화되면 신규 창업과 고용창출 등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반려동물 산업은 더욱 활성화되는 추세다. 식약처는 오는 2027년이면 반려동물 연관산업 규모가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관련 업계에서는 쇼핑몰과 호텔, 카페 등이 반려동물 입장을 허용하는 ‘펫 프렌들리(Pet-friendly)’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하성동 코코스퀘어 대표는 “사회가 디지털화되고 삭막해질수록 반려동물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으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려인과 반려동물은 물론 비반려인까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업계의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식약처는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에 대한 2년간의 시범사업 운영 결과를 토대로 운영상 문제점을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시범사업 참여업체는 반려동물 동반 식음시설의 서비스 표준화와 인증제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이후 학계, 소비자단체 등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관련 법령 개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 규제혁신 100대 과제 선정
물림사고·전염병 예방 위해 매장 내 이동은 금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2년 8월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을 규제혁신 100대 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12월부터 시범사업으로 허용했다. 반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반려동물과 동반 출입이 가능한 음식점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진 데 따른 조치다. 현행 규정에서는 식당, 카페 등 음식을 취급하는 시설과 반려동물의 출입·전시·사육이 수반되는 시설은 완전히 분리되도록 하고 있다.
식약처는 식품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범사업 참여업체를 대상으로 ‘반려동물 동반 출입 음식점 운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관리한다. 주요 내용은 ▲소비자가 출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영업소 출입구 등에 반려동물 출입 여부 고지 ▲음식물 제공·진열 시 이물 등 혼입 예방 조치(덮개 등) ▲물림사고·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한 반려동물 이동금지(목줄 고정) 등이다.
김유미 식약처 차장은 “반려동물로 인한 식품 위생 사고나 개물림 등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식약처가 제공한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반려동물 출입을 싫어하는 소비자도 있는 만큼 출입 전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를 소비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고지의무를 확실히 지켜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