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달 태안농업기술센타 농촌지도사가 자신이 키운 생강을 들고 있다.│전용달
한국은 통일벼가 1966년에 개발돼 시험 재배를 거친 뒤 1972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재배되며 주식인 쌀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에는 새로운 품종과 재배 기술이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농업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 농업 발전의 이면에는 다양한 농업 관련 부처와 기관의 노력이 존재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농업기술센터에서 근무하는 농촌지도사들이다. 이들은 농가에 새로운 품종을 보급하고 농민에게 첨단 농작물 재배기술을 전수하며 한국 농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공감>은 농업기술 전수를 통해 한국 농촌 발전에 공헌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농업인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부모님은 7남매 중 여섯째인 저에게 힘들게 농사짓는 것만 빼고 뭐든 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전용달(49·농업기술사) 충남 태안군 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어린 시절 꿈대로 고향과 인근 농촌에서 농업기술을 가르치면서 사는 생활이 즐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반농반어(半農半漁)로 1년 내내 바쁜 안면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논밭 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김과 굴 양식으로 쉴 틈이 없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했던 그도 어린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논밭과 바다에서 일을 도왔다. 다른 형제들은 농사일에 질려했지만 그는 농사일이 즐거웠다.
전용달 지도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요령도 힘도 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도와 일을 마치고 난 뒤의 뿌듯한 느낌을 즐겼던 것 같다”며 “크면 부모님 곁에서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용달 지도사가 지역 농민들에게 생강 수확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농사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태안 농업 역사의 새 이정표 세워
대학 진학 대신 농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 자신들보다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 부모님의 간곡한 만류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대학에 진학하되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꿈꾼 농업 교육자가 되기 위해 농대를 택했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공무원이 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따르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에 취업했다.
나름대로 어린 시절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농촌지도사 초년병 시절, 실무 경험이 없던 그는 ‘어리벙벙’이었다. 이론과 실제는 너무 달랐다. 나이도 어려서 지도 사업을 나가면 연세 많은 농부들에게 ‘농사 경험도 없는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실패와 성공을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그는 마침 좋은 선배를 만났다. 전 지도사는 “당시 소장님이 ‘농업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며 젊은 지도사들이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실증포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줘 경험을 통한 기술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직접 농사짓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는 이론과 경험을 모두 갖춘 농촌지도사로 성장했고, 이렇게 축적한 농업 지식과 지혜는 양념 채소를 중심으로 하는 태안 농업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생강이 태안 지역을 대표하는 농작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그의 공이 컸다. 2019년 재배 방법과 관련한 기술을 개발해 생산성을 15% 향상했고, 수확작업 기계화를 도입해 생강재배 농가들의 인건비를 연간 9억 원에서 8억 원으로 10% 이상 절감했다. 또 저장 굴에 승강기를 설치해 경영비도 줄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역 농민들은 전국 주요 생강 농가에 400톤의 무병 우량종자를 공급했고, 20억 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뒀다.
▶전용달 지도사가 농기계 작동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용달
귀농·귀촌 농부에 맞춤형 기술 전수
그는 또 토종 유황 육쪽마늘 생산단지에 미생물을 이용한 친환경 농법을 도입해 흑색썩음균핵병, 무름병, 뿌리응애 등의 병충해 발생을 줄였다. 2019년 거둔 수입대체 효과만 10억 원 이상이다. 그가 농민들과 합작해 만든 토종 유황 육쪽마늘은 생강과 함께 태안을 대표하는 농작물로 자리 잡았다. 안면도 유기농 고추마을이 ‘유기농 고추 해품초’라는 브랜드로 아이쿱(icoop)생협, 태안 담채원 등에 마른 고추를 공급하게 된 것도 그의 공이 크다.
그는 현재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고, 마늘 재배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밭작물 기계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귀농·귀촌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 기술을 전수할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가 내린 결론은 ‘맞춤형 농업기술 지원’이다.
전 지도사는 “귀농하는 농부는 상업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품질과 생산성 향상이 핵심이지만, 귀촌 농부는 생산성보다 친환경과 안전에 관심이 좀 더 큰 것 같다”며 “앞으로 귀농 농부냐, 귀촌 농부냐에 따라 재배 기술을 조금 달리해 전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지환_ <조선비즈> 농업전문기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자신문> 등에서 기자로 산업분야를 담당했다. 최근 농업이 유전공학, 정보통신, 기계공학, 환경공학 등의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농업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