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헌 성우농장 대표│이도헌
전국 시·군에서 가장 많은 돼지를 키우는 곳은 충남 홍성이다. 홍성군이 집계한 최근 3년간 돼지 사육두수 현황에 따르면, 관내 돼지 사육두수는 ▲2017년 53만 637두(349농가) ▲2018년 56만 3927두(348농가) ▲2019년 60만 5470두(341농가)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실제 홍성군에 들어서면 곳곳이 돼지 사육농장이다.
돼지를 기르는 홍성 관내의 여러 마을 중에서도 전국 양돈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 결성면 원천마을이다. 홍성은 물론 다른 지역 양돈업계 관계자들도 견학할 정도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이도헌 대표가 운영하는 성우농장이다.
성우농장은 돼지농장에 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양돈 기술로 악취와 수질오염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은 과거보다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농장에서 나오는 처치 곤란인 분뇨를 이용해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파생상품 전문가에서 돼지농장 주인으로 변신한 이도헌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그동안 만난 농부들과 사뭇 달랐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농업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면서 만난 농업인 중에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 대표는 이 일이 아니어도 폼 나게 할 일이 아주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도헌 대표가 사물인터넷 기술이 접목된 최첨단 스마트 농장을 소개하고 있다.
월가 펀드매니저에서 돼지농장 주인으로
이 대표는 국내 파생상품 1세대다. 공대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입학해서 금융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줄곧 금융과 관련된 일을 했다. 1990년대 한 증권사에 입사해 뉴욕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 월가에서 헤지펀드(단기간에 고수익을 추구하는 민간투자 신탁) 운용에 참여하며 첨단 금융기법을 배웠다. 1995년에는 28세의 나이로 금융 컨설팅-정보통신기술(ICT) 회사를 설립해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한 경험도 있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 인도네시아 자문 역,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귀국해 증권사에서 해외사업 담당 상무를 맡았다. 그는 43세 되던 2010년 금융업에서 더는 개인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 업계를 떠나 결국 돼지농장 주인이 됐다. 인생 2막에 나선 것이다.
그는 현재 돼지농장 경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전문가가 됐지만 처음에는 돼지농장을 직접 운영할 생각이 없었다. 투자만 할 계획이었다.
그는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돼지값이 폭락하면서 농장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 노후 자금을 투자한 농장이 망하면 자신의 노후가 궁핍해질 것이 뻔했다. 농장을 정상화해야 했다. 2013년부터 직접 농장 경영에 나섰다.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을 농장 경영에 모두 쏟아부었다. 성우농장은 그가 동분서주한 지 3년 만에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는 현재 1농장과 2농장에서 6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운다. 2018년 7월 준공된 2농장은 5000m²(약 1600평) 규모다. 축사 전체에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최첨단 친환경 농장이다. 축사는 방역 때문에 출입부터 엄격하다. 욕실에서 샤워를 한 뒤 방역복과 장화를 착용하고 알코올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축사 내부에는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16개의 돈방(돼지를 기르는 방)이 있다. 복도 온도는 22~23℃로 서늘하다. 돈방 내부는 냉방장치를 이용하지 않아도 26~27℃로 유지된다. 지방이 많아 더위를 잘 타는 돼지들이 여름을 지내기에 무리가 없는 온도다.
돈방은 밀폐되어 있어 축사 복도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돈방 내부에 부착된 온도와 습도, 암모니아 등을 측정하는 감지기는 돈방의 상태를 계속 점검하고, 설정한 수치에서 벗어나면 환기시스템 등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해외에서도 농장의 상태를 살필 수 있도록 곳곳에 감시 카메라도 설치했다.
감지기로 잰 온도와 습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농도 등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클라우드 서버로 보내진다. 서버에 탑재된 인공지능(AI)은 돼지 사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계산해 환기 시설이나 냉난방 장치를 제어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설비를 돌리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일 뿐 아니라 에너지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돈방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구멍이 뚫려 있다. 돼지의 분뇨를 자동으로 지하 분뇨저장고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사료는 하루 두 번 돈방별로 설정된 양에 따라 자동으로 공급된다. 각각의 돼지에는 초소형 식별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감지기는 돼지들이 하루 얼마의 사료를 먹었고, 체중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 기록으로 남긴다.
▶성우농장은 돼지 분뇨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메탄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 중이다.│이도헌
돼지 분뇨 이용해 ‘에너지 자립마을’ 건설 부푼 꿈
최근 이 대표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에너지 자립마을’ 건설이다. 이미 한국서부발전 등과 축사 주변 농가주택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해 주민이 전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곡리에 있는 1농장에는 소형 열병합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늦어도 2020년 12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돼지 분뇨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메탄가스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프로젝트다. 건설 중인 열병합발전소는 하루에 돼지 분뇨 110톤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폐열 활용 계획도 이미 세웠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해 온실을 만들고, 이곳에 무상으로 폐열을 제공해서 작물 재배에 활용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발효된 돼지 분뇨는 농장 인근의 농부들이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 제공할 방침이다.
그는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소시지 가공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돼지 사육두수 전국 1위인 홍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매년 8월이면 열리는 마을 행사 ‘조롱박 축제’에 소시지를 선보여 소비자 반응을 살피고 있다. 아쉽게도 2020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주민들만 참가하는 행사로 축소했다.
이도헌 대표는 “양돈, 시설원예, 양식 등 세 가지 업종은 어느 나라나 일하는 방식이 같고, 열심히 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첨단 정보 기술을 접목한 쾌적한 양돈 사업으로 우리 농장은 물론 마을 공동체가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환_ <조선비즈> 농업 전문기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자신문> 등에서 기자로 산업 분야를 담당했다. 최근 농업이 유전공학, 정보통신, 기계공학, 환경공학 등의 기술과 밀접하다는 점을 깨닫고 농업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