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체험해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떠나고 싶다고?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을 통해 집에서 해설을 들으며 온라인으로 명소를 돌아보는 랜선 여행 상품이 나왔다. 2월 25일까지 한국어 해설이 담긴 내국인 상품 6종과 영어 해설이 있는 외국인 상품 9종을 판매한다. 한국인 대상은 마이리얼트립(myrealtrip.com)에서, 외국인 대상은 바이에이터(Viator)와 케이케이데이(Kkday)에서 ‘코리아 버추얼 투어(Korea Virtual Tour)’를 검색해볼 수 있다. 지역 특산품으로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해줄 ‘집콕여행꾸러미’도 나왔다. 총 6종으로, 2월 25일까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온라인 숍 29CM에서 살 수 있다. 그중 랜선 타고 떠나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을 3일간 체험해봤다. 1일 1도시 체험이다. 경주 찍고, 군산 찍고, 대구 찍고!
잊고 살았던 여행 플랫폼에 로그인했다. 마이리얼트립 누리집에 ‘랜선으로 떠나는 실시간 국내 여행’ 바로가기 창이 뜬다. 새롭게 연 랜선 국내 여행을 통해 경주, 군산, 대구를 둘러본다. 어디는 익숙하고 어디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어디부터 보면 될까. 한 곳씩 창을 열어 상품 설명을 훑어본다. 여행의 내용과 루트, 그리고 함께할 가이드 소개가 나와 있다. 최대 7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에 패키지여행 울렁증이 꿀렁거렸지만, 4900원 특가에 세 군데나 예약했다.
이(e)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예약 확인을 한 뒤 랜선 여행에 참여할 방법이 안내되고, 여행 출발 시간 30분 전에 전용 누리집 주소(URL)가 전송되었다. 1월 20일 밤 8시 45분 식탁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천년신라 문화유적과 발굴 현장 찾아
유튜브 생방송에 접속했더니 경주의 ‘동궁과 월지’ 야경이 화면에 떠 있고 오른쪽으로 실시간 채팅 창이 준비되어 있다. 여행자들이 채팅 창에서 인사를 했다. 잠시 뒤 안지영 가이드가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는 90분가량 진행하는 여행이라고 환기시키며 화장실과 마실 거리 등 준비사항을 안내했다. 저녁 9시 정각, ‘안지영 가이드의 요즘 경주’ 랜선 여행이 시작됐다.
10년 경력의 안 씨는 역사 전공자답게 천년신라의 문화유적과 발굴 현장을 찾아 경주를 안내했다. 은둔의 땅에 숨어 있는 역사를 캐내는 고고학자들의 발굴 이야기를 할 때는 자료 사진을 보여줘 생생함을 더했다. 요즘 고고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다는 ‘쪽샘유적’을 설명할 때는 신선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학창시절부터 들어왔던 천마총, 황남대총, 월성, 첨성대 설명이 이어졌다. 이름은 익숙했지만 미처 몰랐던 공부를 하는 듯했다. 마지막 코스로 안지영 가이드는 요즘의 경주로 안내했다. 황리단길이다. 서울의 유명 거리에 붙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황리단길은 경주의 새로운 명소다. 1960~1970년대 지은 구옥과 한옥이 고스란히 보전된 골목 곳곳에 복고풍(레트로) 감성이 물신난다. 여행의 종착지인 황리단길에서 3년 전에 방문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경주 랜선 여행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두 시간이 지나서 끝났다. 50명이 넘는 여행자가 참여했다. ‘안지영 가이드의 요즘 경주’ 랜선 여행은 문화유산답사기에 가까웠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권한다. 아이와 함께해도 좋겠다.
근대의 아픈 기억을 품은 월명동으로
이튿날 떠난 랜선 여행지는 전라북도 군산이었다. 모든 여행 준비와 절차는 경주 때와 같다. 군산 랜선 여행의 주제는 ‘타임슬립’이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 군산을, 안희선 가이드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안내했다.
먼저 군산의 지형부터 살핀다. 지형을 설명하던 가이드가 갑자기 질문했다. “고군산군도는 몇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채팅창에 70개, 60개 의견이 분분하다. 가이드는 곧 지도를 화면에 띄워 설명했다.
잠시 뒤 본격 여행이 시작된다. 이층 버스가 화면에 보인다. 우리의 발걸음을 대신해줄 버스란다. 그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버스가 해안가를 달린다. 이때 가이드는 창가 너머로 형형색색의 등대를 보라고 말한다. 버스는 신선이 놀다 갔다고 알려진 선유도에 도착했다.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지로 서해의 요충지다. 선유도 해변을 걷는 누군가의 발이 보인다. 마치 내가 걷는 것처럼.
다음 목적지는 근대의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경제의 중심지였던 월명동이다. 이곳에는 일본식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이어 군산의 옛 시가지인 항구 쪽으로 향한다. 장미동 일대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군산세관, 미즈상사 등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축물이 포진해 있다. 장미동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다음은 ‘맛’이란 주제를 따라 군산의 1940년대를 여행했다. 물짜장으로 유명한 영화원과 빵집 이성당을 들렀다. 숨겨진 노포의 역사 속에서 시대를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은 1970년대 경암동 철길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해방 이후 살집이 없는 사람들이 철길 옆에 판자촌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2008년까지 기차가 운행되었다고 한다. 그다음 1998년으로 시간 여행을 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장소로 이동했다. 복원된 초원사진관 영상 아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작게 띄워 여행자들을 영화 속으로 초대한다.
안 씨는 마지막으로 현재의 군산을 보여준다. 군산은 근대역사를 품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시를 ‘재생’했다. 그야말로 ‘헬로 모던(Hello, Modern)’이다. 가이드는 선유도의 마스코트 꽃게 포즈를 지으며 두 시간가량 진행된 군산여행을 마무리했다. 통통 튀는 여행이었다.
이중섭 화가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마지막 랜선 여행지는 대구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여행이다. ‘이중섭 투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미술관 가이드를 했던 이남일 가이드가 함께했다.
이남일 씨는 이중섭의 발자취를 찾아 대구역으로 안내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1912년에 지어진 대구역의 과거 사진이 화면에 뜬다. 이남일 가이드는 대구역과 중앙로가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와 닮았다고 말한다. 익숙한 도시가 색다르게 보였다.
이어 6·25전쟁 당시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이 전쟁을 피해 모여들었던 북성로 향촌동으로 떠났다. 현 대구역 맞은편에 있다. 이중섭 화가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중섭이 그려 준 표지화로 유명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를 발표했던 꽃자리 다방, 이중섭이 그림을 즐겨 그렸던 백록다방, 이중섭이 구석에서 노래 들었던 우리나라 1호 음악 감상실 녹향, 이중섭이 묵었던 경복여관, 이중섭 전시회가 열렸던 미국 공보원을 둘러보았다.
이어진 이 씨의 이중섭 그림 해설은 백미였다. “고흐가 떠올라요. 이중섭에게 영향을 많이 준 화가는 프랑스 표현주의 조르주 루오예요. 색채와 정제되지 않은 선이 닮았죠. 그러나 스토리적으로 이중섭과 더 닮은 화가는 고흐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를 자화상과 편지, 죽음으로 비교해 설명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해석이었다.
이중섭 화가에 대한 오해도 바로 잡았다.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학계는 이중섭의 은지화에 대해 이중섭이 성인이 되기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예술적 시도’로 보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남일 가이드는 파리의 카페가 매력적인 이유를 피카소, 나폴레옹 등 유명인이 방문했던 카페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매력이 대구에도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 매력을 여행자들도 느끼길 바란다며, 이 씨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개화기 복장 대여료 할인(향촌부띠끄), 공간 이용료 할인(대화의 장), 디저트 제공(꽃자리다방) 쿠폰을 줬다. 현장에서 대구 랜선 여행을 인증하면 바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남일 가이드의 대구 이중섭 투어’는 그림 해설과 함께 이중섭 화가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대구의 근현대 흔적까지 둘러본 랜선 여행이었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