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꺼내 자일에 대는 동작은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툭! 칼을 대는 순간, 체중이 실려 팽팽해져 있는 자일은 쉽게 끊어질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이었다. 강식의 고통도, 나의 고통도, 둘 사이에 처한 이 처절한 지옥의 순간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박정헌, <끈>)
2005년 1월 16일, 히말라야 촐라체(6,440미터) 북벽에서 하산하던 중 후배가 빙하의 균열로 생긴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 2인 1조 등반에서 서로 끈으로 연결되어 있던 선배도 이 사고의 순간에 갈비뼈를 다쳐 제대로 끈을 당기기 어렵다. 강추위와 칼바람은 살인적이다. 이대로 허둥대다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그 불안이 칼을 떠올리게 한다. 툭, 칼을 대면 끈은 끊어지고, 그러면 후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함께 등반을 떠나던 날부터 강식은 내게 있어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자일파티의 운명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혼자라도 살겠다고 자일을 자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에 알파인 스타일로 촐라체 북벽에 도전하는 것은 이들이 세계 최초였다.
당시 촉망받던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 그들은 어떤 경로를 택하든 등정을 목표로 하는 등정(登頂)주의를 넘어 난도 높은 경로를 택하는 등로(登路)주의를 택해, 그것도 겨울에, 알피니스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촐라체 북벽을 오르는 길은 험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계 최초로 그 빙벽을 넘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경로가 지난했던만큼 그 길에서 본 히말라야의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자태 사이로 붉게 물든 노을이 실타래처럼 번져 나갔다. 햇빛을 받은 바위벽들은 정상부에 하얀 눈 모자를 뒤집어쓴 채 황금빛으로 달아올랐다. 천만금을 주고도 감상할 수 없는 초자연의 비경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그들은 5,300미터 크레바스에 빠져 300년 후에 미라로 발견될지도 모를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봉착한 것이다. 끈을 끊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졌던 박정헌은, 잠시라도 그런 미혹에서 헤매었던 자신을 탓하면서 거세게 머리를 흔든다. 함께 죽거나 함께 사는 길을 선택한다. 공동 운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속죄라도 하는 심정으로 크레바스 아래를 향해 외친다. “강식아, 기운 내. 어서 줄을 타고 올라와!” 그러자 기적처럼 줄이 끌려 올라온다.
“강식은 두 팔을 이용해 있는 힘껏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두어 번 용을 쓰자 거짓말처럼 자일이 위쪽으로 끌려 올라왔다. 피켈을 이용해 체중을 벽으로 분산시킨 때문이었다. 나는 자일을 당길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과 싸워야 했다. 부러진 뼈가 내장을 짓누르는지 명치 부근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다. 입에서 짐승처럼 ‘으으’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기 드릴에 가슴을 내맡긴 듯 나는 몸을 연신 부들부들 떨었다.”
끈을 잘라버리자는 인간적인 번민을 승화시킨 산악인의 형제애가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 감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언제부터일까. 사람들 사이에 이런 끈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개인적 이익이나 자기 보신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공공의 광장은 황량하고 그에 따라 공동선의 자리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공동선을 위한 ‘끈’의 부활이 절실하다. 침울한 분위기에서 부활절을 보내면서 고민이 많다. 이 실화를 모티프로 쓴 소설 <촐라체>에서 박범신은 이렇게 적었다. “나 혼자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 내가 포기하면 영교도 죽는다. 그러니, 함께 가야 한다. 나도, 영교도, 혼자만의 힘으로 갈 수는 없다. 내가 앞에서 끄는 힘과 그가 뒤에서 의지를 갖고 기는 힘이 보태져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상식쯤은 나눠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글 ·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