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center[/SET_IMAGE]1999년 5월 광주의 한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던 자궁경부암 환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인은 방사선 과다 조사(照射). 이들은 사고 당시 배설기관(직장)과 생식기관(자궁)을 가르는 벽이 방사선에 녹아 없어진 상태였다. 이들 말고도 같은 병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치료받은 8명의 여성 환자에게서도 방사선 장애가 나타났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당시 우리나라 방사선 치료의 현주소였다.
1999년 9월 어느 날,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방사선표준과 아침회의 시간. 직원 다섯 명이 업무현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 없는 회의였지만, 회의 말미에 연구사인 김귀야 박사가 불쑥 새로운 의제를 꺼냈다.
“언제까지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방사선 치료 문제를 계속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우리 부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비록 제도적 뒷받침이 없지만 철저한 전문성을 갖고 관계자들의 신뢰를 얻어 간다면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텐데요.”
김 박사가 제기한 문제는 의료기관의 방사선 ‘선량(線量)보증’에 관한 것이었다. 선량보증사업은 환자가 쐬는 치료 방사선량의 정확성을 정부가 측정해 평가하는 방사선 안전관리의 핵심 업무다. 이 문제는 그동안 뚜렷한 법 규정이 없어 각 부처가 서로 눈치만 살피던 ‘뜨거운 감자’였다. 심지어 환자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청이 서로 책임 소재를 미룰 정도였다.
그러나 관리가 허술하고 사고의 책임 소재마저 불분명하다고 해서 방사선 치료법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매년 발생하는 10만여 명의 암환자 가운데 50∼60%가 방사선 치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대부분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나서서 선량보증을 해왔지만, 우리나라는 1998년까지 국제기구가 측정하는 선량보증업무에 식약청이 보조 역할을 할 뿐이었다. 2000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국내 9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량보증검사에서 3개 기관이 허용 한계를 초과했을 만큼 국내 치료방사선 관리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날 김 박사의 ‘직무유기’ 발언을 계기로 식약청 내에서는 방사선 치료기기 관리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방사선표준과 이현구 씨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방관하는 것은 식약청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잃는 것이라는 위기감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고 말했다.
[B]실태파악 위해 3개월간 전국 누벼[/B]
이를 토대로 식약청이 가장 먼저 세운 목표는 정기적인 선량보증사업체계 구축이었다. 이를 위해 방사선표준과는 당시 43개에 이르는 전국 방사선 치료 기관에 대한 실사를 했다. 말이 ‘실사’였지, 현실은 직원 2명이 40kg이 넘는 장비를 들고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대장정’이었다. 꼬박 3개월 동안 벌인 실사 결과 국내 병원의 현실은 암울했다.
김 박사는 “방사선량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기가 단 한 개도 없거나, 측정하고 나서도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없는 병원이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한다. 상당수의 의료기관이 선량 측정에 반드시 필요한 측정 보조기인 ‘물 팬텀(water phantom : 환자가 받는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모의 피폭체)’조차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뒤 식약청은 자체 예산을 확보해 물 팬텀을 제작·대여하는 등 의료기관들이 난제를 풀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구해 나갔다. 아울러 IAEA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2000년 방사선표준과 직원을 파견해 자체적인 선량보증시스템도 구축했다.
또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치료방사선 선량보증에 관한 규정’(식약청 고시 2004-2호)도 제정했다. 이 규정은 의료기관을 강제로 규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식약청의 업무 수행에 대한 절차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전국의 방사선사와 의학물리사 250여 명에게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 업무의 중요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다.
이밖에 방사선량의 정확도를 파악하면서 여건이 좋지 않은 의료기관에는 관련 기술을 지원하고, 허용 한계를 초과한 병원에는 재측정 및 원인 분석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선량보증 측정 결과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의료기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이에 대한 시정작업을 벌였다. 이와 함께 소정의 선량 측정을 마친 의료기관에는 식약청 명의의 선량보증서를 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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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종양학과의 한 교수는 “처음에는 식약청이 선량보증에 나선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외부 전문가에게 방사선량의 정확도를 언급할 때 식약청의 선량보증서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의 관리에 대한 민간병원의 인식이 차츰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B]방사선량 측정 기술 해외에까지 전수[/B]
물론 이 같은 신뢰 관계를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니었다. 방사선표준과는 최근 유럽 선량보증기관(ESTRO)과의 비교측정을 통해 정확성에 대한 공신력을 국제적으로 검증받았다. 방사선표준과 정희교 과장은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됐던 기존의 방사선 측정기 교정 업무를 민간기관에 이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량보증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1999년 이후 치료용 방사선 관련 의료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4년 10월 말 현재 국내 54개 치료기관의 127대 방사선 치료기기 전체가 식약청의 선량보증을 받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방사선 후진국으로 불리던 오명을 벗은 것이다.
식약청은 이번 혁신 사업을 통해 국민 건강뿐 아니라 기술력과 자신감도 함께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아가 식약청은 지난해 ‘아시아, 태평양 치료방사선 품질보증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계획해 유엔개발계획(UNDP)으로부터 3년간 3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식약청은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12개국, 라틴아메리카 10개국과 선량보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술 전수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방사선표준과 정희교 과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한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치료방사선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한 지난 5년의 성과는 어쩌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5년, 10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의료방사선의 로드맵 작성을 위한 ‘의료방사선의 품질관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임상 수준에 가까운 선량보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RIGHT]김현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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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