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다리 건너가 소이산이여. 가보면 사진 찍을 게 많아. 나는 어제 갔다왔어. 지금이야 산에 가지, 초등학교 시절뿐만 아니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산에 못 올라갔어.”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인은 철원 토박이라고 했다. 그녀는 노동당사 주변에서 캔 민들레 나물을 다듬는다. 노란 꽃을 피웠는데도 잎이 연하다. 쌉쌀한 민들레 장아찌를 담근단다.
여인이 가리키는 곳은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고 논을 지나서 다시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고 가장자리에 밭을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산은 봄빛에 흐드러진다. 따스한 햇볕에 나무들이 몽실몽실 푸른 잎을 키웠다.
소이산(362.3미터)은 철원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시절에 도시락을 싸 들고 소풍 한번 갔을 만한 산이다. 정상에 서면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조망은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 못지 않다. 소이산은 멀리서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야산처럼 보이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굴곡 많은 현대사를 오롯이 겪어낸 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0년 만에 풀린 민간인 출입통제
소이산은 6·25전쟁 이후 민간인 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 지역으로 묶여 있다가 해제된 산이다. 그러나 해제 뒤에도 군사 목적으로 매설한 지뢰 때문에 민간인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산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60년 동안 풀, 나무가 우거졌고 동물이 찾아들었다. 산은 그들을 품고 키워 다시 울창한 숲을 일궜다.
이런 소이산을 2011년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하여 길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일반인들 발길이 잦아졌다. 2012년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로 정식 문을 열었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노동당사에서 시작한다. 노동당사는 1945년 8·15 광복 뒤 북한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로 6·25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였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으려고 마을마다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다고 한다.
현재는 외벽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했단다. 외벽에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당시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준다. 건물 골조 너머로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이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노동당사와 마주보는 산이 소이산이다. 우리는 여인이 알려준 방향으로 걷는다. 주차장 왼쪽 방면에 나무 모양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지도가 보인다. 지도를 확인하고 논두렁을 따라서 소이산으로 향한다. 들녘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평화로운데 북쪽 방향 도로에서는 군인들이 지나가는 차량들을 검문한다.
초소 옆 표지판에 ‘전망대 7킬로미터, 백마고지 4킬로미터’가 적혀 있다.
논두렁을 지나면 차들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 길을 만난다. 가로로 이어진 비포장 길은 양쪽 모두 소이산으로 갈 수 있다. 왼쪽은 소이산 정상으로 바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소이산 둘레를 돌아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으로 가는 짧은 코스보다는 둘레를 걷는 길을 추천한다.
철망 쳐진 지뢰꽃길 끝은 정자가 있는 쉼터
소이산 입구에는 작은 쉼터가 있다. 입구 주변은 공사 중인지 어수선하다. 쉼터에는 시를 적어 놓은 나무판과 의자가 있다. 의자에 앉아서 노동당사와 주변 들녘을 바라본다. 쉼터에는 정춘근 시인이 쓴 시 ‘라면 여덟 상자’가 눈길을 끈다.
“경로당에 모여 / 기억 속에 똬리 틀은 고향 자랑을 / 국수 타래처럼 풀어내던 노인들 /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는데 / 만물박사 평양 김씨 / 라면 한 개 풀면 오십 미터라 한 것뿐인데 / 셈이 빠른 황해도 최씨 노인 / 휴전선 이십 리는 라면 여덟 상자라 / 속없이 이야기한 것뿐인데 / 오늘 라면은 매웠나 보네요 / 노인들 눈자위가 붉은 것을 보면 / 라면을 그대로 남긴 것을 보면 (생략)”
고향에 갈 수 없는 노인들의 마음이 닿은 것일까. 아릿한 통증이 눈시울을 적신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고 본격적으로 생태숲 녹색길을 걷는다.
길 오른쪽은 지뢰라는 경고판과 함께 지뢰지대로 출입을 절대 금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오른쪽 산사면은 지뢰 매설 확인이 끝나지 않아서 출입을 막았다.
철망 안쪽에는 말발도리, 산벚나무 등 인위적으로 식물과 나무를 심어놓았다. 생태숲이라고 하면서 관상용 식물과 나무들이 먼저 반기니 기분이 묘하다.
지뢰 경고판이 붙은 철망 밖에는 귀룽나무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 귀룽나무 뒤편으로 온통 아까시나무다. 이 나무는 황폐한 땅에 먼저 들어오는 수종이다. 아까시나무에 이제 막 새순이 돋는다. 5월에는 아까시꽃이 흐드러지겠다.
철망이 쳐져 있는 길은 ‘지뢰꽃길’이다. 철원이 고향인 정춘근 시인의 시 ‘지뢰꽃’에서 도움을 얻어 지은 이름이다. 지뢰꽃길 끝은 정자가 있는 쉼터다. 철원에서 소풍을 온 가족들이 김밥을 먹는다. 동네 산처럼 소이산이 조금씩 친근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지뢰꽃길이 끝나고 생태숲길이다. 오른쪽을 막고 있던 철망이 사라지고 들녘에 자리한 대마리 일대가 보인다. 시원한 조망이 나타나자 쉬면서 볼 수 있게 나무 데크가 놓여 있다.
임도를 따라 정상까지는 ‘봉수대 오름길’
산 남쪽에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다. 나뭇잎이 비슷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이름표가 붙어 있어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소이산 정상에는 고려시대부터 통신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봉수대가 설치돼 있다. 함경도 경흥에서 회령, 함흥, 철원, 양주, 서울 남산으로 연결되는 경흥선 봉수로에 속한다. 소이산은 낮지만 철원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군사적 요지이다. 그래서 6·25전쟁 당시에도 미군 레이더 기지로 이용되었다.
전망대에는 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 잠깐 둘러보고 시야가 탁 트인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으로 이동한다. 전망대 밑의 화장실 건너편이 공원이다. 군인들이 사용하던 기지를 활용하여 전시관과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시원한 벙커 안에서 소‘ 이산 전투’ 기록도 읽어보고 헬기장에서 철원평야도 조망한다.
남방한계선을 따라서 철원역, 아이스크림고지, 철원평화전망대, 철새도래지 김일성고지 등을 짚어본다. 철원평야, 평강고원 너머 지평선 끝자락이 가물가물하다. 손에 닿을 듯 멀어지는 지평선이 그립고 아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그리움을 접었던가. 끝나지 않는 그리움은 칼날이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